[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내 어린 시절, 집이라는 공간은 항상 포화 상태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할머니가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가 있었고, 오빠와 언니가 있었고 삼촌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시절에 맞게 가장 평범하고 전형적인 가족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1970년, 80년 대에는 3대가 같이 사는 집이 대부분이었고, 이모나 고모, 삼촌 혹은 사촌 오빠까지 가족을 이루며 살았다. 집은 비좁았고 식사 준비를 하고 가족이 다 모여 앉아 먹는 데도 한참 걸렸다. 대가족이 별 탈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데에는 아버지의 권위와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공동체의 암묵적 규칙이 있었다. 친척 중 누군가 진학을 이유로 혹은 취업의 이유로 상경하게 되면 당연히 방을 나누어 쓰거나 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척도 넓은 의미로 가족의 일원이며 피를 나눈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방은 항상 할머니나 언니와 같이 사용했고 나만의 공간은 늘 상상 속에만 있었다. 그 시절 혼자 방을 쓰는 친구가 부러웠고 외동인 친구를 보면 신기하기까지 했다. 당시 대가족이라는 하나의 가족 형태에서 이제 막 핵가족이란 가족 형태로 바뀌고 있었던 시기였다. 하나만 낳아 잘살자는 구호 아래 산아제한 정책이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지금 아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일이다. 대부분 외동이거나 남매, 형제, 자매로 어머니, 아버지 4인 가구로 이루어진 단란한 핵가족 형태이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 흔했던 3대가 같이 사는 가족 형태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족 형태는 꾸준히 변해왔고, 현재 가족 형태를 보면 변화할 뿐 아니라 새로 만들어지고 다시 빠르게 분화되고 있다.

가족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 가까운 혈육들로 이루어지는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에 담긴 의미로 현대 가족을 정의하려 한다면 정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지만, 부모가 부재한 조손 가족이 있으며, 이혼 혹은 사별로 부모 중 한 사람과 자식으로 이루어진 한부모 가정도 있고, 다문화 가족도 있으며,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 단독 가족으로 이루어진 딩크족도 있고, 1인 가구로 이루어진 1인 가족 형태도 있다. 1인 가족 형태 중 반려견을 가족, 삶의 동반자로 생각하며 사는 펨펫족도 많다. 비혼 가족도 있고, 현재 법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동성 커플로 이루어진 동성 가족도 있다. 특히 1인 가족 형태의 비율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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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 구성 변화가 1인에서 5인의 가구 구성 비율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에 15.5%, 2010년에 23.9%, 2020년에 31.7%로 증가했으며 2030년에는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 가족이 모여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가족이지만 무늬만 가족인 가족도 많다. 혼자만의 시간과 삶을 추구하는 나홀로족이 나타나고 증가하는 데에는 굳이 가족을 이루어 고독하게 살기보다 내 삶에 집중하며 살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딱히 연애에 관심 없이 나만의 생활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로 우리가 과거 노총각, 노처녀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또 법의 구속력에서 벗어나 가족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다. 친구 중에 결혼은 했지만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친구가 있다.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을 거냐는 말에 당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낳지 않을 텐데 굳이 혼인 신고를 할 필요 있어, 라고. 친구가 결혼할 때는 90년 대로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살며 아이도 낳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보기 어려웠다. 친구의 말은 충격적이고 놀라웠지만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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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친구와 같은 가족 형태는 많아 놀랍지 않다.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배우자에게 충실하지 않을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가족의 결속력이 느슨해지는 것도 아니다. 친구는 여전히 배우자에게 충실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정통적인 가족 형태로 정의한다면 친구는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가족의 형태가 빠르게 변하고 분화되고 있다. 앞으로 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꼭 피를 나눈 사람만이 가족이 되는 사회는 고루하다. ‘출산이 애국’이라는 말은 21세기를 사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다양한 사람과 그 다양한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는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 또한 다양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가족은?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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