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돌발과 파격. 지난 3월 27일 열린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요약하는 두 개의 단어다. 크리스 락을 가격한 윌 스미스의 돌발행동은 지금도 여진을 몰고 다닌다. 강력한 후보였던 <파워 오브 도그>를 밀어내고 작품상을 받은 <코다>의 부상은 파격이었다. OTT 최초의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영광도 함께 가져갔지만, 그보다는 농인 부모의 자녀인 CODA(Children of Deaf Adult)를 다룬 작품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션 헤이더 감독의 <코다>의 주인공은 17살 루비(에밀리아 존스)다. 농인 부모와 오빠의 귀와 입으로 살고 있는 청인(聽人) 여고생으로 어려서부터 아빠(트로이 코처) 오빠와 함께 새벽부터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한다.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재능을 깨닫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을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인다.

영화 <코다> 스틸 이미지

합창부 ‘모든 게 가치 있다는 걸 아니까(Cause he knows it's all worthwhile)’

1972년. 데이비드 보위는 외계에서 지구의 멸망을 경고하러 온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라는 콘셉트로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앨범을 발표한다. 데이비드 보위는 페르소나인 지기 스타더스트를 통해 중성적이고 화려한 분장과 퇴폐적 이미지를 앞세워 기존의 가치관들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외계인(Starman) 지기는 지구인들이 정상이라고 규정해놓은 규범을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로 위대한 록스타가 된다.

starman waiting in the sky
하늘에서 스타맨이 기다리고 있어
(...) He's told us not to blow it
그는 우리에게 그걸 터트리지 말라고 했어
Cause he knows it's all worthwhile
그는 모든 게 가치가 있다는 걸 아니까

CODA인 루비를 비롯해 목소리만큼 피부색이 모두 다르며 키가 크거나 작고, 마르고 통통한 학생들이 모여 땀 흘려 연습한 첫 합창곡이 바로 ‘Starman’이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이 ‘우리의 정신을 지켜야 하고, 모든 게 가치 있다’는 외계인 지기의 가르침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전파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지만 다양성 영화로 구분할 수 있는 <코다>의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코다>의 첫 대화 장면은 루비와 오빠인 레오가 서로를 똥 같은 얼굴이라며 다투는 장면이다. 당연히 수어(手語)로 이뤄지는 남매의 기 싸움은 어떤 면에서는 청어(聽語)보다 더 강렬하게 서로를 달가워 않는 현실 남매의 짜증을 분출해낸다. 이후로도 수어는 청어보다 정보전달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편견을 무참히 박살 낸다. 프랭크와 재키가 집에 있는 마일스에게 민망한 장면을 들킨 후 설명할 때의 생동감과 현실감 넘치는 표현을 떠올려 보자. 베르나르도 선생님 앞에서 루비가 노래를 부를 때면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같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을 봐도 그렇다.

감정적 울림을 전달해야 할 순간 청어가 아닌 수어를 택한 <코다>의 결정이 틀렸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렇게 <코다>는 청어의 보조수단으로 생각되던 수어를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하나로 확실히 각인시킨다. ‘모든 게 가치 있다’는 Starman의 가사는 실제 농인 배우들과 청인 배우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는 앙상블로 또 한 번 관객들에게 전파된다.

영화 <코다> 스틸 이미지

듀엣부 ‘당신이 내 삶의 전부예요(You’re all I need to get by)’

You're all I need to get by
당신은 내 삶의 전부에요
​Like the sweet morning dew I took one look at you
달콤한 아침 이슬 같은 당신을 처음 본 순간
(...) I'll sacrifice for you Dedicate my life to you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게요 내 인생을 바칠 거예요

‘당신이 내 삶의 전부’라고 말하는 You’re all I need to get by는 마빈 게이와 타미 테렐의 전설적인 듀엣곡이다. 아침 이슬 같은 당신에게 인생을 바칠 거라는 달콤한 사랑 노래의 이면에는 전설적인 소울 싱어들의 비극이 숨어있다. 14살에 데뷔해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등을 성공시키며 모타운의 신성으로 떠오른 타미 터렐은 24살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다. 역대 최고의 소울 싱어송라이터로 꼽히는 마빈 게이는 파트너인 타미 테렐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충격을 받아 약물중독에 빠지기도 했고 1984년에는 아버지에게 총을 맞아 요절한다.

가족과 친구 혹은 연인이 선사하는 사랑이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전부가 선사하는 부담감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루비는 가족들을 대신해 5살부터 식당에서 음식과 술을 주문해야 했다.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이지만 해경의 무전이 들리지 않는 아버지와 오빠의 귀가 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어선에 타고, 수어를 할 생각이 없는 상인들과 흥정을 대신한다. 듀엣 파트너인 마일스와 가까워졌지만, 그 역시 루비의 집에서 겪을 일을 친구한테 떠벌리는 실수를 저질러 그녀에게 큰 상처를 준다.

<코다>에서 루비는 ‘You're all I need to get by’를 세 번 부른다. 루비와 마일스가 등을 맞대고 부르며 미묘한 감정의 떨림을 느낄 때. 두 번째는 가족들이 방문한 학예회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루비의 가족들은 전까지 집중하지 못하고 저녁 식사 메뉴를 고민하는 등 딴짓을 하다가 곡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 갑자기 음소거가 된다. 마치 루비의 가족들이 학예회에서 느끼는 것처럼.

프랭크는 서서히 주변을 살핀다. 루비의 노래에 감동하여 눈물을 훔치는 사람. 다른 가족의 손을 꽉 잡는 사람. 함께 리듬을 맞추고 손뼉을 치는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주위의 분위기를 통해 루비가 전하는 감동은 고스란히 전달된다. 세 번째는 학예회가 끝난 밤이다. 한 번도 그녀의 노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프랭크는 루비에게 듀엣으로 불렀던 노래를 청한다. 루비는 조용히 노래를 시작하고 프랭크는 목에 손을 가져가 성대의 떨림을 느끼고 입 모양으로 가사를 읽는다.

다음 날, 프랭크는 가족들을 모두 자동차에 태우고 루비를 버클리 음대 오디션장으로 데려간다. ‘가족 모두가 출동해야 한다’며. 무너졌을 때. 두려울 때. 혼자서는 힘겹지만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그 순간 대체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부담으로 다가왔던 내 삶의 모든 것(You're all I need to get by)이다.

Darling in you I found Strength where I was torn down
당신에게서 난 힘을 얻었죠, 내가 무너졌을 때
Don't know what's in store But together we can open any door
무엇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라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죠

영화 <코다> 스틸 이미지

솔로부 ‘이제 구름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I've looked at clouds from both sides now)’

Bows and flows of angel hair and ice cream castles in the air
끝없이 흐르는 천사의 머릿결 공중에 뜬 아이스크림 궁전
And feather canyons everywhere, I've looked at clouds that way
깃털로 만들어진 수많은 계곡 난 그렇게 구름을 바라봤지만

​But now they only block the sun they rain and snow on everyone
지금은 그저 태양을 가린 채 모두에게 비와 눈을 내리는 것
So many things I would have done, but clouds got in my way
하려던 일들이 많았지만 구름이 내 앞을 막았지

I've looked at clouds from both sides now From up and down and still somehow
이제 구름을 양쪽에서 보게 돼서 위와 아래에서 그런데 아직도 어쩌면
It's cloud's illusions I recall I really don't know clouds at all
기억에 남은 건 구름의 환상일 뿐 구름의 실체는 모르겠어

루비가 오디션장에서 부르는 ‘Both sides now’의 원곡자 조니 미첼은 여성 싱어송라이터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해도 무방한 아티스트다. 1969년 [Clouds]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조니 미첼이 스물세 살 때 비행기를 타고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이륙 전에는 비를 뿌리고 그림자를 드리우던 구름을 위에서 바라봤을 때 천사의 머릿결이나 아이스크림 궁전 같다는 통찰력. 사물의 양면(Both sides)을 봐야 한다는 깨달음이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 안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극 중에서 베르나르도 선생님이 루비를 부르는 애칭은 (공교롭게도) 데이빗 보위가 ‘진흙과 접착제로 만든 목소리’라고 평한 포크 가수 밥 딜런에서 따온 ‘밥’이다. 처음 입학했을 때 농인의 자녀가 내는 이상한 발성으로 놀림을 받고 왕따가 되어버린 루비. 빛나는 재능과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친구들 앞에서는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던 루비에게 베르나르도 선생님은 묻는다. “할 말이 없는 예쁜 목소리는 차고 넘쳐. 너는 할 말이 있니”. 루비는 짧게 답한다. “네”

가족들이 모두 출동해서 도착한 버클리 음대 오디션장. 30분이나 지각하고 급하게 나오느라 피아니스트에게 전달할 악보도 놓고 와서 무반주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 소식을 들은 베르나르도 선생님이 깜짝 등장해 반주를 해주고 루비의 노래가 시작된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없이 시작된 오디션에 루비는 주눅이 들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때 루비는 객석에서 가족들을 발견한다. 원래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됐지만 몰래 들어온 가족들. 루비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노래와 동시에 수어를 한다. 루비는 궤도에 올라 천사의 머릿결과 아이스크림 궁전 같은 모습을 한 구름처럼 부드럽고 아름답게 노래를 이어간다. 태양을 가리고 비를 내려 도망치고만 싶었던 구름을 뚫고 비 온 뒤에 굳는 땅같이, 진흙과 접착제로 만든 것처럼 단단한 그녀만의 목소리를 더해서.

영화 <코다> 스틸 이미지

지금 당장 삶의 양면을 보세요(Both sides ‘NOW’)

감독상, 편집상, 촬영상 중 한 가지도 노미네이트 되지 않은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건 90년이 넘는 아카데미 역사에서 <코다>가 유일하다. 작품상이라는 미학적 기준에 부합하는 완성도인지 논란과 함께 작품상 선정에 휴머니즘을 다룬 영화에 후한 아카데미의 감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투표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들의 잔치라는 비아냥을 듣고 비백인 배우들에게 보이콧을 당하기도 했다. 로컬시상식일 뿐이라는 그러나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연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의 <미나리>처럼 아카데미는 백인들의 로컬 시상식이라는 한계를 깨기 위해 변신 중이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에게 기립해서 손을 반짝거리는 ‘반짝이는 박수’의 수어로 화답한 회원들의 모습이 변화하는 아카데미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코다>에서 인상 깊었던 건 루비가 가족들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대학지원을 앞두고 제키와 진지하게 감정을 털어놓는 자리에서 루비는 다른 가족들이 자기만 빼놓고 뭉쳐 다녀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식사 자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건 예의 없다고 타박을 듣지만 휴대폰만 붙잡고 있는 오빠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라며 칭찬을 듣는다. 소음에 무신경할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무심함에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청인 가족과 함께라면 느끼지 않았을 소외감과 불편함. 이 역시 상대적인 삶의 양면(Both sides)이다.

아직 비장애인으로 장애를 함부로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장애는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기준을 따를 뿐이라고. 오십견이라 팔이 어깨높이 이상 올라가지 않는 건 장애일까 질병일까. 지팡이가 없다면 이동할 수 없는 노인들은 장애인인가 그저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일까. 안경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기준으로 현대인의 대부분은 시각장애로 분류됐을 거다.

2022년이지만 장애인 이동권의 필요성을 토론의 주제로 삼는 사람이 있다. 이름 없는 필부필부도 아니고 한 마디가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고 뉴스거리가 되는, 국가 의전 순위 10위 안에 드는 여당의 당 대표다. 세계에서 꼽히는 최고 학부를 졸업한 수재지만 삶의 양면(Both Sides)을 보는 통찰력은 배우지 못한 걸까. 마침 오늘(Now)은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이다. 그 역시 반짝이는 박수를 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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