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획득할 수 있었는지를 잊고 지낼 때가 있습니다. 많이 진부한 표현처럼 코를 틀어막고 20초만 숨을 참아도 늘상 마시는 공기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지만, 그런 절실함은 사태가 벌어지고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나 깨닫게 되는 법이죠. 지금처럼 삐뚤어진 것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에선 이런 착각과 어리석음을 발견하기 위해 아주 먼, 굉장히 고상한 예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우리는 또 한 번의 무한도전 없는 토요일을 맞이하기 때문이죠.

과연 언제까지 이런 파행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문제는 명확하지만 해결의 기미는 도저히 보이지 않습니다. 무도는 11주째 결방을 앞두고 있습니다. 비단 무한도전 뿐만이 아닙니다. 꼬박꼬박 비축해두었던 사전 촬영분이 동이 나버린 우리 결혼했어요는 케이블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송이 대체되면서 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일밤은 주말 버라이어티가 웬만해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애국가 시청률에 도전하고 있고, 김영희 PD의 복귀와 함께 새롭게 시작한다는 나가수2는 섭외 가수들의 거절과 섭외 실패 소식만 무성하게 들립니다.

그 와중에 땜빵 제작진들과 함께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는 놀러와의 위상은 점점 더 추락하고 있고, 외주로 돌려서 개편한 주병진쇼 역시 이젠 침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언론의 관심에서도 벗어나 있습니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위대한 탄생 시즌2는 시즌3를 기약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되는 허망한 마무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나마 선전하며 버티고 있던 라디오스타마저 촬영 비축분의 소진으로 결방이 시작되구요. MBC 예능 프로그램의 전멸, 현 상황은 완성도에 있어서도 지속성에 있어서도 도저히 웃음을 만들지 못하는 수준의 프로그램을 양산하거나 개점휴업 상태로 빈자리만 늘려가고 있습니다.

파업의 여파는 개표 방송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났습니다. 국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마련했어야 하는 초대형 이벤트였음에도 별다른 준비조차 하지 못한 MBC는 겨우겨우 방송 사고라도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봐야 하는 수준 미달 방송으로 전락했습니다. 박미선이나 조형기를 비롯해 아무런 전문성도, 의미도 없는 패널들로 아나운서들의 빈자리를 메웠던 어수선함은 시청자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 여전히 9시 뉴스는 20분의 분량도 채우지 못하는 단신 수준에서 방송되고 있습니다. 이건 대재앙이에요.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종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장님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의 명분은 명백하지만 사측의 대응은 보다 많은 징계, 해고, 소송뿐입니다. 양측의 대립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지만 외부에서 해결과 중재 역할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은 총선 결과로 인해 철저하게 꺾여 버렸습니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공정한 방송 환경 여권 확보라는 동일한 이유로 파업에 들어간 연합뉴스의 파업에 대해 왜 파업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총선 승자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발언과 인식 수준은 지금의 상황이 결코 해결되기 힘들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총선 정국 내내 요긴하게 활용하였던 정권의 나팔수들을 지금에 와서 풀어주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이 상태로 무시와 억압만을 계속하며 파업 노조가 항복하기만을 바라겠죠.

그러니 이젠 정말 무한도전이 폐지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하하와 홍철의 대결 결과를 기다린 지도 벌써 3달이 다 되어 갑니다. 유권자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어느 진영을 선택하고 지지하느냐를 두고 시비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선출된 이들의 면면은 엄연한 주권 행사의 결과이며 모두가 승복해야 하는 뜻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왜 이번 주도 결방이냐며 툴툴거리며 정작 투표는 외면한 이들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만약 무도가 폐지된다면 이들을 지켜본 시청률 15% 내외, 아니 재방이나 DMB 등의 다른 방식으로 무도와 함께하던 수많은 이들은 과연 어디 있었는지를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도를 바로 볼 수 있었던 아주 쉬운 방법을 놓쳐버렸습니다. 그 누구를 원망할 것이 아닌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무심하게 외면했었던,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할 일입니다. 마치 세상이 다 끝나 버린 것처럼 절망하고 우울해해서는 안 되지만, 이 아쉬움과 분노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글을 기구하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다른 이유는 다 필요 없습니다. 전 단지 무한도전이 보고 싶을 뿐이에요. 무도도 편하게 보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싫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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