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동원 칼럼] 지난 4월 4일. 호반건설은 방송을 하루 앞둔 KBS <시사기획 창: 누가 회장님의 기사를 지웠나> 편에 대해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올해 1월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대주주 지위를 차지한 직후 김상열 회장에 관련된 과거 기사 삭제를 지시한 문제를 다룬 방송이다. 호반건설의 KBS <시사기획 창>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사유는 의미심장하다. “이 방송으로 호반건설의 사회적 가치와 평가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호반건설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건설, 부동산 임대, 제조업 등을 영위하는 기업 사주가 왜 언론사를 소유하려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총자산 10조 원이 넘는 대기업 ‘회장님’들의 업무와 다방면의 행보를 우리 같은 서민이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호반건설이 방송으로 입게 될 손해라 말하는 “사회적 가치와 평가”는 역설적으로 회장님들이 언론사를 소유하려는 목적을 반증하고 있다.

KBS 시사기획 창 ‘누가 회장님 기사를 지웠나’ 편 예고방송 화면

언론사 인수의 이유

기업이 일정한 자산과 수익 규모에 도달하면 사주는 시장 경쟁과는 또 다른 경쟁을 떠 올린다. 이때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같은 업계나 대기업 사주, 정부 관료, 정치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남과 다른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다. 20세기 초 쏘스타인 베블렌이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 중 하나로 불렀던 이 욕구는 대학이나 박물관을 설립하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공적 기여’를 했다는 사회적 인정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인정 받기 원하는 사회란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사회가 아니다. 영어 표현인 society의 라틴어 어원 societas가 말하듯 이 사회는 ‘동료나 동업자 사이의 친교를 맺는 행위’를 뜻한다. 그래서 회장님이 원하는 인정은 자신이 일상에서 만나는 경쟁 기업 회장들이나 정관계 인사 사이에서의 인정이다. 호반건설의 서울신문 인수뿐 아니라 코리아와이드의 대구지역 대표 일간지 매일신문 인수, KG그룹의 일간스포츠와 이코노미스트 인수 시도는 21세기판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라 부를 수 있다.

자신들의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려는 회장님들의 언론사 소유는 지상파 민영방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신문은 이미 오래 전에, 그리고 방송은 2010년을 거치며 자신이 거느린 계열사처럼 수익을 낼 자본이 아님을 사주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방송, 특히 지상파 민영방송은 10개 권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부여 받은 사업이며 일종의 희소재다. 지역 내 희소 자원 소유로 누리는 지위, 그리고 그 자원을 보유한 회장님들의 네트워크는 한국 사회 엘리트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중요한 인정 수단이다.

이런 진입에 성공한 대표적인 민영방송이 바로 태영의 SBS다. 특히 개국 이후 지역민방과 네트워크 협약을 맺으며 사실상 전국방송의 지위를 얻었고, 건설 및 오폐수 처리 등 모기업 사업까지 지원하는 보도가 가능했다. 1차 민방으로서 SBS는 이후 다른 회장님들께 민영방송의 모델이 아니라 윤세영-윤석민으로 이어지는 방송사주의 ‘성공’사례가 되었다.

결국 호반건설이 말한 방송금지 가처분 사유인 ‘사회적 가치와 평가가 심각하게 훼손’ 당하는 주체는 호반건설이 아니라 김상열 회장 개인이다. 이와 같은 언론 사유화는 모기업이나 특정 산업에 유리한 보도, 회장님이 인정받고 있는 인맥과 ‘사회’의 동향 보도라는 문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SBS 사옥 (사진=연합뉴스)

회장님의 욕망, 노동자의 분열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는 회장님 혼자 수행하는 활동이 아니다. 각계 인사를 모아 벌이는 자선 행사에도 수많은 일손이 필요하고 이들을 감독할 관리직이 필요하다. 베블렌은 이런 관리직을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를 뒷받침하는 ‘대리적 여가’ 혹은 ‘대리적 소비’의 주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들 관리직은 유한계급이 획득한 사회적 인정을 자신이 속한 노동자 집단 내 인정과 동일시 한다는 점에 있다. 대저택 하인들 중에서 집사의 권위가 유독 높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회장님의 사회적 인정을 위한 과시적 소비 수단이 된 언론사에서는 언제라도 노동자 사이 비공식적 서열과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 벌어지기 쉽다. 이런 경쟁은 언론사 노동조합에 대한 항의, 이탈, 복수 노조 설립 등으로 표면화된다. 언론사 규모가 작을수록, 그리고 회장님이 거느린 사업과 자산규모가 적을수록 내부 경쟁과 분열은 극심해진다. 회장님은 일정한 자산과 수익 규모를 내는 모기업보다 사회적 인정을 위한 수단이 된 언론사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명예와 위신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몇몇 언론사의 매각·인수뿐 아니라 이미 민간자본이 진입해 있는 민영방송의 지배구조에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이 때문이다. 민영방송에 대한 자산 규모, 지분 제한, 재허가 등을 통한 사후 규제가 아무리 강해도 규제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회장님의 사회적 인정 욕구와 노동자의 분열이 그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회장님이 언론사를 소유하려는 목적 그 자체를 규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들의 언론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와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국가 경제 규모에 걸맞게 방송사를 가질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소식이 들린다. 해당 기업의 자산규모를 GDP 대비 몇 % 비율로 정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언론이 회장님의 과시적 소비 수단이자 사회적 인정 수단이 되지 않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런 규제 완화는 현 상태의 유지, 아니 언론 노동자의 분열만을 재촉할 뿐이다.

생각해 보면 국회의원들이 이런 비공식적 사연을 모를 리 만무하다. 바로 그들이 회장님이 그토록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와 명예를 인정할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론’은 이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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