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1990년대 경기 침체기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은둔형 외톨이는 남의 문제로 인식됐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은둔형 외톨이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은둔형 외톨이 실태에 대해 파악된 게 없다. 이대로 괜찮을까?

지난 3월 29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은 ‘은둔형 외톨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편을 방송했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이승택 씨 사연으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은둔형 외톨이 현상의 실체를 사례 중심으로 짚어보고, 이에 대한 원인과 해법을 다각도로 진단했다.

지난 1일 ‘은둔형 외톨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편을 제작한 나신하 기자와 전화 연결해 취재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나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은둔형 외톨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편

은둔형 외톨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취재하게 되셨는지요?

“은둔형 외톨이는 일본어 히키코모리를 번역한 건데,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회 이슈화 된 곳이 일본이거든요. 그래서 일본 사회는 진작부터 이 문제에 대응해왔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통해서 은둔형 외톨이의 발생을 줄이고 이분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많은 제도적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난제가 발생하고 있고요. 제가 일본 특파원으로 3년 있으면서 이 문제를 취재했었어요.

그리고 한국은 어떨까 궁금해 조사를 해봤는데 자료가 의외로 많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단편적으로나마 은둔형 외톨이로 분류될 수 있는 청년들이 꽤 많다는 보고가 나와 있고, 특히 청년들 상담하시는 분들이 은둔 청년에 대한 문제의식을 많이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취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우리나라에선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연구가 안 된 건가요?

“질적 연구 같은 경우는 좀 있긴 있어요. 그런데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건 비교적 최근이라고 알고 있고요. 일부 지자체에서 진행된 건 이분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으며, 왜 은둔하게 됐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사회로 복귀시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에 대한 질적 연구들이죠. 은둔하는 분들을 소수로 심층면접해서 실태를 파악하는 형태의 연구 자료가 단편적으로 있었고요.

제한된 인원을 토대로 한 질적 연구들은 서서히 누적돼왔는데 다른 분야에 비해서 많지는 않아요. 더욱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2019년 광주광역시에서 했던 연구가 ‘현황’ 연구의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죠.”

왜 실태조사나 연구가 안 돼 있을까요?

“저희 같은 직장인들 세금 많이 걷어서 정부가 뭐 하냐는 목소리들이 많죠. 왜 안 했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최근에야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심층면접 형태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주변에서 잘 안 보이니까 정말 몰랐거나, 모른 체했거나 아니면 후순위로 밀렸거나죠. 대한민국 사회가 그렇잖아요. 속된 말로 난리 치고 요란하게 목소리를 내고 불법 탈법 경계선도 넘어가야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고 정부 차원에서 움직입니다. 조용하게 ‘이런 게 있습니다. 관심 가져주세요.’라면 관심 안 갖거든요.

은둔형 외톨이 같은 경우 목소리를 못 내요. 밖에 나가서 목소리를 내는 순간에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죠. 이 친구들이 가족들하고도 관계가 서먹서먹하거나 단절된 경우가 많은데 과연 밖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가족들이 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나신하 KBS <시사기획 창> 기자

우리나라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이야기된 게 언제부터예요?

“일본 얘기부터 해야 될 것 같은데요. 1990년대 일본은 경제 불황기가 시작되며 잃어버린 20년 혹은 30년이라 하죠. 당시 청년 실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들의 은둔이 엄청나게 시작됐습니다. 그때는 남의 나라 얘기라고 치부했는데 일부 지식인이나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졌죠.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중반 이후예요. 처음 경고음이 울린 때가 2000년대 초반인데, 지금 2022년이니 20년 동안 정부 차원에서 한 게 거의 없다는 거죠.”

은둔형 외톨이는 '청년들'이 많은가요?

“20, 30대가 대부분이고 4~50대 이상도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2020년 광주광역시 조사를 보면 20대가 절반 정도, 30대가 26% 정도 되는 것 같고요. 그리고 40대도 한 10%, 50~60대도 4% 정도 되는 걸로 보고됐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를 전국적으로 이렇다고 얘기하기가 어려운 게 일단 저인망식으로 설문지 뿌려서 간신히 확보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숨기거든요.”

왜 2030 세대에서 많을까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케어가 됩니다. 학교 출석 안 하면 주변에서 관심을 갖잖아요. 근데 이후부터 살벌한 경쟁이죠. 이건 제 개인적인 분석인데, 지금 은둔형 외톨이들의 주 연령대를 보면 신자유주의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가 변곡점으로 심각해진 게 아닌가 해요. 똑똑하고 잘난 사람만 출세하고, 뒤처지는 사람은 당연히 밟고 가도 된다는 담론들이 만들어졌잖아요. 경쟁에서 이긴 놈이 다 먹고 진 사람은 죽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들이죠, 그러니 청년들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괴감을 갖게 되고 스스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겠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요. 직장생활 부적응 문제도 있고, 학교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개인의 심리적 내상을 주는 경우가 있고요. 남들보다 섬세한 사람들인 경우도 있고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리고 가정폭력이나 가정 내 문제도 상당수 있어요. 그런데 공통점이 뭐냐 하면 치열한 경쟁 사회가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러니까 문제를 축소해서 보면 답이 안 나와요. 굉장히 다양한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과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그게 안 되고 있다는 거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은둔형 외톨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편

결국 경쟁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건가요?

“사회가 만든다는 표현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문제를 사회로 돌리기는 어렵겠죠.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게 사회와 관련 있지만, 사회의 잘못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나 현상이 발생했을 때 방치하는 건 명백히 사회의 잘못이겠죠.

우리가 살면서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빨리 그걸 해결해주고 대안을 찾아 주라고 사회와 정부가 있는 것이고, 국가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죠. 중요한 건 은둔형 외톨이 현상의 심각성에 대해서 왜 막지 못했냐는 식의 접근이 아닙니다. 지금 정부와 사회와 언론의 잘못은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왜 관심을 갖고 대응하지 못했는가라는 부분이죠.”

이승택 씨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아픔을 가진 분들 이야기를 다룰 때 선정적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또한 심각하게 절망적으로 다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많은 방송들이 그렇게 하지만,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희망을 찾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노력을 해야겠죠. 이승택 씨는 은둔 기간이 장기화되기 전에 본인이 주변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상태인데,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굉장히 좋은 사례였죠. 그리고 저희가 만난 은둔형 외톨이 경험 청년들의 경우는 본인이 고통의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에 남을 돕고 싶어 하는 생각들이 강해요. 이승택 씨도 그런 의지가 있었고요. 비슷한 고통 속에 있는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게 좋겠다는 거죠.

또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어요. 질환이라든가 정신병 등 잘못된 인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고, 누군가 조기에 손만 잡아주고 사회적 관심과 케어가 지원되면 얼마든지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해서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앞부분에 배치했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은둔형 외톨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편

이건 질병이 아닌 거죠?

“은둔형 외톨이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현상’입니다. 은둔형 외톨이를 병명으로 진단하면 큰일 나요. 물론 우울증이라든가 질병으로 은둔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은둔형 외톨이를 구분할 때 전문가분들의 공통적인 의견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은둔은 은둔형 외톨이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분하나요?

“케이스로 해야겠죠. 개인에 대한 맞춤형 접근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니까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서 전문성을 가진 상담 전문가들과 만나 이분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실제로 이들의 손을 끌고 정신과도 가고 상담도 해보고 하지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게, 아직 우리나라에는 은둔형 외톨이를 전문적으로 케어하고 심리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전문가분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구가 안 돼 있으니까요.”

은둔 경험 청년들에게 그룹홈이 도움 되나 봐요?

“모든 청년한테 도움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현재 제시된 해법으로는 그래도 가장 실효성이 높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룹홈 꾸리는 데가 많지 않아요. 그룹홈이 왜 중요하냐면, 결국 가정이란 공간에서 벗어나는 게 은둔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은둔하던 장소에서 벗어나 비슷한 경험과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같이 살면서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과제를 풀어나가게 되는 거죠.”

은둔은 대인기피증 하고 연결될 수 있나요?

“기피증보다 대인기피 증상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은데,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나요. 공통점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한다는 것이지만, 대인기피하고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하는 건 좀 달라요.”

KBS 1TV <시사기획 창> ‘은둔형 외톨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편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사회적 약자 관련 주제를 다룰 때마다 느끼는 건데, 한국 사회가 수치상으론 선진국이 됐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과연 선진국이 맞는가란 고민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치상의 선진국인가 실제 선진국인가죠.

1인당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예측하고, OECD 위쪽으로 올라가고 전 세계가 박수 친다고 하면 개인의 삶이 나아져야 되잖아요. 안정적으로 월급 받으며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사람들이 잘사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는 아니죠. 힘든 사람이 있을 때 손잡아줄 수 있는 사회적인 제도와 분위기들이 갖춰진 사회가 선진국인 것 같아요. 사회에서 경쟁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경쟁하다 뒤처질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어요.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와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하는가가 선진국의 척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부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앞서가는 일부 공무원들이 영혼을 불살라가면서 일하는 구조 아니냐는 우려도 있죠.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정책 관련해 한 일이 없죠. 실태조사 시작한 건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안 보인다는 게 문제죠. 잘나고 힘센 사람들이 독차지하는 그런 사회 구조가 고착화되지 않으려면, 은둔형 외톨이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이는 정책적인 배려 차원이 아니라 의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정치적인 얘기지만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윤석열 당선자는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극복하겠다며 출마해 당선됐고 지금 새 정부 출범이 임박했죠. 그러면 은둔형 외톨이 현상에 대한 솔루션은 윤석열 정부가 분명히 내놔야 해요. 그것은 배려가 아니고, 새 정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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