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조현옥] 그리움으로 아련하게 피어난 매화로 시작한 꽃 소식이 어느새 산수유, 목련, 벚꽃으로 물들고 있다. 화단의 잔디 곁에는 민들레의 노란 웃음이 피고, 햇살 좋은 곳에는 연보라색 제비꽃의 재잘거림도 들린다. 겨우내 누워있던 맥문동도 허리를 곧추세우며 진초록 치맛자락을 늘어뜨리고 봄 잔치에 나선다. 곧 황매산 철쭉, 고려산 진달래가 진분홍색 초대장을 보낼 것이다.

개화 기간이 짧은 꽃일수록 때를 놓칠세라 사람들의 발걸음은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삐 달려갈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치를 두는 것은 무엇일까. 함께하는 시간일까, 이별을 앞둔 시간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이별을 앞두고 만나는 마음은 더욱 애틋할 것이다.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움츠려 있다가 따듯한 햇살과 함께 피어나는 봄의 꽃봉오리들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들은 단지 아름다움일 뿐만 아니라 희망이요 축복이니, 그 꽃을 향하는 마음이야말로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나 역시 돌 틈이나 보도블록 사이까지 비집고 솟아난 봄 내음에 감동한다. 푸른 하늘가로 뻗은 가지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그림을 사랑한다.

그런데 지난겨울부터 새로운 생명에 관심이 생겼다. 연둣빛 잎새 위에 눈꽃을 두르거나, 이른 봄비에 촉촉해진 초록 잎을 반짝이는 사철나무가 마음을 끌었다.

사철나무 (사진=조현옥)

한겨울에도 변함없이 푸른 소나무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손꼽히며 찬사를 들어왔지만, 아파트 담장이나 공원 둘레를 초록으로 감싸고 있는 사철나무에게는 눈길 주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동백처럼 타원의 초록 잎이 무성해도 눈길 끌 만한 꽃송이를 피우지 못하는 사철나무는 보통 여러 그루가 울타리처럼 둘러있기에, 사람들에게 경계목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옆에 피어있는 튤립, 그 위에 피어있는 벚꽃이나 장미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끌었을 따름이다.

어렸을 때 세 들어 살던 집 마당에 사철나무가 있었다. 일 년 중 하루도 쉬지 않고 장사하시며 어린 동생 둘을 키우느라 정신없던 어머니 대신 뒷마당에 빨래를 널러 갈 때가 있었다. 젖은 발에 슬리퍼를 끌며 걸으면 마당의 모래가 타닥타닥 튀었다. 나의 발자국을 따라 마당에 놓아 기르던 주인집 닭이 따라왔다. 타닥타닥 꼬옥꼬옥….

닭의 부리가 다리를 쪼기라도 할까 봐 내 뒤를 따르는 그 소리가 무척 두려웠다.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는데도 뒤란을 갈 때마다 내 뒤를 따라오는 닭에 대한 두려움은 꽤 오래갔다. 살금살금 걸어 빨래를 널고 돌아서면 몇 그루의 사철나무가 나를 위로했다. 닭은 어디로 갔는지 제 길을 가고, 진하지도 흐리지도 않은 연초록 사철나무가 무척 정겹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크기가 작아 꽃술처럼 보이는 노란 꽃도 예뻤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될 때까지 누가 무슨 색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항상 연두라고 대답했다. 여름이 되고 진초록으로 녹음이 무르익기 전 봄날의 나뭇잎 색. 사람 나이로 치면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생의 색일 것이다. 무엇으로 자랄지 모르는 아이처럼 꿈이 가득한 색깔의 나무, 내 마음속의 사철나무가 쉰이 넘은 나이에 새롭게 다가왔다.

사철나무 (사진=조현옥)

올해는 봄소식을 붉은색으로 짧게 올라온 사철나무의 꽃밥에서 느꼈다. 소나무 꽃심과도 닮았다. 상록수인 소나무와 사철나무는 어디까지 같은 뿌리이고 어디에서 갈라졌는지 모른다. 바늘잎을 갖고 하늘에 푸르름을 펼치는 소나무와 달리, 사철나무는 사계절 너그러운 초록 잎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사철나무의 꽃말은 ‘변함없음’인가 보다.

「독도 천장굴 주변에는 100년 이상 된 사철나무가 있다고 한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구한말 어민이 울릉도에서 갖다 심었다고도 하고 울릉도에 사는 새들의 배설물을 통해 심어졌을 것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경상북도에서는 이를 보호수로 지정하고 수호목으로 관리하겠다고 한다.」- 네이버지식백과

사철나무가 염분에도 강하고 습하고 건조한 날씨에도 잘 견디니 독도에서도 잘 견디며 왔나 보다. 변함없이 푸른 사철나무의 진가가 독도지킴이의 역할로 잘 드러나는 것이다. 어쩌면 사철나무는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을 닮은 나무 같기도 하다. 모임이나 직장에는 항상 그런 사람이 있다. 우리 사회는 수없이 많은 그들에 의해 지켜지고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내게 작은 걱정만 있어도 큰 걱정 하시는 친정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으려다, 코로나로 인해 막힌 기관지가 수세미를 끓여 먹으면 시원해질 것 같아 수세미 있느냐고 전화를 드렸다. 많이 나았지만 좀 갑갑해서 그런다고 했더니 삼계탕과 파김치, 무나물, 톳무침, 약초를 다린 물까지 가득 보내셨다. 고마운 마음보다 허리도 아픈데 이것들을 하느라 고생하셨을 어머니 생각에 걱정이 앞서 고맙다는 말도 바로 하지 못했다.

명절 때도 어머니는 허리도 잘 펴지 못하며 굳이 손만두며 나물을 다듬어서 시댁에 가져갈 것까지 준비해 주신다. 어머니가 보내신 음식을 보며 어머니의 사랑은 나이를 드시든, 기운이 약해지든 사철나무처럼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십이 넘은 딸에게 여전히 혼자서 김장을 담가 주고 마늘을 갈아 주고 반찬을 해주신다.

사철나무 (사진=조현옥)

초등학교만 졸업한 어머니는 내가 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칸 공책에 바늘자국을 내어 글씨를 따라 쓰게 했고, 신학기 때면 미술, 음악까지 자습서와 평가문제집을 사주셨다. 가격이 적지 않으니 재고 상품으로 구입하는 지혜까지 발휘하셨다. 본인을 위해서는 몇천 원 하는 국수, 좋아하는 대봉감 하나도 사지 않으며, 자녀들에게는 피아노, 컴퓨터, 작곡을 전공하는 딸에게 고가의 악기를 아낌없이 사주셨다.

정작 어머니에게 사철나무 같은 사랑을 주실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조모님과 큰어미님 손에 컸다.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양보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그분들의 사랑이 작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남들이 어머니하고 부를 때, 그럴 수 없는 시간들의 쓸쓸함 또한 컸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더 든든한 어머니가 되고자 지문이 닳도록 일하며 자녀를 위한 일에는 힘을 아끼지 않으셨는지 모른다.

혼자 직장 근처에서 사는 나의 큰딸이 감기 증세가 심하여 출근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퇴근하자마자 그리로 차를 돌렸다. 나도 코로나를 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장에 출근하며 지친 상태였지만, 혼자 있는 딸아이가 격리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내 아픈 것은 싹 잊어버리고 가서 국을 끓이고 과일을 깎아 먹였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하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머니가 아니고 내가 앓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께 들러보고 싶지만, 딸아이가 음성이긴 해도 노인에게 감기라도 전염될까 싶어 며칠 뒤에 가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사철나무처럼 오래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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