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가 개막한 지 한 달이 다 돼 갑니다. 승강제의 전 단계인 스플릿 시스템 도입으로 어느 때보다 박 터지는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됐는데 역시 예상대로 초반부터 물고 물리는 접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강팀으로 분류됐던 팀들이 잇따라 부진했고, 반면 좋은 성적을 예상하지 못했던 팀들이 선전하며 상위권에 포진했습니다. '매 라운드가 결승전'이라는 말답게 이 같은 접전은 시즌 중후반까지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치열한 접전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그만큼 스토리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골을 넣고 경기를 이기는 이야기 뿐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K리그에 더 많은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골 속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스토리들

올 시즌 들어 K리그에는 종료 직전 골이 많이 터지고 있습니다. 당장 지난 4라운드에도 후반 45분 이후에 골이 터져 승부가 갈린 경기가 2경기 있었습니다. FC 서울의 몰리나는 전북과의 4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44분에 자신의 주득점원인 왼발 슈팅이 아닌 오른발 슈팅으로 결승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골 덕에 몰리나는 3월 한 달 내내 득점 기록을 세웠고, 득점 선두로 올라섰습니다. 30개 날카로운 슈팅이 오가는 공방 속에 터진 이 한 방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이 속에 숨겨진 이야기도 흥미를 모읍니다. 4라운드 종료 직전 골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제주 서동현은 친정팀 수원을 상대로 그야말로 비수를 꽂았습니다. 2008년 수원 우승의 주역이었지만 한동안 부진에 빠져 제주로 옮긴 서동현이 친정팀을 상대로 부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인 포항 새 외국인 선수 지쿠는 3경기 연속 승리를 챙기지 못한 팀을 위한 골로 포항 팀 통산 400승을 이끌어냈습니다. 야심차게 데려온 외국인 선수 덕에 어렵게 400승 고지를 밟은 포항이었습니다. 이렇게 골 안에 숨겨진 이야깃거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3라운드에서는 그야말로 감동적인, 사연 많은 골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제 K리그 터줏대감이 된 광주 FC 슈바는 제주전에서 종료 직전 결승골로 3-2 승리를 이끌어낸 뒤 '내가 돌아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선보이며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포항과의 계약 해지 이후 가졌던 마음고생이 생각난 것이었습니다. 딸과 부둥켜안고 운 장면은 많은 팬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 외에도 골을 넣은 뒤 스승에게 달려가 스승이 사용하는 언어로 '감사합니다'고 말한 대구 FC 이진호, 역시 골을 넣고는 태어난 지 2달가량밖에 안 된 아이를 위한 세레모니를 펼친 상주 상무 김형일, 2골을 넣은 뒤에 관중석 한쪽에 자리한 가족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골맛의 기쁨을 함께 나눈 FC 서울 몰리나 등이 사연이 있는 골들로 팬들을 흐뭇하게 했습니다.

▲ 25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2 K리그 FC서울 대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서울 몰리나가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수들의 '사연 있는' 활약상

K리그에 오랜만에 뛰거나, 이제서야 빛을 발하는 선수들의 활약상도 흥미를 끌었습니다. 올 시즌부터 울산 현대에서 뛰고 있는 이근호는 확실히 이전에 비해 자신감 넘치는 공격력으로 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상승세를 탔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출연으로 축구를 잘 모르는 팬들까지 존재감을 남긴 이근호는 국가대표 A매치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보인 뒤 K리그에서도 자신의 통산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렸습니다. 남아공월드컵 엔트리 탈락의 아픔을 씻고 올라서는 이근호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주 스트라이커 배일환은 무명 선수의 설움을 씻고 초반 4경기에서 3골을 넣고 득점 상위권에 포진하며 팬들에 새롭게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무명에서 서서히 팀의 간판으로 거듭나려는 배일환의 행보는 제주팬들, 그리고 K리그를 보는 팬들에게도 새로운 흥밋거리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상위권 뿐 아니라 하위권도 눈길 끈다

순위 싸움도 대단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상위권 싸움 뿐 아니라 하위권 싸움도 더욱 눈길이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위권 팀 간 대결도 많은 팬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지난 4라운드에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 대전 시티즌의 경기는 개막 후 나란히 3연패를 기록한 팀 간 대결이라는 이유만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작년 같았으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올해 도입되는 강등제 때문에 하위권 팀 대결도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단두대 매치'라는 타이틀답게 두 팀의 대결은 매우 치열했고, 결국 홈팀 인천이 2-1 승리로 끝나면서 연패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천이 야심차게 데려온 '2002 월드컵 영웅' 설기현-김남일이 합작해 냈다는 것도 팬들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물론 경기 직후, 인천 마스코트에 폭력을 행사한 대전 팬의 모습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 역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셈이 됐습니다.

점점 더 재미있어질 K리그, 앞으로 더 기대된다

그동안 'K리그가 재미없다'는 편견이 생긴 것은 주목을 끌 만한 이야깃거리들이 없었기 때문인 것이 가장 컸습니다. 그저 경기 결과와 골 넣은 선수들 정도만 관심을 가질 뿐 별다른 스토리가 없다보니 흥미를 가질 포인트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플릿 시스템 도입에 따른 경기력 향상, 그리고 각 구단의 스토리 생성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빛을 발하면서 시즌 초반부터 눈길 끄는 이야기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보다 많은 팬들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아주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장 이번 주말에는 K리그 최고 슈퍼 매치이자 세계 7대 더비 매치 가운데 하나인 수원 블루윙즈와 FC 서울의 대결이 예고돼 있습니다. 벌써부터 양 팀 팬들 간의 신경전이 온라인상에서 뜨겁게 벌어지고 있을 정도인데, 매 경기 치고받는 이 두 팀 간의 이번 대결에서 또 어떤 이야깃거리들이 나올 지 더욱 기대가 됩니다. 이외에도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또 예상하지 못했던 팀의 상승세가 K리그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 것입니다. 박 터지는 싸움만큼이나 많은 이야깃거리가 양산되고 있는 K리그,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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