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는 황제입니다. 비단 1박2일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와 캐릭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수부터 시작해서 예능과 드라마의 다양한 분야에서 모두 빼어난 성과를 거둔 진정한 만능 재주꾼이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성과 그 이상의 의미, 이 청년이 가진 진정한 매력인 진정성, 이른바 엄친아라고 불리는 성실함과 올곧음에 대한 대중의 엄청난 신뢰와 호응이 바로 그 호칭의 진정한 이유이죠. 다양한 계층, 지역,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승기에게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발견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청년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으라면 단연 그의 이름이 호명될 테니까요.

그런데 이 청년은 겉보기와는 달리 굉장히 똑똑하고 심지어 능글맞습니다. 적어도 드라마 속 자신의 배역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더더욱 그렇죠. 이승기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반듯함과 올곧음, 착실함과 성실한 매력은 그동안 그가 소화해왔던 작품 속 캐릭터와 거의 일치하지 않습니다. 처음 본격적인 연기에 발을 들여놓은 ‘소문난 칠공주’에서부터 그는 대책 없는 뺀질이, 귀엽기는 하지만 결코 모범생이라고는 할 수 없는 철부지가 이승기가 걸어온 작품 속 모습입니다.

‘찬란한 유산’에서 그는 잘난 집안만 믿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나쁜 남자였습니다.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에서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부잣집 철부지였죠. 심지어 신작 ‘더 킹 투하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승기는 드디어 왕족이 되어 자신의 철없는 연기를 마음껏 뽐내고 있습니다. 점점 더 신분이 상승하고 작품이 그에게 의지하는 빈도도 더 높아지고 있지만 연기자 이승기의 캐릭터는 일정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좋은 집안, 잘나가는 배경을 가진 번듯한 남자지만 어딘가 뒤틀려 있거나 철이 없는 망나니, 삐뚤어진 엄친아가 이승기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돌림노래와 같은 캐릭터 반복은 비판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감탄과 칭찬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평소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그렇기에 늘 신선해 보이는 장점 덕분이기는 합니다. 이승기같아 보이지 않은 인물을 이승기가 연기한다는 것 자체로도 분명한 볼거리이자 감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낯섦을 뛰어넘는 역량의 발전이야말로 진짜 이유라고 해야겠죠. 같은 인물의 재탕이란 비난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의 깊이와 성장을 매번 보여주며 연기자로서의 성숙을 그 스스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품달이 떠난 이후 치열한 전쟁터가 되어 버린 수목 드라마의 초반 승기를 잡은 더 킹 투하츠의 1회를 장식한 사람은 단연 하지원입니다. 그녀의 압도적인 에너지와 섬세함은 왜 그녀의 출연작이 매번 성공가도를 거두는지를 확연하게 증명해주었죠. 하지만 2회를 주도한 사람은 단연 이승기입니다. 꿈속에서의 일을 상기시키며 하지원에게 각종 굴욕을 안기고, 결국은 눈물까지 흘리게 하는 이승기의 모습은 그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이었죠. 남자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깐죽거림의 최대치, 과연 이보다 얼마나 더 얄밉게 보일 수 있을까 싶은, 악역에게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당연히 그 연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성장이죠.

자신의 최대 강점인 엄친아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비틀면서 결국은 다시 개과천선하는 착한 남자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밀당. 좋은 스토리와 제작진을 고를 줄 아는 안목, 매번 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끌릴 수밖에 없게 해주는 연기력의 성장. 이 청년의 연기와 배역 선택은 늘 보면서 그 현명함과 똑똑함에 감탄하게 합니다. 단 2회밖에 방송되지 않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 한 가지. 더 킹 투하츠는 그에게 또 다른 성장과 도약이 발판이 되어 줄 것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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