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스스로를 '친일사대 극우'라고 칭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만화가 윤서인이다. '21세기 반일은 그냥 정신질환일 뿐'이라는 그의 주장에, 지난해 초 400명이 넘는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일개 만화가의 주장이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을까? 3.1절에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창>이 2022년의 ‘친일’을 살핀다.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는 태극기를 들지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지도 않았다? 윤서인과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다. 그들은 당시에 태극기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한 독립 만세가 아니라,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말한다.

다큐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이 해괴망측한 주장의 근거를 찾기 위해 독립유공자를 찾는다. 고 조병진 애국지사는 홍종현 등과 함께 1919년 4월 12일 경북 영천에서 만세 운동을 벌이셨다. 독립만세기, 태극기를 준비해 만세를 부르던 조병진 지사는 일제에 체포됐다. 감옥살이 대신, 당시 이미 27년 전 일본에서는 폐지된 체벌 형으로 90대를 맞았던 조병진 지사는 그 탓인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고 후손은 전한다.

여전한 친일?

KBS 1TV <시사기획 창> 3.1절 기획 '끈질긴 친일' 편

전문가들은 말한다. 3월 1일 서울에서 벌어진 3.1운동, 그 사건만 두고 보면 태극기를 들지 않은 것이 맞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3.1운동은 3월 1일 서울에서만 벌어진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서울에서 시작하여 그 뒤로 1년 가까이 전국에서 1000여 회가 넘게 이뤄진 만세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 1년 가까운 3.1운동의 기간 태극기는 중요한 상징이었으며, '대한 독립'은 '조선 독립'과 함께 군중들이 외치는 슬로건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윤서인 등은 3.1운동이 소수가 주도한 운동이었으며, 이 운동이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강제되고 참여하지 않았을 때 '보복'이 뒤따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3.1운동의 정체성을 뒤집는 이런 주장은 당시 차이나 프레스 기자였던 외국인 나다이엘 페퍼의 기사만으로도 반박이 된다. 나다니엘 페퍼는 당시 비무장한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고 기록한다. 이런 한국인들을 일본 헌병들이 때리고 찌르고 베고 차고 죽였다는 것이다. 또한 강제 동원으로 인한 보복행위는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점점 그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30년 동안 이어진 수요 집회, 그 맞은 편에 '거짓과 증오의 상징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반대 집회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또한 유튜버들이 이런 상황을 중계한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과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에 대한 모욕적이며 원색적인 비난도 난무한다.

KBS 1TV <시사기획 창> 3.1절 기획 '끈질긴 친일' 편

도대체 왜 윤서인 등의 무리는 위안부 할머니조차 모욕하는 것일까? 그들은 외려 묻는다. 자신의 동생이, 딸이 위안부로 끌려갈 때 아버지나 오빠는 왜 가만히 있었냐고? 사실 이들은 빈농이나 첩이나 기생의 딸로 몸이라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기 때문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서 이미 우리 사회를 한바탕 소용돌이에 빠뜨린 이영훈 교수 등의 <반일 종족주의>의 흔적이 드러난다. 윤서인은 이영훈 교수 등과 함께 북콘서트를 하기도 했다.

이영훈 교수 등은 종군 위안부나 징용을 전쟁 특수의 한 형태라 주장한다.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한 방식으로 의지와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엔의 쿤밍 보고서는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강요와 허위 사실에 속아 23명의 여성들이 미얀마 등으로 끌려다니며 강제로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위안부 사진, 그 주인공인 고 박병심 할머니가 바로 쿤밍 보고서가 증언하는 23명 중 한 사람이다.

다큐는 위안부 모집의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사기 치거나 거짓말을 한 것 역시 '강제'의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큐는 이들 주장이 아베 신조 등 일본 극우 정치인의 주장과 동일하다고 지적한다.

KBS 1TV <시사기획 창> 3.1절 기획 '끈질긴 친일' 편

무엇보다 <반일 종족주의>를 펴낸 이영훈 등이 일본 도요타 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은 사실을 다큐는 지적한다. 또한 책의 공동저자이자 낙성대 연구소의 일원인 이우연이 지난 2019년 유엔에서 조선인 강제징용을 부인하는 증언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 극우단체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사실을 밝히며 '낙성대 연구소'를 중심으로 주장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연구 성과, 거기에 뿌리를 둔 일부 시사 만화가와 유튜버들의 단발적이고 자극적인 주장이 왜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일까? 윤서인 등은 대놓고 '돈'을 들먹인다. 즉 그들에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것이다. 돈이 된다는 것은 이런 주장에 동조하며 심지어 '돈'을 내서 이들의 주장이 확산될 수 있도록 만드는, 우리 사회 내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끊임없이 고소를 당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 주는 우리 사회의 극우적 일군의 여론이 그 주체다.

다큐는 '끈질긴 친일'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극단적 주장을 분석한다. 하지만 서유럽 등에서 등장한 '네오나치즘'처럼, 이제 우리 사회에도 극단적 우파의 등장이 현실화되었다는 지점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극우를 번식시키는 건 그저 일본의 재정적 지원이나 일군의 극단적 의견뿐일까? 일본의 의식 있는 학자들조차 역사에 대한 한국과 한국인들의 안이함을 지적한다.

3.1운동 103주년의 현실

KBS 1TV <시사기획 창> 3.1절 기획 '끈질긴 친일' 편

지난해 윤서인 등을 고소했던 광복회 회원들은 고소 대상에 대한민국 정부를 넣었다. 방관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즉 정부가 국민에 대한 역사적 계몽의 책임을 방기함으로써 이들이 단편적인 지식을 왜곡하거나 확대시킬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북촌에는 ‘나라사랑 역사의 길’이 있다. 과연 북촌을 오고간 사람들 중 이 길을 눈치챈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 동네 터줏대감인 상인들도 알지 못하는 길이다. 표지판 하나 없다. 손병희 집터에 표석은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울시가 세운 표석은 단 16건이다. 그런데 그 중 15건이 1999년 이전에 세운 것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3.1절 기획 '끈질긴 친일' 편

독립운동의 역사뿐일까. 재일교포 사업가가 을사오적인 이완용의 집터를 사들여 원래 집과 닮은 집을 새로 지어도 모르쇠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법을 개정하면서 히틀러가 태어난 곳을 사들여 역사적 건물로 지정하여 남기고자 한 것과 대조된다.

17살에 가족과 함께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지내고 해방 후 군인으로 6.25에 참전한 원병상 선생은 증거자료 부족이란 이유로 여태 서훈조차 받지 못했다. 선생의 후손은 선생이 남긴 기록을 보며 눈물짓는다. 혹한과 배고픔을 이기며 애썼던 독립에 대한 의지가 절절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런 분들이 서훈조차 못 받는 상황, 그런데 한편에서는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과연 친일을 한 사람보다 열심히 살았는가라며 국가적 보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2년 3.1절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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