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에서 만든 ‘찌라시’들이 기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연합뉴스 기사로 보도됐던 사례들이 뒤늦게 드러났다. 국정원은 특히 북한 관련 여론을 주도할 때 이 같은 방법을 자주 사용했으며,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에도 연합 기사를 통해 여론을 움직이려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정찬 사장 연임 반대’를 내걸고 총파업 중인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 지부(지부장 공병설)는 19일 발행한 특보를 통해 “과거 중앙정보부가 북한 관련 기사를 통제하고, 북한을 폄훼하고, 색깔론의 도구로 쓰기 위해 내외통신을 운영했던 그런 식의 행태가 다시 연합뉴스에서 활개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4.27 재보선을 앞둔 지난해 4월24일, 북한부에서는 <北 재보선 앞두고 ‘南南갈등’ 조장 선전전> 이라는 제목의 해설 기사를 송고했다. 북한이 4·27 재보선을 앞두고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을 겨냥해 ‘보수정권’을 심판하자는 내용의 선전선동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였다.

하지만 해당 기사는 국정원이 제공한 자료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는 “정치부를 거쳐 북한부로 전달된 A4 용지 몇 장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가) 작성됐으며 ‘북한=야당편’이라는 등식을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분명했지만 기자들의 반발에도 기사는 출고됐다”고 지적했다.

이 뿐 아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에도 연합뉴스 기사를 통해 여론을 움직이려 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선거를 사흘 앞둔 지난해 10월23일 북한부에서는 <北, 서울시장 선거 앞두고 與비난 수위 높여>라는 제목의 기사가 송고됐다. 그러나 이 기사도 국정원이 제공한 자료에 근거해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더구나 국정원은 자료 뿐 아니라 북한 방송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까지 ‘친절하게’ 제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노조는 이에 대해 “과거 정보기관은 심리전단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내외통신을 관리했다”며 “이제는 연합뉴스가 그 창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철저한 감시를 촉구했다.

이 같은 노조의 지적에 대해 이래운 연합뉴스 편집국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국정원 자료가 연합뉴스에만 나온 게 아니고 통일부 기자실이나 북한 담당 기자들에게 배포된 것 같다”며 “그래서 그런 자료가 나오더라도 그대로 받아쓰지 말고 연합이 축적해 놓은 자료를 토대로 쓰라고 한 적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사람은 출연 금지?

한편, 연합뉴스의 보도전문채널인 뉴스Y에서도 검열 움직임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을 지냈던 정세현 원광대 총장의 출연이 ‘윗선’의 지시에 의해 갑작스럽게 취소된 것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뉴스Y 제작진은 매주 1회씩 진행되는 ‘Y초대석’ 프로그램에 정세현 원광대 총장을 출연자로 섭외했다.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해 줄 권위있는 전문가라는 판단에서다.

제작진은 정세현 총장이 있는 익산 원광대까지 내려가 인터뷰를 녹화하기로 결정했지만 프로그램 제작은 중단됐다. 제작진은 윗 쪽으로부터 “윗선의 지시 때문이다”라는 이유만을 들었다.

노조는 이에 대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내 정치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당시 제작 관계자들의 판단”이라며 “윗선이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 윗선이 누구이든 박정찬 사장에 의해 임명된 사람들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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