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 공천에 있어 민주통합당 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뜨거운 감자는 ‘친노’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선거의 구도를 ‘과연, 죽은 노무현이 산 박근혜를 이길 것인지’의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중동 같은 보수 언론들은 아예 야권의 공천 전체를 ‘친노의 화려한 부활’이라고 평하고 있을 정도다. 기획 된 신데렐라 손수조의 등장에서 볼 수 있듯, 새누리당 역시 친노 바람 차단, 친노 맞춤 대응이 주된 화두다. 이쯤 되면, 가히 ‘친노에 의한 친노를 위한 친노의 선거’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조중동은 민주통합당 전체를 ‘친노’라고 싸잡는다. 그리곤 ‘친노가 민주당을 말아 먹는다’는 프레임을 가동한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내부의 구조는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한명숙, 문성근, 문재인 그리고 이해찬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당권파는 누가 뭐래도 친노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 민주통합당의 주요 보직 및 국실의 기간 조직 중 상당 부분은 486을 비롯한 기존 당료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그래서 일부 언론에선 이를 정교하해 ‘친노’와 ‘486’을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또 ‘그렇다면 486은 친노가 아니냐’는 환원적 질문에 온전한 답변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친노’가 논란이 되는 건, 누가 뭐래도 ‘친노’가 야권의 가장 큰 ‘자원’이자 정권 재창출의 가장 근거 있는 잠재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래서 ‘친노’는 야권을 하나로 묶는데 분명한 ‘한계’로 작동하기도 하고, 야권의 지지층 확대에 치명적 '굴레'로 작용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친노’는 ‘사람 사는 세상’을 함께 꿈꾸었단 자부심이지만, 또 어떤 이를 ‘친노’로 규정짓는다는 것은 편견어린 방식으로 누군가를 묶어두는 고약한 딱지 붙이기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정치의 계절, 가장 뜨거운 주역으로 떠오른 ‘친노’. 그래서 묻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찾아보기 힘든 그 질문이다. ‘친노’ 너는 누구고 얼마나 대단한 혹은 부질없는 것이냐.

최대 계보로 등극한 ‘친노’, 얼마나 많은 것인가?

15일자 중앙일보는 민주통합당 공천을 분석하며 ‘노무현계가 55명으로 최대 계보로’ 등극했다고 전했다.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와 자신의 경력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란 표현을 넣은 이를 모두 범노무현계로 분류’한 셈법이다. 중앙일보의 계산법을 따르면 앞으로 이뤄질 비례대표 공천과 출마하지 않을 당권 인사를 합해 민주통합당 내 친노의 규모는 대략 65명 남짓이 될 것으로 파악된다. 보수 언론의 분류법대로라면 민주통합당 전체 공천자의 1/4 정도가 ‘친노’로 분류되는 셈이다.

이 숫자는 조중동이 그 동안 민주통합당 전체를 싸잡아 ‘친노’라고 규정했던 것을 감안할 때, 충격적으로 많은 수치는 아니다. 최대 계보이긴 하지만 전체의 30% 남짓 이라면 절대적 계보라곤 할 수 없는 비율이다. 하지만 이 계산마저 틀렸다는 것인 친노 인사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한 친노 핵심 관계자는 “친노라고 확실하게 분류할 수 있는 인사 중에서 수도권 경선을 거쳐 살아남은 후보는 전해철(안산), 김창호(분당), 박남춘(인천)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라고 말한다. 노무현 이력을 썼다고 다 친노라고 볼 수 없단 얘기인데, 대중의 지지가 노무현을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보자들의 필요에 따라 노무현 이력을 강조했을 뿐, 큰 의미는 없다는 얘기다.

▲ 친노 관계자들은 수도권 공천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친노 인사로 분류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고 말한다. 사진은 친노 인사로 분류되는 김창호(분당), 백원우(시흥), 전해철(안산). ⓒ연합뉴스

실제, 민주통합당의 공천 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이력 중에는 ‘노무현 재단 운영위원’, ‘노무현 재단기획위원’, ‘노무현 재단 자문위원’ 등이 있다. 어떤 이는 ‘노무현 재단 평생회원’이란 이력을 쓴 이도 있다고 하니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성을 부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이러한 이력을 가진 이들 중 상당수는 민주통합당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에 대해 <노무현재단>의 한 관계자는 “운영위원은 100여명 선, 기획위원은 150여명, 자문위원은 140여명 가량”이라며 “얼굴도 모르는 이도 많다”고 밝혔다. “재단 운영의 특성상 최대한 많은 사람을 모셔야 했고, 뜻을 같이 한다는데 명예직일 뿐인 직함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얘기다.

<노무현 재단>은 노무현계가 ‘폐족’이란 말로 처지를 설명하던 무렵 태동했다. 출범 초기만 하더라도 별다른 정치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고, <노무현 재단> 이력이 득표에 도움이 되리란 계산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급작스런 친노의 증가는 2년 여 남짓 만에 확 바뀐 세상의 인심 탓이란 얘기지, 그 이상 이하도 아니란 항변이다.

친노 패권주의는 존재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구민주계’라고 불리는 호남 지역 의원들 그리고 상당수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번 공천을 ‘친노에 의학 학살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을 뛰쳐나가 신당을 창당하겠단 입장을 밝힌 한광옥 전 최고위원 같은 이들은 “한명숙 체제가 친노 패권주의에 빠져 있다”고 대놓고 힐난하기도 했다. 한 대표 역시 기자들과 만날 때마다 친노와의 관계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곤 한다.

이에 대한 친노의 반응은 한 마디로 ‘억울하고, 미쳐 버리겠다’는 것이다. 누가 친노이고 아닌지도 확인이 안 되는 상황에서, 친노가 누굴 죽일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다. <노무현재단>의 한 관계자는 “지금 친노는 정치적 조직이 없다. 가치에 대한 동의와 지지 뿐이다. 선거와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 민주당 사정에 밝은 복수의 관계자들은 "당 내 486그룹과 친노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민주당은 486들의 힘과 네트워크로 돌아간다”는데 견해를 같이한다. 친노 인사들은 현재 보수언론이 만든 ‘친노 프레임’은 허구이며,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야권 내부의 관점 역시 ‘악의적’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친노가 단일한 대오가 아니며 ‘콘트롤 타워’가 없다는 친노의 항변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지금 민주당 당권파인 한명숙, 문재인, 문성근 그리고 이해찬 등이 모두 친노 계열 인사인 점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뚜렷한 연대의식과 동질성으로 움직이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명숙을 제외한 3인은 한명숙 체제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숨은 실세라고 평가받는 이해찬 전 총리는 ‘탈당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문성근 최고위원 역시 자신이 추천한 인물이 공심위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로 기반이 취약한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문 최고위원의 경우 더욱 자신의 사람을 비례공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단 얘기도 당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 민주통합당의 현 지도부는 누가 뭐래도 '친노 친화적' 인물들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연대의식과 동질성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높다.ⓒ연합뉴스

친노 인사들은 공천의 문제는 친노나 486보다는 나눠먹기가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한 친노 관계자는 “공천심사위 구성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최고위원별로 한 명씩 추천해서 현역 의원 7명이 공심위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7명이 각각 계파의 이해를 대변하는데 충실했고, 친노로 분류되는 의원은 1명뿐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공천 과정을 살펴보면, 사무총장을 비롯해 공천 실무 라인의 길목마다 486들의 모습이 보이고 이들의 정보 '게이트키핑'에 대한 민주당 내부의 불만이 흘러나오는 등 486을 정점으로 한 패권주의가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다만, 그 주체가 ‘486‘이냐 아니면 ’친노‘이냐 그리고 ’486은 친노가 아니냐‘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친노 인사들은 자신들과 변별되는 계보로 ’486‘을 사용하는 빈도가 잦았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486과 친노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또한 사실이다. 사람의 차이와 케이스에 따른 구분 뿐이었다.

친노가 말하는 진짜 친노의 모습

이번 민주당 공천에서 몇몇 지역의 경우 ‘노무현 이력’ 외에 별 다를게 없는 후보가 전도유망한 후보를 꺾어 뒷말을 낳았다. 이에 대해 한 민주당 당직자는 “거짓말을 보태면, 이번에 공천을 신청한 사람 중에 ‘노무현’ 타이틀을 쓴 이들이 수백 명 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렵지 않게 후보가 되었다. 과거 ‘관 장사’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명확한 ‘명함 장사’가 아니냐”는 얘기를 했다.

이 말에 상당한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공천 과정에서 ‘노무현’을 표방한 이들이 부지기수라는 점은 분명하다. 실제, 인터넷에 ‘노무현 재단 기획위원’이라고 검색하면 많은 민주통합당의 예비 후보가 검색된다. <노무현재단>은 ‘기획위원’이 별다른 게 아니라고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그 이력이 친노의 잣대가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표적 이력 2개를 표기할 수 있는 현행 체계에서 그 중 한 가지를 노무현 관련 이력으로 쓴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친노’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통합당 한 예비 후보가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노무현 관련 직함을 사용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조사 결과가 달랐다고 한다. 여론조사에선 노무현 관련 이력을 고지했을 때, 그렇지 않을 때 보다 최소 5% 이상의 지지율 반등이 있었다고 한다.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이 여전히 ‘노무현’에 대한 지지와 의존이 상당한 상황에서 짧은 기간 동안 별다른 정보 없이 후보자가 선출되는 현재의 공천 시스템을 감안할 때, 5% 차이는 매우 큰 것이다.

▲ 통합의 정신을 실현할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진보신당 출신의 박용진 대변인은 지역 공천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박 후보를 꺾은 후보는 '노무현 이력'을 앞세운 후보였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한 친노 인사는 “노무현 이력을 앞세워 단수 공천을 받았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후보는 부산 지역의 몇을 빼곤 없다. 경선을 해야 하는 공천 구조에서 노무현 관련 이력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조직표가 동원되는 경선에서 노무현 이력이 메리트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선 “공천 경선의 경우 조직표 2000명이 분수령”이란 말이 돌았다. 2000명을 모을 수 있느냐를 기점으로 성패가 갈린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예비후보의 관계자는 “경선의 갈림길은 노무현 이력이 아니라 얼마나 지역구를 닦아 났느냐의 여부였다. 모바일 투표 등이 도입되면서 대의 민주주의 확산을 말했지만, 실제 선거는 조직표 동원이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았고 방법적으로도 쉬워졌다. 조직이 없는 친노들의 경우 상당수 고전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증언했다. 실제, 이력이 만만치 않은 친노 후보들이 구 민주당 시절부터 지역에서 표밭을 갈아온 이들에게 참패를 당한 곳도 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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