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결국 무패로 올림픽 최종예선을 마치며 '유종의 미'를 거뒀습니다.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음에도 올림픽팀은 오히려 더 급했던 카타르를 몰아붙이며 마지막까지 우세한 경기력으로 지지 않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3승 3무 무패로 최종예선을 마친 홍명보호는 예상했던 것보다 편하게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며,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이제 올림픽팀에게 남은 것은 최종 목표인 런던올림픽 본선입니다. 홍명보호는 이 순간을 위해 지난 4년을 달려왔습니다.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매번 단계를 밟아오면서 성과를 냈습니다. 초보 감독으로 시작한 홍명보 감독도 어느덧 경력 4년차에 접어들면서 제 색깔을 냈습니다. 처음에 최약체로 평가받던 팀은 어느새 새로운 '한국 축구 황금 세대'로 떠오를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이어온 홍명보호의 행보는 그렇게 올라감, 상승만 있었습니다.

▲ 홍명보 감독 ⓒ연합뉴스
취임 초기, 어려웠던 홍명보호 속사정

홍명보 감독이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한 것은 2009년 2월입니다. 당시 홍 감독은 조동현 감독의 뒤를 이어 U-20(20세 이하) 대표팀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홍명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신뢰는 높았지만 과연 감독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특히 U-20 월드컵 본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갑작스레 조동현 감독에서 홍명보 감독으로 바뀐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홍명보는 4년 동안 대표팀, 올림픽대표팀 코치를 하다가 감독으로써 이때부터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취임 일성에서 홍명보 감독은 "제2의 축구인생이 시작된다. 혼을 다하겠다"는 말로 굳은 각오를 밝혔습니다.

당시 U-20 대표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스타급 선수들이 없었습니다. 2007년에 기성용, 이청용 등이 좋은 활약을 펼쳐 이듬해 성인 대표팀에 꾸준하게 중용됐던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선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2008년 성인대표팀에 잠시 몸담았던 구자철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이런 팀을 홍 감독이 몇 개월 내에 최고팀으로 만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팀'으로 최고 성과 냈던 U-20 월드컵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 하나하나 만들어 가다보면 분명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선수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살리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력을 극대화시켜 강력한 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수 개인 능력보다 팀플레이를 더 중시하는 것, 4년 동안 홍명보 감독이 절대로 변치 않았던 철학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U-20 대표팀은 강해졌습니다. 두드러진 스타 선수는 없었지만 어느 팀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고, 강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이집트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홍명보호는 큰일을 저질렀습니다. 조별예선 1차전을 지고도 2,3차전을 더 잘 치러내면서 조 2위로 16강에 올랐습니다. 좋은 스쿼드를 보유하고도 1승조차 거두지 못하고 예선 탈락했던 2007년의 아픔을 씻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16강에서 남미 강호 파라과이를 3-0으로 꺾는 최고 파란을 이뤄냈습니다. 각급 대표팀에서 파라과이를 만나 어렵게 경기를 치렀던 경험이 많았는데 홍명보호 U-20 팀은 결코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오직 팀이 하나로 뭉쳤기에 이뤄냈던 성과였습니다. 파라과이전 승리로 홍명보호는 1991년 이후 18년 만의 U-20 월드컵 8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쾌거였습니다.

스타 선수들도 그때 등장했습니다. 주장 구자철을 비롯해 김보경, 김민우 등 당시 대학에서 뛰던 선수들이 대거 주목받았습니다. 플레이가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장기를 상대 선수들 앞에서 유감없이 보여준 이들의 모습은 매 경기마다 눈에 띄었습니다. 이때 함께 했던 선수들 가운데 꾸준하게 성실한 모습을 보인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올림픽 예선을 거치면서도 중용되면서 홍명보호의 역사를 함께 했습니다.

▲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전 직후 박주영과 부둥켜안고 있는 홍명보 감독 ⓒ연합뉴스
젊은 선수들의 투혼, 금만큼 값졌던 AG 동메달

U-20 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홍명보 감독은 자연스레 U-23 대표팀, 즉 아시안게임-올림픽 대표팀을 맡았습니다. 급이 올라가면서 스타급 선수를 많이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선수 선택 폭이 넓어지면서 이는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팀에 해가 된다면 해외파라도 중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국내파 선수들에 힘을 실어주고, 선수들 간 경쟁을 유발시키면서 주전, 비주전을 가리지 않는 전력 향상을 꾀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맞이했습니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1986년 이후 24년 동안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한국 축구였습니다. 그리고 첫 판부터 좋지 않았습니다. 북한에게 0-1로 패하면서 불안한 출발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홍명보호는 승승장구 했습니다. 16강에서 홈팀 중국을 3-0으로 완파했고, 8강에서 까다로운 상대였던 우즈베키스탄마저 제쳤습니다. 4강 아랍에미리트는 쉽게 넘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잠깐의 방심이 화를 불렀습니다.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골키퍼를 교체했지만 연장 후반 종료 직전에 결승골을 내줬습니다. 그것으로 목표 달성은 실패했습니다. 홍명보호의 첫 번째 실패였습니다. 선수들은 허탈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3-4위전 이란전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한 상실감에 힘이 빠졌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이란에 홍명보호는 무기력했습니다. 후반 중반까지 1-3으로 끌려다녔습니다. 금메달은커녕 메달도 건지지 못할 뻔 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에 마지막까지 투혼을 주문했고, 선수들은 마지막 힘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기적같이 3골을 몰아넣으며 4-3 대역전승에 성공했습니다. 금메달만큼 값진 동메달이었고, 선수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젊은 선수들에 투혼이 없다는 말이 많을 때였지만 홍명보호 선수들은 달랐습니다. 와일드카드로 발탁됐던 박주영도 선수들의 감동적인 투혼에 값진 성과를 내며 홍명보 감독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수 차출 어려움, 그래도 홍명보호는 일을 냈다

이제 다음 단계는 런던올림픽 예선이었습니다. 최종 목표를 향한 관문을 넘어서는 것이 홍명보호에 주어진 미션이었습니다. 물론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상대팀들이 모두 중동 팀들이었습니다. 더욱이 선수 차출 문제로 조광래 당시 대표팀 감독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서 교통정리를 한다 했지만 선을 넘은 행보에 답답함만 가중시켰습니다. 과거 올림픽팀이 차출 문제에서 비교적 좋은 혜택을 받았던 것과는 딴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휘말리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가려 노력했습니다. 국내 자원 중에도 충분히 좋은 선수들이 있다면서 새로운 선수 발굴을 통해 공백을 메워갔습니다. 이미 홍 감독은 이전부터 대학 선수들을 꾸준하게 불러모아 키웠던 전력도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희망을 본 홍 감독은 과감하게 선수 발탁 폭을 확대해 기량이 좋고 팀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든 기회를 줬습니다. 이를 통해 홍 감독이 가용할 수 있는 스쿼드는 더욱 그 폭이 넓어졌고, 그러면서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3차예선, 최종예선에서 홍명호보는 무패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중동원정 2연전을 앞두고서 가진 유럽 팀과의 태국 킹스컵 경기에서도 홍명보호는 지지 않았습니다. 손발을 맞추러 갔다가 좋은 경기력에 우승컵도 거머쥐었습니다. U-20 대표팀부터 커왔던 선수들의 조직력은 무르익었고, 중간에 합류해 함께 한 선수들 역시 잘 녹아들면서 힘을 보탰습니다. 점점 더 자신감이 쌓여갔고, 원정에서도 이 자신감은 경기력 향상, 조직력 극대화에 큰 힘이 됐습니다. 결국 2승 2무를 거둔 상태에서 가진 오만과의 원정경기에서 3-0 대승을 거두면서 일찌감치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오만 관중들의 비매너 문화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쾌승이었습니다. 그리고 3승 3무 무패로 최종예선을 마치며 또 하나 관문을 넘어섰습니다.

▲ 올림픽 대표팀 ⓒ연합뉴스
'홍명보의 아이들' 꼭 해피엔딩 드라마 만들라

지금껏 3번의 큰일을 치르면서 홍명보호가 거둔 성과는 뚜렷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름의 감동 있는 이야기로 팬들의 기억 속에 존재감을 새겼습니다. 이 정도면 한 편의 영화, 드라마를 만들어도 좋을 정도입니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의 장인 올림픽 본선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말이 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자는 지금껏 잘 해도 진짜 무대이자 목표인 올림픽 본선에서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홍명보호가 걸어온 지난 4년의 이야기가 뚜렷한 줄기를 갖고 있으며, 그 줄기는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수 개개인이 아닌 팀 전체가 성장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성장이 한국축구의 질을 높이는데도 도움을 줬습니다. 그래서 홍명보호가 런던올림픽에서도 또 하나의 좋은 스토리를 쓸 가능성은 높다고 봅니다.

10년 전 대표팀 주장으로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홍명보. 이제는 이 드라마를 봤던 '홍명보의 아이들'이 새로운 드라마 주인공으로 거듭나려 합니다. 결과만큼 과정도 참 아름다웠던 홍명보호 4년, 런던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 해피엔딩 이야기는 바로 올림픽 시상대에 서서 환하게 웃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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