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있는 드라마가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쉽게 빠지고 마는 이유 없는 연장 결정에는 결사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애초의 계획을 벗어나 완성도를 저해하는 시간끌기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돈벌이로만 이용하려는 꼼수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고 있자면 이 작품에게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마지막 회를 앞둔 1회의 내용에 너무나도 많은 내용들을 성급하게 쏟아냈고, 충분히 담아야 했던 의미와 즐거움을 포기해버렸으니까요.
원작에서 가장 절절한 사연을 품고 사라진 설에게는 조금 더 감정을 쌓을 수 있는 여백이 주어졌어야 합니다. 화염에 달려드는 눈송이의 운명을 가진 그녀의 가슴 속 아픔과 순정을 보여주기엔, 그동안 이 드라마는 염을 향한 설의 마음을 너무 소극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자객의 칼을 맞고 쓰러져 염의 품에 안긴 마지막에 와서야 긴 독백과 고백으로 슬픔을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원작의 내용을 접하지 못하고 드라마만을 시청한 이들에게 설이 염에게 품고 있던 연정의 깊이와 애절함이 전달되기엔 그동안 너무나 많은 내용과 감정이 생략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여러 사연들이 급하게 마무리되는 와중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개연성과 현실감도 삐걱거립니다. 아무리 실각했다고는 하지만 왕실의 큰 어른인 대왕대비가 독살당했건만 진상 조사에 대한 분부, 적어도 장례나 삼년상 같은 애도의 움직임은 낌새도 보이지 않고, 궁중에는 별다른 영향도 미치지 못할 뿐더러 이에 대한 반응도 전무합니다. 왕의 종친인 공주와 염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필요한 내용만이 부각되고 나머지 잔가지 내용들은 과감하게 생략되고 무시당합니다. 이를 통해 얻은 것은 속도감과 긴장감이지만 그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재미와 감동의 코드, 현실감과 설득력의 손해도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예측 가능한 무난함이, 잔가지에 집중하는 세심함보다는 선이 굵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과감함이, 해품달이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장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비록 여러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뚝심 있게 휜과 연우의 로맨스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의외의 반전이나 강도 높은 추리게임보다는 어느 정도 긴장감만을 유지시키는 수준의 의문을 품게 해주는 것이 시청자들의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해준 것이죠. 방송 재개와 함께 결말을 앞둔 마지막 직전의 한 시간은 바로 이런 해품달의 미덕을 보여주는 내용 전개였습니다.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하다고 해도 마지막 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게 하는 힘. 해품달은 바로 그런 매력을 가진 드라마였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