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건너편에서 탈북자 북송 반대 촛불집회를 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탈북자 강제 송환 문제가 논란거리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의 단식으로 점점 큰 이슈가 되어 가는가 하더니 급기야 12일에는 이 문제로 스위스 제네바 UN 유럽본부 앞에서 남북의 대표단이 물리적 충돌을 빚는 엄청난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이 문제는 국내 정치에서의 보혁 대결구도에서부터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의 외교적 균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쟁을 촉발할 수 있는 소재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탈북자 문제와 '왕김합의'

이 문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먼저 쟁점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탈북자의 강제송환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탈북자들은 북한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로 인해 핍박받으며 살다 더 이상 이를 참지 못해 살던 곳을 떠나는 일종의 '난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난민협약'에 의해 보호를 받는 존재들이며 1951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중국이 탈북자를 강제송환 하는 것은 협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중국 측의 주장은 탈북자들은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며 오직 경제적 이유에 따라 국경을 넘는 불법월경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처분의 권리는 중국 측에 있는 것이며, 중국은 이들을 자국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국으로 송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관련된 사실들을 잘 살펴보면 중국측의 주장에 대한 재반론도 가능하다. 1951년 난민협약 이후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보다 일반적 규정으로 이루어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가 1967년 발효되었고, 이것의 효력에도 속하지 않는 난민(유민)의 경우에는 국제연합의 결의로 난민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각국이 협력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중국의 주장대로 탈북자들이 경제적 이유에 의한 불법월경자들이라 할지라도 국제연합 차원에서의 결의로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들을 강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이민정책을 지리한 논쟁을 통해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상황은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데에서 정치적인 형태로 일어나곤 하는데, 탈북자 송환 문제 역시 이미 2002년에 외교적 분쟁으로 비화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탈북자 4명이 북경에 있는 한국 영사관 담장을 넘어 들어오는 과정에서 중국 측 공안요원과 한국 공관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런 저런 외교적 교섭 끝에 한국과 중국의 고위 관계자들은 다음과 같은 합의를 하게 됐다. 첫째, 한국 공관에 탈북자가 침입한 경우 한국은 탈북자를 중국 측에 인계해야 한다. 둘째, 중국은 인수한 탈북자를 북한으로 다시 송환하지 않고 제3국으로 추방한다. 셋째, 이 과정은 한국과 중국의 협의를 통해 한다. 이것을 당시 왕위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김하중 한국대사 사이에 이뤄진 합의라 하여 '왕김합의'라고 부른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규칙이지만 이러한 합의를 굳이 해석하자면 이런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북한의 손을 높이 번쩍 들어주기도 부담스럽지만 일방적으로 한국 측 요구를 들어주기는 더욱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단순한 이민정책의 문제가 커다란 외교적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이 문제를 정치적이지 않게, 최대한 당사자간 합의에 의해서,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 대사관을 통한 탈북을 허용했을 경우 남한 내 보수적 정치세력들의 '대규모 탈북 기획' 등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 도대체 중국이 어떻게 이를 컨트롤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왕김합의'는 중국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보의 원칙, 자유로운 노동

이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원칙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실천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을 것인데, 우선 원칙에 관한 부분을 생각해보자. 진보적 원칙이 있고 보수적 원칙이 있을 것이나 나는 진보적 지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진보적 원칙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탈북자 문제에 대한 진보적 원칙은 모든 노동자들이 국경에 얽매임 없이 노동하기 좋은 장소에서 자유롭게 노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탈북자 문제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큰 사회적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며 우리가 노동하고 있는 바로 이 곳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탈북자들은 북한이라는 국가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할 때 그곳을 떠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북한은 그러한 자유를 허용하는 국가가 아니다. 때문에 탈북자들이 북한을 떠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권리이며 진보적 정치철학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탈북이 실현되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실천에 관한 부분인데, 과연 보수적 정치인들이 하는 모양으로 일을 처리하면 이 문제가 해결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 문제는 중국에 있어서는 복잡한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단지 남북문제라면 중국이 이 문제를 통제하는 것이 수월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미국, 일본 등의 주변국들과의 힘의 균형 문제가 여기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미중갈등'에 휘말려 들어가면 곤란해

당장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탈북자 문제를 중국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오는 것을 보면 딱 그렇다. 중국이 덜 민주주의적이며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오래된 대응 방식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중국에 대한 우위를 과시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한국, 북한, 일본, 중국에 의해 결정되는 동아시아 정세를 통제하면서 중국과의 무역비대칭 관계에 대한 협상 동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중국을 미개한 국가로 몰아붙이면서 한국, 일본과의 동맹을 강력히 형성한 후 이를 볼모로 중국에 위안화 절상과 무역 개혁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국제적 사정이 탈북자 문제에 있어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파워게임에서 중국이 코너에 몰리게 되면 물론 수건을 던질 수도 있다. 이때 던지는 수건이 탈북자 문제의 해결이겠는가? 무역 문제일 것이다. 이 갈등이 소강상태가 되면 중국은 탈북자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을 재설정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럴 경우 상황은 '왕김합의' 이전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보수세력도 오매불망 바라는 탈북자 문제의 해결은 더욱 요원한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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