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즐길 때 유의해야 하는 문제,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정의의 편에서 감정이입을 하는 통에 그 작품의 성공 여부가 결국은 승리할 주인공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호소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격돌이 일어나는 선과 악의 싸움에서 가장 빛나야 하는 이는 어차피 최종 승리를 쟁취하게 되어 대리만족을 줄 정의의 사도이기 때문이죠. 얼마나 멋들어진 주인공을 발굴하고,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인기가 좌우된다고 믿는 것이죠.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완전무결의 찬란한 주인공을 만들어 주는 것은 대척점에 서 있는 악의 화신입니다. 악과 비리, 부정과 타락을 일삼는 이의 존재감과 설득력이야말로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중요한 핵심적인 자리라는 것이죠. 정의를 포장하는 것은 쉽습니다. 응당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요. 워낙 어수선한 세상이고, 착한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간직하며 사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그러진 세태라고는 하지만, 그가 올바른 길을 택하고 그 의지를 꺾지 않으며 사는 정의로운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자체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당연한 상식입니다. 정의의 주인공을 구성하기 위한 명분 쌓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정작 이 남자에게 향하는 찬사는 너무나도 미약합니다. 너무 당연한 기대치였기에 반응이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미 유사한 배역을 여러 차례에 걸쳐 선보였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일까요? 물론 그는 추노에서도 가장 강력한 거악의 상징을 연기했었고 여러 편의 영화에서도 더 이상 악독할 수 없는 악역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해를 품은 달에서 이 남자의 역량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에요. 1인자이면서도 2인자, 가장 비열하고 집요하면서도 제일 품이 넓은 기다림과 치밀함을 보이는 악인. 해품달의 이야기를 꾸미는 가장 강력한 축은 바로 김응수가 연기하는 영의정이거든요.
이 포기하지 않는 남자는 왕족에게는 친근함과 은은함을, 자기 사람에게는 큰 어른으로서의 풍모를, 적에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러 가지 모습을 다양하게 배치시킵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함에도 각 면모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유려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욕망을 구성하죠. 휜에게 있어서 완전한 고립과 절망을 느끼게 해준 제일 강력한 적은 바로 영의정 김응수의 존재감이에요. 이런 거대한 적의 존재가 없다면 김수현의 분노와 고뇌, 오열과 의지는 결코 나올 수 없습니다. 해품달에서 김수현을 키우고 그 절절함을 살려준 것은 바로 김응수의 연기력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