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언론이 저품질 대선 여론조사를 무더기로 의뢰하면서 여론이 왜곡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론조사 남발을 막기 위해 공표기준을 강화하고 대안적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는 8일 열린 <언론의 대선 보도, 민주주의 실현 역할 하고 있나?> 토론회에서 “최근 응답자 편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ARS 방식 여론조사가 늘어나고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 보도는 유권자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유권자가 갖고 있는 정치적 성향과 경향성을 (여론조사 결과대로)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8일 열린 <언론의 대선 보도, 민주주의 실현 역할 하고 있나?> 토론회. 한국언론학회, 제주언론학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 주최했다

올해 1월 1일부터 2월 8일까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선거여론조사는 288건이다. 여론조사 결과 보도는 수천 건에 달했다. 김춘식 교수는 “이러한 여론조사 보도는 여론 형성을 방해한다”며 “언론은 이슈에 대한 고민도 없고, 여론조사 결과를 심층적으로 주목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저널리즘은 여론 형성 과정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밝혔다.

또한 김춘식 교수는 최근 등장한 ‘비호감 대선’이라는 표현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갤럽의 호감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 이후 언론은 ‘비호감 대선’이라는 표현을 상시적으로 사용한다”면서 “심층적인 원인 진단 및 해결책 제시에 대한 의지는 없다. 언론의 역량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언론은 냉소적인 비평가의 평론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정준희 한양대 교수는 여론조사를 선거보도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정 교수는 “질 낮은 여론조사가 취재를 대신하고 있고, 언론사 입장에선 여론조사가 가성비를 보이고 있다”며 “언론사는 여론조사를 통해 정치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정준희 교수는 현재 여론조사를 대체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현재 여론조사는 싸구려가 많다”며 “여론조사는 정치인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여론조사 공표 기준을 강화하고, 학계가 유권자가 원하는 것을 측정할 수 있는 대안적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1월 5일 2022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에 참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논의, 선수로 뛰는 조중동"

일부 언론이 ‘선수’로 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대선 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권력화된 언론이 선수로 뛰는 것”이라면서 “최근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를 촉구하고 있다. 특정 정당(국민의힘)의 캠페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밝혔다.

신용호 중앙일보 에디터는 3일 <단일화, 윤석열의 선택> 칼럼에서 “윤 후보로선 단일화 없는 승부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며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혔다고 해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건재하다. 쉽지 않을 단일화, 정치 경험이 적은 그가 과연 하려고는 할지, 한다면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썼다.

강천석 조선일보 논설고문은 5일 <‘尹一化’든 ‘安一化’든 단일화 놓치면 恨 될 것> 칼럼에서 “윤과 안은 3월 9일 혼자 웃기 어렵다”며 “윤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이번에는 철수(撤收)할 수 없다’는 절박한 처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함께 웃고 함께 울 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사슬로 이미 묶여 있다”고 했다.

신미희 처장은 이들 칼럼을 소개하면서 “언론이 선수로 뛰는 본질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언론은 신뢰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춘식 교수는 “언론은 맥락에 대한 설명을 내놔야 한다”며 “일방적인 주장을 반복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정준희 교수는 언론이 ‘상업성’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심상정-안철수-김동연 3지대론’을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들 후보를 엮을 정치철학이 없지만, 언론은 상업성 때문에 밀어붙였다”며 “이는 그릇된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데 유권자가 정책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8일 열린 <언론의 대선 보도, 민주주의 실현 역할 하고 있나?> 토론회. 한국언론학회, 제주언론학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 주최했다

박영흠 협성대 교수는 언론이 엘리트 중심주의에서 못 벗어나고, 유권자를 주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언론은 권력에만 관심이 있고, 나머지는 주변화시킨다”며 “대선 과정에서 언론은 후보자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정책 보도 실종’은 ‘유권자 실종’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박영흠 교수는 정책검증 보도에 관심을 갖지 않는 독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용자들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독자들은 정책검증 기사보다는 사생활 폭로, 정쟁 기사를 더 많이 소비한다. 정책검증 기사의 클릭수가 질 낮은 정치기사의 10분의 1도 안 나온다”고 지적했다.

박영흠 교수는 “그럼에도 이제는 (언론이) 공론장의 질을 향상시키고, 유권자가 이러한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준희 교수는 “심층성 있는 정치 기사는 포털에서 발견되기 어렵다”며 “(포털이 심층적인 기사에) 상당한 가중치를 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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