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안에 강정마을 앞바다에 중국 항모전단이 모습을 보일 것이다. 지금 강정마을에서 기지 건설 반대 굿을 하는 좌파는 그때는 이어도를 중국에 떼주자 할 셈인가.”(조선일보 12일자 사설)

“중국이 이어도까지 넘보고 있는 마당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중앙일보 12일자 사설)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가들은 평화와 환경보호를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 중국과 북한을 돕고 있다. 이쯤에서 무책임한 방해 활동을 접어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를 건설하지 말자는 것은 국가 안보와 국익을 포기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다.”(동아일보 12일자 사설)

▲ 12일자 조선일보 2면


수많은 문제와 단순한 해법

보수언론이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요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제주해군기지 반대론자들을 매국노 취급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진보진영에 대한 문제제기도 어떤 부분은 일리가 있지만 여러 가지 논점이 결합해 있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애국이냐, 매국이냐.”의 이분법 구도로 단순화시키니 문제다.

구럼비 바위 발파 논란으로 재점화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얽혀 있는 논점들을 넓은 영역에서부터 순서대로 써나가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이 대외정책의 기조에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삼을 것이지, 중국과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 아니면 동북아 균형자론을 추구할 것인지의 문제
2. (1에 입각해서 볼 때) 한국의 해군력이 도달해야 하는 적절한 수준의 규모가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
3. (2를 참조해서 볼 때) 한국의 해군력을 효율적으로 강화시키기 위해 기지가 필요하다면 어디쯤에 필요하며 적정한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의 문제
4. (3을 고려해서 생각해 볼 때) 해군기지의 다른 후보들과 제주해군기지 사이의 입지조건 비교의 문제
5. 제주해군기지를 만들 경우 그 입지를 강정마을로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
6.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와 군이 협의하여 사업을 진행했을 때, 지방자치단체의 요구 및 검증절차를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느냐의 문제
7. 강정기지에 훼손당하는 구럼비 바위 일대 생태계의 생태문화적 가치의 판단에 관한 문제
8. 극히 일부 주민의 찬성을 통해 시작된 개발계획의 문제, 그리고 이런 개발을 막기 위한 제도 보완의 문제
9. 지방자치단체의 경찰에 대한 통제력에 관한 문제
10. 반대시위를 하는 시민에 대한 진압의 수위에 관한 문제

이것 역시 기자가 임의적으로 추려본 것으로 완전한 요약은 아니다. 그러나 이 대략적인 정리를 통해 보아도 1번에서 5번까지는 제주해군기지의 군사적 유용성의 문제가 되겠고 6에서부터 10번까지는 그것을 만드는 과정의 절차적 타당성의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 무조건 1번부터 출발할 필요는 없고 2나 3 정도의 전제에서부터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상황을 보면 보수언론은 중국의 이어도 관할권 요구를 활용하여 1번 정도에 단정적인 입장을 던진 후 5번까지의 논의는 생략하며 기지건설의 타당성을 말하고, 6에서부터 10번까지의 문제는 거의 거론하지도 않는다(그나마 거론하는 것이 7번 문제인데, 해군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해군기지 반대하는 자는 북한이나 중국에 가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어찌 보면 북한이나 중국에 가야할 분들은 평화활동가가 아니라 조중동 논설위원들이다. 북한이나 중국에 가면 절차적 타당성의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한편 진보언론의 경우에도 논점을 제대로 나누지는 못한 채, 6에서부터 10번 문제에 대해서만 간헐적이고 피상적인 비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리하자면 보수언론은 지향은 말했으되 현상은 외면했고, 진보언론은 현상은 보도했으되 지향을 밝히기는 주저했다. 막 사건이 터진 상황에서 군사외교 문제에 대한 지향을 피력하는 것이 급한 일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너무 언급하지 않다 보니 군사외교 안보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보수세력에게 온전히 넘겨준 셈이 되었다.

보수세력이라고 할 말이 있는가?

그런데 이어도 사태로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과 해군기지를 특정한 지역에 주민동의 없이 지어도 된다는 얘기가 전혀 다른 논점이란 것을 지적하는 것과는 별개로, 보수언론들의 태도엔 이상한 지점이 있다. 그것은 설령 그들이 북한이나 중국 당국자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국가의 요구가 있다면 국민들의 권리는 차압된다고 믿는 이들이라 가정한다 하더라도 (이런 경우엔 6에서부터 10의 논점을 살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상한 부분이다.

사실 이어도 문제나 독도 문제 같은 해상분쟁 문제에서는 공군과 해군의 문제가 중요하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육군의 숫자를 줄이면서 공군과 해군을 증강하는 내용을 포함한 <국방개혁 2020>을 추진했었다. 이 계획은 이름 그대로 2020년까지 국방개혁을 완수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 수립된 이 계획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표류하다가 천안함 사건 이후인 2010년에 <국방개혁 307개혁> 안에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개혁 시안을 10년 늦춘 <국방개혁기본계획('11~'30)>으로 부활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국방예산의 평균 증가율이 8.8%였던 반면 현 정부는 국방을 경영 효율화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입장을 반영하여 국방예산 증가율을 다소 줄인 것을 보아도 국방개혁에 대한 의지는 참여정부 쪽이 더 높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공군의 핵심전략무기로 도입이 추진되었던 공중조기경보기나 공중급유기 도입을 늦추거나 취소한 사건은 밀리터리 매니아들 사이에서 지탄을 받았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말에 공중급유기인 글로벌 호크를 포함한 첨단 무기를 14조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여 구매하고자 하는데 전력의 효율적인 운용을 고민하지 않은 무분별한 무기 구입이란 이유로 미국 무기업체들의 '봉'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이어도 사태를 맞닥트려, 한국의 미비한 안보태세에 대해 논한다면, 적어도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말하는 만큼의 노력은 기울여 이명박 정부의 국방정책을 비판해야 할 텐데 보수언론 보도에서 그런 내용은 찾을 수 없다. 해군기지 건설을 몇 년 늦추게 될지도 모르는 기지건설 반대 주장이 이어도를 중국에 갖다바치자는 '매국노'의 주장이라면 비슷한 식의 단순논리로 2020년까지 예정되었던 국방개혁을 10년 늦춘 이명박 정부도 '매국노'가 된다. 실제로 참여정부 국방정책에 우호적이었던 몇몇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이명박 정부가 조기경보기나 공중급유기 도입을 지연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매국노' 취급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국방개혁을 높이 평가할지라도, 국가정책을 평가하는 영역에선 단편적인 상황이나 몇 년의 부침을 근거로 결론을 내리는 일이 위험하다 할 것이다. 정부 정책 비판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럴진대, 주민설득이라는 절차적 타당성의 문제가 따로 있는 해군기지 건설이 몇 년 늦춰진다고 반대론자들을 '매국노' 취급하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국방정책이 공군 및 해군 강화를 서두르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도 없었던 조중동이 시위대를 매국노 취급하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국방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야권정치인 및 시위하는 활동가들을 싫어할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다시 1번문제로 돌아와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택하는 문제로 와도 그렇다. 참여정부가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고 국방력 강화에 힘쓸 무렵, 조중동은 참여정부가 한미동맹을 훼손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었다. 즉 그들은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에서 출발한 국방력 증강에 관심이 없었고,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전시작전권을 미국에게 계속 귀속시키면 안보문제는 계속 해결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참여정부가 훼손했던 한미동맹을 회복했다고 주장한다. 조중동이 이 주장에 대해 딴지를 건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들은 이어도 문제에 직면해 “우리가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우려할 필요가 없다. 중국은 그냥 이러다가 말 것이다.”라고 주장하거나, “한미동맹을 유지하더라도 국방력 강화에는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과거 국방문제에 있어 우리의 참여정부 비판은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고 자성해야 하는 것이 옳다. 한미동맹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행동했던 그들이 한미동맹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어도 사태의 책임을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론자들에게 떠넘기고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들이 잡아죽일 듯이 비판했던 참여정부의 국방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코미디다. 그러면서 그들은 친노세력에게 왜 국익을 위했던 참여정부 정책을 계승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친노가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조중동은 역시 큰 틀에서 '국익을 위했던' 참여정부에게 줄곧 저주의 말을 퍼부은 이유에 대해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진보세력도 국방외교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조선일보 이하원 기자는 <이상한 좌파>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좌파 세력’이 중국의 패권은 못 본 척하고 기지와는 관련없는 미국을 끌어들여 ‘반미 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기사는 '미군이 언제든지 제주 해군기지 활용→중국의 강력한 반발→미·중 사이에서 분쟁지역화'라는 좌파 단체들의 제주해군기지 반대논리가 비약이 많고, 미국이 국방예산을 축소하고 중국이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지출하는 세계적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한다.

제주해군기지와 미군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다. 이어도 문제 역시 평화활동가들은 제주해군기지가 중국을 자극하여 일어난 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진보진영에 대한 이러한 차원의 비판은 수긍할만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미국과의 관계에 치중했고 그 내부에서 불평등을 경험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비판에만 집중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앞서 정리한 논점의 1번문제로 넘어올 때, 우리가 상당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미중 등거리 외교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볼 때 한국에 독립성을 보장하기 쉬운 조합은 한중동맹이라기보단 차라리 한미동맹이다. 미국 쪽이 지리적으로 한국과 거리가 멀고, 자신들의 앞마당인 남미나 석유를 확보해야 하는 중동을 제외한 지역에선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기 보다 자유무역의 활로를 뚫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진보세력 중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민족주의자들은 또 한편으로 ‘반백인 인종주의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피부색깔이 비슷한 중국에 무조건 친근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일부 좌파세력 역시 자본주의 국가보다는 사회주의 국가에 친화성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동아시아 영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퇴조하고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다극체제가 올 때 한국의 외교전략이 어째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보진영은 막연하게 미국편향을 벗어나야 한다 읊조리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을 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보수언론이 지극히 추상적인 이분법 도식에서부터 출발하여 구체적인 문제를 모조리 재단할 수 있는 이유도 진보진영에서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보주의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군축과 한미동맹 탈피를 동시에 말하는 것이라면,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에선 중국과의 관계에서 독립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군비경쟁에 뛰어들지 않고도 중국과 미국의 사이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런 전략을 적극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앞으로는 "한중동맹이냐, 한미동맹이냐."의 이분법보다는 "어떤 한중동맹이냐."와 "어떤 한미동맹이냐."에 대해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논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진보언론은 일단 단기적으로는 보수언론이 생략하는 세밀한 논점들에 차근차근 접근하면서 해당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진보진영 내에서 합의되지 못한 큰 틀의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제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중일과의 관계에서도 이어도 사태 비슷한 갈등국면이 일어날 때마다 보수언론의 안보 겁박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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