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11일)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숭의 시대가 활짝 열렸던 하루였습니다. 3년 10개월 공사 끝에 문을 연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의 모습은 유럽 축구장 못지않은 수준이었습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개장을 맞이하기 위한 팬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국가대표 A매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티켓 발권 시스템 문제로 제때에 표를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린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시즌권을 끊고도 경기장을 들어가지 못하는 불상사도 발생했습니다. 바깥 분위기 상으로는 충분히 2만여 석을 꽉 채울 수 있었지만 미숙한 운영, 시스템 에러 탓에 만원 관중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또 장애우석이 일반 관람석으로 활용되는가 하면 일부 무질서한 모습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 개장한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사진:김지한)
친정팀에 비수를 꽂은 라돈치치

어렵게 경기장을 찾은 인천 팬들 입장에서는 홈팀 인천 유나이티드가 개장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정팀 수원삼성 블루윙즈는 인천팬들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그것도 찬물을 끼얹은 주인공은 인천에서 K리그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2005년 인천 돌풍의 주역이기도 했던 공격수 라돈치치였습니다.

라돈치치는 이날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해 90분 풀타임을 뛰었습니다. 지난 개막전에서 골을 넣지 못했던 라돈치치는 전반 29분 만에 오범석의 크로스를 받아 곧바로 논스톱으로 왼발슈팅으로 연결시켜 선제골을 넣으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첫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이어 후반 33분에도 패널티킥을 얻어내 골을 성공시킨 라돈치치는 단숨에 2골로 개막전 무득점의 한을 풀고 날아올랐습니다.

라돈치치의 맹활약에 아쉬워했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인천 팬들이었을 겁니다. 물론 라돈치치가 인천에서 마지막으로 활약했던 것이 2008년이었으니 4년의 세월이 흘렀고, 성남 일화를 거쳐 수원블루윙즈로 이적해서 조금은 멀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2005년부터 네 시즌을 인천에서 활약했던 만큼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남달랐습니다. 그런 라돈치치가 인천 홈경기장 개장 경기에서 2골을 뽑아냈으니 당연히 기분도 묘했을 겁니다.

명불허전 입증했지만 패배를 돌리지는 못한 김남일

이날 라돈치치와 더불어 친정팀을 상대했던 선수가 있었으니 '진공청소기' 김남일이었습니다. 수원 블루윙즈에서 뛰다 일본 J리그, 러시아 리그를 거쳐 고향팀 인천 유나이티드에 올 시즌부터 뛴 김남일은 홈 개막전을 공교롭게 친정팀 수원과의 맞대결로 맞이하게 돼 역시 남다른 기분을 갖고 이번 경기에 임했습니다. 체력 문제로 후반에 교체 출전한 김남일은 중원에서 이따금씩 공격진으로 날카롭게 찔러주는 패스플레이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어서 완벽한 경기력을 펼친 것은 아니었지만 김남일의 존재감만으로도 인천 팬들은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김남일에게 수원 팬들은 아쉬움을 쏟아냈습니다. K리그 복귀를 해서 수원이 아닌 인천을 택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김남일이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전반부터 수원 팬들은 '배신하는 김남일'을 외쳤고, 후반 김남일이 투입돼 볼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쏟아내면서 '배신! 배신! 김남일!'을 더 크게 외쳤습니다. 이에 아랑곳 않고 경기에 집중한 김남일은 경기가 끝난 뒤 수원 서포터가 있는 곳에 홀로 가서 90도로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옛 친정팀 팬들의 관심에 감사 인사를 한 것입니다. 이에 야유를 보인 팬도 있었지만 격려를 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김남일의 투입에도 인천의 패배를 돌리지는 못했습니다. 인천은 라돈치치의 두 골에 무너졌고, 개막 후 2연패를 당하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개장 경기에서 팬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려는 의지도 물거품이 됐고, 경기가 끝난 뒤 허정무 감독은 "모두 내 탓이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친정팀을 상대한 맞대결에서 라돈치치가 이겼고, 김남일은 졌습니다.

▲ 2번째 골을 넣고 세레모니를 펼치기 위해 달리고 있는 라돈치치(좌), 후반 교체 출전한 김남일 (우)
새로운 더비 가능성을 높인 김남일-라돈치치 대결, 그리고 인천-수원

그러나 결과를 떠나서 라돈치치와 김남일, 두 선수가 갖고 있는 스토리 때문에 인천, 수원 간의 대결은 더비 매치로 떠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수도권 더비, 수인선 더비로 각광받을 수 있기는 했어도 이렇다 할 스토리가 없어 밋밋하기만 했던 인천, 수원 대결은 이번 개장 경기에서 많은 화젯거리를 낳으며 앞으로의 대결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는 명암이 엇갈린 라돈치치, 김남일 모두 올 시즌 각 팀이 야심차게 데려온 자원들이라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꾸준하게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 매치가 벌어질 7월 29일 수원 빅버드에서 열릴 경기에서는 과연 어떤 선수가 웃게 될지, 그리고 이들의 활약에 따라 또 어떤 이야깃거리들이 이 매치에서 양산될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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