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공개 하루 만에 전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이미 <오징어 게임>의 기록을 앞서가고 있다. 물론 장기적인 인기를 구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징어 게임>만큼 밈으로 만들어지고 유행될 요소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2011년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로 만들며 제작진은 무엇을 고민했을까? 장르는 명확하다. 그리고 웹툰 원작은 학교에서 버려진 아이들이 스스로 좀비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담았다. 10년이나 지나 제작진이 고민한 것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찰이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팬데믹 시대를 3년째 살아가고 있는 상황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세월호 참사'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물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견들을 낼 수 있다. 단순한 학교 좀비 이야기로 정의하고 즐길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이 드라마가 표방하는 메시지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언급이다.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를 묻고 있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학교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 집단 괴롭힘 문제가 결국 거대한 사건으로 비화되며, 학교만이 아니라 도시 하나를 전멸시키는 재앙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따돌림에 시달리는 아들을 위해 만든 분노 바이러스는 학교와 병원을 시작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를 통제하거나 관리해야 할 교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아이들의 담임만이 마지막까지 아이들 곁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며 지켜내려 사력을 다하지만 선장이나 다름없는 교장은 자신의 방에 숨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방치된 아이들은 왜 그런지도 모르고 좀비가 되어간다. 그리고 거대한 학교는 서서히 침몰해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교사를 비롯한 어른들은 숨기에 급급하고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쓰러져가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친구였던 아이들과 맞서 싸우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불만 가득했던 한 과학자가 만든 분노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학교만이 아니라 도시를 휩쓸기 시작했다. 거세지는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국가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문제의 효산시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국가가 개입하며 사건은 확대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다시 한번 학생들을 버렸다. 헬기들은 수없이 떠다니지만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오는 이들은 없었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학교로 향한 부모들만 희생당할 뿐 정작 정부는 그들을 구하러 오지 않았다. 구조 계획 없이 도시를 봉쇄한 그들의 행태는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을 구하러 군인이나 경찰, 구조대가 나서야 하지만 그들은 봉쇄만 할 뿐 아이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방어막을 뚫고 딸을 구하기 위해 나선 온조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가 8년 전 직접 목도했던 세월호 참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그리고 온조 아버지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노란 리본을 다는 모습은 너무 강렬해서 울컥할 정도였다. 아이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그저 나올 수 있는 연출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듯했다. 극 중반 아이들이 캠코더에 가족들에게 영상을 남기는 장면은 '세월호 참사' 당시 기운 배에서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모습과 너무 유사해 몸이 떨릴 정도였다.

<지금 우리 학교는>는 원작과 달리, 많은 부분이 추가되었다. 재난의 시작점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급격하게 확산되며 도시 전체를 빠르게 집어삼키는 과정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 괴롭힘, 빈부격차,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느냐의 문제 등이 담겨 있었다. 여기에 만약 내가 이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인간적인 고뇌를 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도 반복해 등장한다. '세월호 참사' 하나를 모티브로 삼아 이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참사를 두고 이 드라마를 보면 많은 부분 과거의 참사를 떠올리게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가는 그저 봉쇄하고 지켜볼 뿐 아이들을 구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침몰해가는 상황에 아이들은 스스로 살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하나둘 쓰러져가고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좀비가 되어버리는 상황은 남겨진 자들의 고통을 드러낸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몇몇 어른들의 모습 역시, 실제 '세월호 참사' 당시에 있었던 사례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힘겹게 살아남은 아이들만이 다시 그곳에 찾아가는 과정도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저 잊히기를 원하고 이제 그만하라는 어른들과 달리, 온조를 비롯한 아이들은 친구를 찾아 다시 봉쇄된 학교로 향한다. 그들이 찾은 그곳에서 만난 친구는 결국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들과의 조우이기도 하다.

좀비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절비(=절반만 좀비)'는 어쩌면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기도 하다. 살아있지만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힘든 지독한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들은 어쩌면 여전히 '절비'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라는 테마와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풍성했다. 조금은 과잉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개인에 따라 아쉬움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읽거나 다른 사회적 이슈, 혹은 시스템 부재의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다. 12개의 이야기 속 수많은 아이들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 많은 화두를 던졌다.

가만히 있으라며 구조를 기다리라던 드라마 속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정부 관계자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는 어른을 믿지 않겠다는 생존자 온조의 말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진짜 화두였다. 어른을 믿을 수 없는 사회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8년이 흐른 지금, 어른들이 제대로 된 어른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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