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책사 엄창록이라는 실존 인물을 다룬 <킹메이커>는 빛과 그림자의 이야기다. 이때의 빛과 그림자는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가깝다. 이때의 빛은 물론 후광이라는 호를 쓰기도 한 김 전 대통령이고, 네거티브의 달인이라는 엄창록은 그에게 가려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이다. 역사적 거인을 다룬 영화지만 독특하게도 빛의 밝기보다 그림자의 어둠에 집중한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 이미지

세상이 바뀌는 꼴이 보고 싶습니다

1961년 강원도 인제. 국회의원에 내리 두 번 낙선하고 세 번째 도전 중인 김운범(설경구)에게 서창대(이선균)가 찾아온다. 실향민 출신이자 약방을 운영하는 창대는 다짜고짜 선거 캠프에 자리를 내달라고 요구한다. 운범은 처음엔 정중히 거절하지만 운범의 10가지 공약을 ‘빨갱이’라는 한 마디로 무너뜨리는 상대의 선거전략에 비해 비효율적이라는 창대에게 설득되어 그에게 기회를 준다. 훗날 ‘선거판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창대의 활약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1967년 목포에서 펼쳐지는 운범의 국회의원 선거까지 <킹메이커> 1막을 관통하는 대사는 ‘세상이 바뀌는 꼴이 보고 싶다’이다. 빨갱이라는 근거 없는 모함을 받는 운범. 똑똑하지만 이북 출신이라는 낙인을 벗어날 수 없는 창대. 좁은 운신 폭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지닌 둘이 바꾸려는 것은 세상이다. 허나 세상을 바꾸려는 둘의 방법론은 다르다. 정의가 사회적 원리라는 운범과 정당한 목적을 위해선 어떤 수단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창대의 오월동주는 위태롭기만 하다.

1막은 어쨌든 처음으로 뜻을 함께한 운범과 창대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목포 지역에 고무신과 현금을 무차별 살포한다. 민정당은 유력한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하는 운범을 저지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국무회의를 주최하며 지역발전을 약속하며 전방위로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던 운범 쪽이 상대방의 금권선거와 네거티브를 역이용해 역전승을 거두는 모습은 시대를 앞선 창대의 악마의 재능을 검증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 이미지

자네, 준비되었는가

1971년 대선을 앞두고 시작하는 2막은 장르 변신을 꾀한다. 제1야당의 노회한 총재 강인산(최인환)에 맞서 운범과 김영호(유재명), 이한상(이해영)은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며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다. 당시 여당에 은밀하게 협조했다는 의혹으로 ‘사쿠라’라는 별명을 가진 유진산 총재에 대항해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이 등장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긴박하고 치열한 수 싸움이 시작된다.

운범은 최연소 원내총무를 맡았던 김영호, 해방정국부터 반탁운동으로 이름을 알린 이한상에 비해 열세였지만 역시 창대의 기막힌 작전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신민당의 대선후보 자리에 오른다. 대선후보 선정을 위해 대의원을 차지하려는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땀을 쥐게 하지만 <킹메이커>는 이 과정에서 서서히 약점을 드러내고 만다. 짙어지는 창대의 그림자와 대비되어 더 강렬한 빛으로 남아야 할 운범의 캐릭터가 힘을 잃는다.

1차 투표를 기권한 한상이 운범을 지지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차기 당 지도부와 공천에 대한 약속이었다. 선거인단을 앞에 두고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급하게 명함에 휘갈긴 각서로 대의원을 거래하는 모습은 시대적 한계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도 야합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며 등장한 3인의 정책적 차별점도 제시되지 않는다. 정치적 명분 대신 대선후보로 당선되기 위한 당위만 앞세운 2막에서 사실상 운범과 창대는 같은 캐릭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와중에 운범은 창대에게 계속 ‘준비되었는가’ 질문한다. 창대는 그간 운범의 성장을 위해 열정을 바쳤으나 이북 출신이라는 한계와 대중 앞에서 떳떳할 수 없는 전략 때문에 앞에 나설 수 없던 상황이다. 그런 창대에게 운범은 준비가 되었나 묻는다. 떳떳한 보직으로 임명하여 대선을 함께하고 후에 국회의원 공천도 보장해주겠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극 중에서 정당성을 일부 상실한 운범의 물음에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는 창대가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빛과 그림자가 겹치는 회색지대에서 2막이 끝난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 이미지

어떻게 이기는지가 아니고 왜 이기는지가 중요하다

1971년 대선과 함께 3막이 시작된다. 3막은 사실상 1막의 반복이다. 정치인의 자격론에서 시작되어 직업윤리를 묻는 것으로 끝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유서 깊은 논쟁거리는 1막에서 깔끔하게 봉합되지 못했던 운범과 창대의 대립을 통해 관객에게 던져진다. 과연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 3막의 중심이다.

대선 후보로 나선 운범은 첫 번째 공약으로 향토예비군 폐지를 발표한다. 창설 의도와 달리 정권유지와 관제사업에 동원되는 등 향토예비군에 대한 반발이 높았으나, 당시 빨갱이라는 루머에 시달리던 운범이 내세운 공약이라는 점에서 많은 반발과 의혹을 사기도 했다. 논란이 크던 중 미국 방문 중이던 운범의 자택에 폭탄테러 사건이 터지고 창대는 자작극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게 된다. 폭탄테러로 이슈를 바꿔보려는 의도였다는 혐의였다. 창대는 혐의 없이 풀려나지만 귀국한 운범은 창대에게 진실을 묻는다. 운범은 어떻게 이기는지가 아니라 왜 이기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창대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한다. 충성을 다했지만 끝내 그림자로 남을 수밖에 없던 창대는 독설을 내뱉고 자취를 감춘다.

문제는 앞서 지적했듯 운범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말하지만 플라톤처럼 행동했고, 창대는 플라톤처럼 움직이고는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민을 마음에 두며 2막이 종료됐다는 점이다. 창대라는 그림자를 짙게 만들기 위해서 운범이 더 밝은 빛을 뿜어야 하지만 이미 그에게는 불투명한 가림막이 둘러쳐져 버렸다. 극 중에서 창대가 진범이든 아니든, 실존 인물의 정치적 행보가 어쨌든 두 사람의 마지막 독대는 강렬한 흑백의 대비라기보다 회색지대 스펙트럼 어딘가에 위치한 듯 보인다.

테러사건이 중정의 계략인지 창대의 자작극인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연장선이다. 창대가 자취를 감춘 후 영호남 지역갈등이 심화하여 운범은 아깝게 승리를 놓치는 연출로 대비되는 구도를 지탱하려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노선 대립보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감정싸움 비슷하게 끝나는 것도 결국 빛과 그림자로 나뉠 수 없는 정치적 동반자라는 걸 확인시켜줄 뿐이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 이미지

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

씨네21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10대가 봐도 재미있는 영화를 추구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킹메이커>는 반세기 전 사건을 다루지만 스타일리시하며 속도감 있는 다채로운 연출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한국상업 영화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과감한 조명의 사용으로 캐릭터의 구도를 표현하는 방법도 충분히 칭찬할 만하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관객에게 ‘정치인은 무엇인가’라는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란 의의도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정치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킹메이커>는 김대중 대통령의 사상을 대변한 ‘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이라는 문장에서 출발한 영화처럼도 보인다. 당연히 운범은 서생이고 창대는 상인이다. 그러나 현실의 김대중이 위대한 정치인이었던 이유는 서생이기만, 상인이기만 했던 게 아닌 까닭이다. 나눠서는 안 되고 나뉠 수도 없는 문장을 둘로 쪼갠 순간부터 완벽한 정치 영화로서의 한계선이 그어졌는지도 모른다. 빛과 그림자가 각각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