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27일로 창립 10주년을 맞이했다. 해직 언론인들이 주도적으로 창립해 2012년 1월 27일 첫 방송을 내보낸 뉴스타파는 초기만 하더라도 프로젝트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18대 대선 이후 대안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커졌고, 이는 뉴스타파의 광범위한 후원으로 이어졌다. 이후 2013년 3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란 이름으로 본격 독립언론의 모습을 갖췄다.

그간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보도와 <국정원 간첩 조작사건> 연속보도, <죄수와 검사> 연속보도 그리고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동영상> 보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뉴스타파 10주년에 대한 소회를 들어보고자 지난 21일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사진제공=뉴스타파)

뉴스타파가 시작된 지 어느덧 10년이에요. 소회가 어떠신지요?

”감개무량하죠. 저희도 10년이나 지속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비영리 독립언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기존 언론사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해왔음에도 이 모델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어떤 조직이든 그것을 운영하려면 인력과 예산, 시설, 장비 등이 필요하잖아요. 기성 언론이 그런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속시키려면 외부의 힘에 굉장히 의존하는 구조란 말이죠. 이런 구조에서는 올바른 저널리즘이 부차적인 게 돼 버립니다. 그래서 기사형 광고나 약탈적 광고, 협찬 영업 행태, 포럼 장사 같은 온갖 문제가 대두됐고, 언론의 신뢰는 끝없이 추락해버렸죠. 저희는 기성 언론에서 낼 수 없는 목소리,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된 기사, 특히 보도자료 베껴 쓰기나 대변인이나 유력자들의 말 받아쓰기, 클릭 장사용 기사 등을 완전히 배제하고, 정말 공적 가치가 있는 독보적 콘텐츠를 꾸준하게 생산하는 방식으로 우직하게 갔거든요. 이런 모델이 주효한 거죠.“

앞서 이렇게 오래 지속할 줄 몰랐다고 하셨는데, 애초 단기간 할 생각이었나요?

”그렇죠. 우리가 2012년 1월 27일 첫 보도를 했는데 그때가 이명박 정부 임기 마지막 해였거든요. 기억하시겠지만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언론 탄압과 공영방송 장악이 이어졌고, 또 한쪽에서는 종편 허가 등으로 언론판을 완전히 망가트려 놓았잖아요. 그래서 언론생태계 자체가 굉장히 혼탁해지고, 국민이 꼭 알아야 할 핵심적인 정보들이 주류 매체를 통해서 오히려 가로막히거나 왜곡돼 전달되는 상황이 돼 버렸죠.

특히 2012년 1월 저희가 시작할 때는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요 언론사의 선거 보도가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기 때문에 당시 이명박 정부 때 해직된 기자와 PD들이 모여서 ‘우리가 대선 때까지만이라도 한 번 해보자고 결의했고, 길어야 1년 정도라고 생각했죠.“

뉴스타파 CI

처음엔 후원도 안 받았는데?

“처음 시작할 때 후원받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2012년 상반기 6개월간 저희 제작진은 일종의 자원봉사 개념으로 일했습니다. 인건비는 거의 안 들어가는 구조였죠. 하지만 4대강 문제나 강정해군기지 문제 등을 취재하려면 출장비는 어쩔 수 없이 필요했죠. 그때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예산이 일부 있었습니다. 그 예산 가지고 6개월 동안 활동을 했어요.

기억에 남는 게, 저희가 임시사무실로 쓰던 언론노조 회의실로 많은 시민이 찾아와서 먹거리도 갖다주시고 야근 때 쓰라고 간이침대도 보내주셨어요. 돈 봉투 들고 오시는 분들도 적지 않았고요. 하지만 저희는 돈은 다 완곡하게 사양했습니다. 그 이후 7월부터 시즌 2에 돌입하면서 언론노조 예산이 고갈되고 출장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서 공식적으로 후원시스템을 도입하게 됩니다.”

대표님은 2012년 하반기 즈음 합류하신 걸로 기억하는데?

“아닙니다. 저는 공식적으로는 2013년 2월 대표 자격으로 합류했고요. 비공식적으로는 처음에 이 ‘뉴스타파’라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검토하는 단계부터 참여했습니다. 그게 2011년 말이었어요. 그때는 제가 아직 KBS를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드러내고 공식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자문위원을 맡았고요.”

처음 뉴스타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2011년 하반기에 언론노조 민실위를 중심으로 일종의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주류 매체들이 못하거나 안 하는 이슈들을 취재해 보도하자는 구상을 했는데, 당연히 꼭 필요한, 또 어떤 책임감 때문에 꼭 해야만 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게 됐죠.”

첫 방송 나갈 때 기억나세요?

“생생하게 기억나죠. 유튜브에 올리고 오디오 파일은 당시 대세였던 팟캐스트로도 냈는데 반향이 엄청났습니다. 첫 리포트를 올려놓고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어요. 과연 누가 봐주기나 할까 했죠. 뉴스타파라는 이름도 이른바 ‘듣보잡’이었고, 그때는 입에 딱 달라붙지 않았거든요. 그 당시에는 ‘이게 뭐지?’란 느낌이 있었죠. 어쨌든 그런 이름을 달고 유튜브에 올리긴 했는데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찾아볼까 하는 걱정이 들었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여니까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첫 방 조회 수가 유튜브에서만 100만 넘게 나왔어요. 당시 기준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수치죠.”

2013년 6월 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인터넷 독립언론인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왼쪽)와 최승호 PD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확인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4차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DB)

2013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란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시작한 거잖아요?

“그렇죠. 2012년에는 일종의 임의조직이었고 18대 대선이 끝나고 해산하려고 했죠. 그런데 12월 19일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고 난 그 다음 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거예요. 당시 대세 소셜미디어인 트위터를 중심으로 ‘진짜 뉴스를 살리자,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후원하자’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후원회원이 천 명씩 가입하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해 연말까지 회원이 거의 2만 명 가까이 늘었어요.

시즌 2를 끝으로 종료했는데, 일단 다시 모일 수밖에 없었어요.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건지 장시간 고민했는데 결국 다시 해서 ‘제대로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조직 형태는 비영리민간단체로 가고, 조직 명칭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라고 붙였어요. 제작진도 대거 보강하고 2013년 2월에 창립대회도 열고 공식 출범을 알렸죠.”

그때 최승호 PD가 합류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랬죠. 최승호 PD도 당시 해직 언론인 신분이었습니다. 공식출범을 준비하면서 ‘놀면 뭐 하냐. 같이 일해보자. 앵커를 맡아주면 좋겠다’라고 권유했고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최승호 PD는 MBC <PD수첩>을 상징하는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이고 <PD수첩> 진행도 해서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분이죠.”

최승호 PD 합류가 뉴스타파 자리잡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겠죠?

“상당한 역할을 했죠. 우리가 2013년에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라는 조직을 갖추고 출범할 때 저는 KBS 탐사보도 팀장 출신으로 대표를 맡았고, 최승호 PD는 MBC 출신으로 앵커를 맡았죠. 최 PD 앵커 체제는 뉴스타파 인지도를 올리고 뉴스타파 콘텐츠의 신뢰도를 강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

뉴스타파의 10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보도라면?

“기억에 남는 보도가 많아서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굉장히 힘든데, 꼭 하나만 얘기해야 되나요? 여러 개 해도 됩니까?”

뉴스타파 <권력감시> 보도 (뉴스타파 홈페이지 갈무리)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조세도피처 추적 보도입니다. 2013년에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의 유일한 한국 파트너 언론사가 돼 협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프로젝트죠. 재벌 일가, 대통령의 아들, 대기업 오너부터 무기거래업자까지 수백 명이 한국인들이 탈세하거나 검은 자금을 숨기기 위해 역외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해외 비밀계좌 만든 행위를 10년 가까이 추적하고 있습니다. 조세 당국이 우리 보도를 근거로 수백억 원대 탈세액 추징하고, 조 단위의 국내 자금 해외 유출 사례를 적발했죠. 탈세범 사법 처리도 잇따랐습니다. 그다음으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 이건희 성매매 의혹 보도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 보도입니다.”

이건희 회장 동영상 보도는 화제가 많이 됐잖아요.

“유튜브 조회만 1,400만이 넘었더라고요. 화제가 많이 됐기는 했는데 우리는 화제성 때문에 보도한 건 아닙니다.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의 배경에, 구체적으로 말해 그 사안이 발생한 장소나 자금 등의 문제에 그룹 차원의 개입이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문제에 보도의 방점을 뒀죠.”

뉴스타파가 어려움을 겪은 일이 두 번 있었습니다. 2014년 재보선 때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검증 보도와 2019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 보도죠.

“저희가 내보낸 권은희 후보, 윤석열 후보 관련 기사는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 보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권은희 후보의 경우 재산공개 내역을 저희가 분석하다가, 권 후보 배우자가 비상장법인 명의로 상가를 상당히 많이 소유한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를 썼죠. 재산공개 내역에는 해당 비상장법인의 주식 액면가만 신고돼 있어서 상가 보유 현황은 나타나 있지 않고 실제 보유 재산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내용이었는데요. 물론 불법은 아니지만, 재산공개제도의 맹점을 이용했다는 문제도 함께 다뤘습니다. 당시 권은희 씨는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죠. 이분들이 저희 보도에 거세게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죠.

윤석열 후보 관련 보도도 전개 과정은 비슷한 맥락입니다. 윤석열 후보 케이스는 특히 정치인이나 한국 언론, 언론 이용자가 종합적인 사실관계를 통한 판단보다는 정파나 진영논리에 많이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2019년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 당시에 여당 국회의원들은 윤석열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한사코 감싸줬단 말입니다. 반면 야당 의원들, 김진태 주승용 나경원 의원 등은 윤석열 후보를 혹독하게 비판했죠. 이들의 말에 따르면 검찰총장도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어요. 그런데 그때 그렇게 윤석열 후보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대부분 윤석열 캠프에 들어가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죠. 반면 청문회 당시 윤석열 후보를 그렇게 감싸던 여당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윤석열 후보를 비난하고 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기본적으로 정파성과 진영논리라는 겁니다. 어떤 사실이 있으면 아무리 진영이 달라도 그건 인정하고 가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서로 정파적 이익 때문에 이전의 입장을 그냥 완전히 바꿔버리는 거예요. 이게 한국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고 한국 언론의 문제이기도 하죠. 그런데 저희는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는 거죠.”

뉴스타파 프로젝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뉴스타파가 언론개혁에도 중점을 두고 보도하잖아요. 대표님은 현재 언론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지금 언론은 굳이 제가 말을 보태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매우 망가져 있죠. 현재 대선 관련 보도에서 보듯이 거대매체들은 정파적 이익과 진영논리에 빠져서 저널리즘의 원칙은 팽개치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일종의 정치 선전물, 심하면 독극물 같은 것을 내보내며 수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으고 소위 자기편에서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현상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고요. 또한 갈수록 상업 논리가 언론계를 심각하게 지배하면서 이게 저널리즘을 하자는 건지, 그냥 양아치식 돈벌이를 하자는 건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요즘 언론이 확증편향으로 시청자나 독자가 듣고 싶은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그렇죠. 그런데 이건 어떤 일방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 이용자와 언론사 간 상호 작용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언론 이용자들이 매우 두텁게 존재하고 있고, 또 언론도 거기에 맞춰줘야 장사가 되는 시스템이 점점 고착화되다 보니 언론사도 그런 쪽으로 기사를 쓰게 되고, 그래서 이게 악순환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언론의 정파성, 이윤 동기하고도 결국 맞물려 있는 것이죠. 어쨌든 원초적 문제는 결국 언론에 있다고 봅니다. 언론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현상은 그냥 소용돌이처럼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난 16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배우자 김건희 씨 녹취록을 공개했잖아요. 방송 어떻게 보셨어요?

“자세히 보지는 않았어요. 녹취록을 보도하는 건 법원의 판단에서도 나온 것처럼 그 자체는 공익적 요소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탐사보도라고 하면 그것을 그대로 틀어주는 방식으로 가는 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7시간 넘는 긴 대화 속에서 공익 가치가 있는 팩트를 뽑아내고 그것을 매우 치밀하게 검증해서 시민들의 알 권리에 부합하는 보도를 해야겠죠.”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한국 언론의 구도와 상황을 그대로 두면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 생태계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뉴스타파가 추구하는 비영리, 비당파적, 독립 탐사보도 전문 매체로서의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하고 확대해 나가면서 동시에 우리와 같은 독립언론을 육성하고 연대하고 협업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습니다. 곧 구체적 내용을 공개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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