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새벽부터 전개된 구럼비 바위 폭파 여론이 8일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게 된 과정을 정리해보자. 먼저 현장에서 보내오는 트위터와 사진을 통해 형성된 SNS 여론이 정치인과 언론에게 압력을 넣고, 실시간 중계가 가능한 인터넷 매체가 보도를 통해 다시 한번 SNS여론을 규합하며, 일종의 ‘공굴리기’를 통해 커진 이 막강한 여론에 정치인들이 반응하면서 주류언론이 보도할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이 곧바로 제주도에 날아갔고 급기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내려왔다. 이들이 내려오지 않았다면 제주도에서 43톤의 화약이 터지든 말든 우리는 대부분의 조간신문에서 이 소식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조중동의 반응은 그들이 이렇게 바뀐 세상의 룰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억지로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그들은 이 사건을 치밀하게 기획된 정치적 사건으로 바라본다.

▲ 8일자 중앙일보 1면

가장 오래된 음모론

반대파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은 구럼비 바위 발파를 구실로 4월 총선의 새로운 이슈 메이킹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조선일보 3면)

정치권 일각에선 ‘한·미 FTA에 이어 제주 해군기지를 반미(反美)의 맥락에서 정치 쟁점화해 야권 연대의 접착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한 대표는 이날 밤 주민들 앞에서 ‘야권 연대를 이뤄 해군기지 공사를 반드시 중단시키겠다’고 말했다.(중앙일보 1면)

▲8일자 조선일보 3면

‘반대파’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폭발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것을 “구실로 4월 총선의 새로운 이슈메이킹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들의 생각엔 이 세상엔 우발적인 사건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선’을 이룬다. 이제 강정마을은 4월 총선의 새로운 이슈가 될 것 같다. 하지만 SNS 여론이 폭발하지 않았다면 정치인들이 그리로 내려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째서 여론이 그것을 반대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닐까?

“야권 연대의 접착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란 말도 사후적 분석이긴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이를 기회로 삼아 그것을 노릴 수는 있겠지만, 이 역시 이미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없으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통합당의 상당수 정치인들은,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변경해야 되는 처지다. 그들 입장에서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조중동의 입장으론 ‘기획’이 된다. 이 맥락엔 ‘반미’가 개입하고, 여기서 그렇게까지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으나 결국엔 ‘친북’이 드러날 것이다. 그들은 아래와 같이 단지 그 가능성을 슬쩍 암시만 하는 것만으로 지지세력을 규합할 수 있다.

23일째 계속되고 있는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 탈북자 북송 저지 시위를 외면해 온 야당 지도부가 동시에 제주도에 온 것이다.(중앙일보 1면)

즉, 조중동이 대변하는 한국 보수진영의 세계에서, ‘나’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은 독립된 것들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선들을 규합하는 핵심적인 정서는 ‘반미’이며, 그 선들을 조종하는 이들은 북한이다. 이 단순명쾌한 정치평론은 과거 월간조선 등에선 ‘대놓고’ 주장되었지만, 사실 보수언론의 모든 해석 뒤에 숨겨져 있는 진영론이다. 이런 얘기를 몇 십 년 동안 듣고 살았으니, 보수세력에 반대한다는 이들도 내부에 이견이 생길 경우 상대방을 “수구세력의 알바”로 취급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조중동의 해석은 우리가 그들을 극복하기 위해 벗어던져야 하는 충동과 논리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보여준다.

구체성이 없는 비판

▲ 8일자 조선일보 3면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들을 비판하려면 어떤 구체성이 필요하다. 일단 논점을 나누고, 그 논점에 해당하는 사안의 맥락을 정리하고 찬반양론을 비교한 후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 사안에 대해선 몇 개의 논점이 나뉠 수 있다. 첫째로 지역주민들에게 충분한 동의를 받고 합의를 이끌어냈느냐의 문제가 있을 것이고 둘째로 그 지역에 그런 형태의 해군기지를 짓는 것이 군사전략적 목표설정에 부합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조중동은 이런 차원에 대해선 논쟁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구체적인(!) 논박은 구럼비 바위가 제주도에서 그렇게 성스러운 장소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기지 반대 세력은 ”지질학적 가치가 큰 자연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문화재청 관계자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어 보존 가치가 높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조선일보 3면)

따라서 ‘구럼비 바위’는 특정지역의 희귀한 바위가 아니라 제주 전역의 까마귀쪽나무가 자생하는 일반 해안 노출암을 뜻한다. 윤태정(57) 전 강정마을 회장은 “애당초 ‘구럼비 바위’라는 명칭은 없었다”며 “기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신성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8면)

이에 대해서도 반박은 있지만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가자. 문제는 다른 부분에선 그들이 전혀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가령 주민합의가 있었냐는 문제에 대해서 반대자들은 이 사업이 마을이장과 소수 마을 사람들의 지지만으로 시작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인만 1천명이 넘는 마을에서 100명도 안 되는 찬성파를 데려다놓고 시작된 일이며 마을주민 700여명이 모인 제대로 된 총회에선 대다수가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조중동은 뭐라고 설명할까.

당시 해군기지 유치를 희망하는 마을은 강정마을을 포함해 위미와 화순 등 3곳이었다. 그러나 주민들 가운데 해군기지 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찬성의사를 보인 곳이 강정마을이었고, 이 점이 받아들여져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물론 주민 모두가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고향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부터 어업권 보상이나 토지매입 과정에서 소외된 점 등 반대한 주민들의 이유는 다양했다. 다만 이념적 성향의 반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재야 시민단체들이 가담하면서 반대운동은 지극히 정치적으로 변질됐다. ‘평화의 섬 제주에 군사기지가 웬 말이냐’ ‘중국을 견제하는 미군기지가 될 것’이라는 등 편향된 이념으로 채색된 반대 구호가 강정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그럼에도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마을주민 다수의 뜻은 여전히 굳건하다고 한다.(중앙일보 사설)

몇 명이 모여서 몇 명이 찬성했다는 종류의 구체성은 없고, 2007년 이후 꾸준히 투쟁한 현장에 대해 작년부터 달라졌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여전히 굳건하다고 한다."에선 안쓰러움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제주지사와 그 지역 새누리당 간부까지 나섰다면 주민여론을 짐작할만도 하건만 그 문제에 대해선 "표 때문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포퓰리즘"이라 한다.(조선일보 3면)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추상적인 얘기가 나온다.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필요한 이유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8%가 바다로 운송되고 있고, 그 대부분이 제주 남방 해역을 거치고 있다. 그러나 제주 남방 해역은 중국과 일본 등의 패권 다툼 등으로 갈수록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전설의 섬 이어도 해역도 넘보고 있어 한·중 간에도 분쟁 가능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우리가 유사시 신속하게 분쟁에 대처할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제주도야말로 그런 필요성에 가장 부합하는 전략적 우위를 가진 우리 영토다.(중앙일보 사설)

애초에 해군기지를 만들려고 했던 군사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 그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어느 곳에 어느 정도 규모의 기지가 필요한 것인지, 그런 기지를 굳이 반대가 심한 강정마을 쪽에 지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뭔지, 등등 떠오르는 질문들이 많은데도 뭉뚱그리고 지나간다.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수많은 시민들 중에선 군사전략의 관점에서 기지의 효용성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보수언론에 대해 그 정도 수준의 구체적 반론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해달라 요구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문제는, 어떻게 진보세력과 언론이 그런 수준의 구체성을 담보하여 사회적 논의의 수준을 올릴 수 있을 수 있을지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친노 비판 뿐

그래서 보수언론에게 남는 것은 결국 ‘음모론’을 제외하면 친노세력의 말바꾸기에 대한 비난 뿐이다.

이날 발파 작업은 해군의 기동전단 전초기지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방개혁 2020’과 함께 추진한 핵심 외교안보 프로젝트였다.(중앙일보 1면)

이날 현장에서 일부 주민이 한 대표에게 “총리 시절 해군기지를 확정하지 않았느냐.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고 비난하면서 한 대표의 차량 밑에 눕기도 하고 당직자들과 몸싸움까지 벌인 것은 이 때문이다.(동아일보 1면)

친노세력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고, 그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이지만, 여론형성 과정에도 무지하고 사안에 대한 구체적 접근도 하지 않는 조중동은 대체 누가 구원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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