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양대 공영방송 KBSㆍMBC, 공기업 지분의 YTN,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가 동시에 '총파업'을 진행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미칠 수밖에 없는 소유구조를 가진 이들 언론사 기자들은 공통적으로 MB정부 이후 자사 보도의 급격한 퇴행을 지적하며,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펜, 마이크, 카메라를 놓고 거리로 뛰쳐나온 이들은 가슴 속에 어떤 고민과 울분을 품고 있을까? <미디어스>는 KBS, MBC, YTN, 연합뉴스 기자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 고은상 MBC 기자ⓒ이승욱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인 2007년 12월 MBC 보도국에 입사한 고은상 기자는 벌써 파업만 5번째다.

사회부 초년 기자 시절이었던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가는 곳 마다 '승리의 마봉춘'이라 불렸고, 다른 매체들이 쫓겨날 때 MBC가 가면 (군중들이) 홍해처럼 갈라져서 응원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4년여 만에 MBC를 둘러싼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 경제부 소속인 고은상 기자는 7일 오후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사회부, 정치부가 보도해야 할 '핫' 한 이슈들이 '킬' 되면서, 전체적인 아이템 숫자를 맞추느라 경제부 기자들이 '소비자 밀착형 아이템'이라는 미명 하에서 대형마트 중심의 아이템 등 맥락없는 기사들을 써왔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10. 26 보궐선거 당시)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사건이 터지면, 정치부ㆍ사회부 기자들이 총동원돼야 하는데 이런 기사는 최소화되고, (보도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경제부 기자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취재해서 보도했다"며 "현장에서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는 것이다. 정권홍보성 아이템 지시 등 노골적 강압이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교묘하게 방송장악이 이뤄져 왔다는 지적이다.

고은상 기자가 펜, 기자수첩, 마이크를 놓은 지 8일이면 벌써 44일째.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파업에 힘들 법도 하지만 현재 파업 참여자들의 분위기는 "매우 고양돼 있다"고 한다.

현 정부 4년간 벌어진 무려 5번의 총파업, 그리고 2010년 39일 진행한 총파업이 별다른 성과없이 마무리됐던 '아픈 기억'으로 인해 피로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총파업에 돌입하게 됐지만 한달 가까이 출근도 안하던 김재철 사장이 갑자기 나타나 해고, 손배소 등 강경책을 남발하는 것을 보면서 MBC 구성원들의 '투쟁동력'이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은상 기자는 "현재 MBC는 김재철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이에 대항해 좋은 방송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진 세력 둘로 확실히 나뉘었다"며 "회사의 막무가내식 대응들이 오히려 우리가 가야할 길을 더욱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은상 기자는 사상 초유의 동시파업에 나서게 된 KBS, YTN 구성원들을 향해서도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으니까, 이제 말로만 이기는 것 말고 진짜 이길 때까지 함께 갔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다음은 고은상 MBC 기자와의 일문일답.

- 최근 몇 년 사이에 MBC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쫓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본인도 그런 경험이 있는가?

"2008년에는 사회부 기자였다. 그때는 가는 곳마다 승리의 마봉춘이라고 불렸고, 다른 매체들은 쫒겨나는데 우리가 가면 홍해처럼 갈라져서 응원하며 들어와서 촬영하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사회부 현장 기자들 말로는 '조롱' 당하고 있다고 한다. 어차피 보도도 안할거면서 촬영해서 뭐 하냐는 비판이다. 실제로 KBS, SBS는 한미FTA 반대집회를 보도했으나 MBC는 단신 한 줄 나가지 않았던 적도 있다.

2008년 촛불 정국에서는 현장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전달할려고 했었고 정부의 과오는 없는지 최대한 찾아보려 했지만, 최근 3년 간은 정부의 치적 중심으로 보도하게 되었다."

- 정권홍보성 아이템을 발주받아 어쩔 수 없이 제작했던 경우도 있었나?

"경제부에서는 그런 식의 발주 보다는 기업 최고급 간부와 식사를 한 뒤 기업을 홍보해주는 기사를 쓴다든지 하는 오더가 내려오거나 보도국 최고 임원들이 공식적 루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자들에게 뒤로) 부탁하는 방식으로 해서 기사를 쓰게 되었다.

사회부나 정치부에서 해야 할 ‘핫’한 아이템들이 ‘킬’이 되면서, 경제부가 ‘소비자 밀착형 아이템’이라는 미명하에 정말 말 안되는 마트 중심의 아이템 보도, 연합뉴스 기사 단순 각색 등 맥락없는 기사를 쓰는 일이 빈번했다. 전체적 아이템 수는 맞춰야 하기 때문인데, 악순환이다.

예를 들어 (10. 26 보궐선거에서) 디도스 공격 사건이 터졌을 경우 사회부, 정치부가 총동원돼야 하는데 이런 기사는 최소화되고, 경제부가 전혀 말도 안되는 기사들을 보도해야 했다. 현장에서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이템 지시 등 노골적 강압이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교묘하게 방송장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 권재홍 신임 보도본부장에 대해 평가하자면?

"권재홍 보도 본부장은 2010년 39일 파업 당시 뉴스데스크 앵커가 ‘동료들이 피흘리고 있는 상태에서 더 이상 앵커직을 수행하기 어려워 파업에 동참한다’고 글을 남기고 파업에 동참한 탓에 대신 앵커직을 맡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 앵커를 보고 있다. 개인의 인격을 떠나서 비상 상황에서 회사의 중용을 받아 들어갔기 때문에 정상적인 인사라고 볼 수 없다. 현 사장 체제에서 단행한 보도본부장, 보도 국장 인사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

- 나꼼수,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매체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현직 기자로서 복잡한 심경일 것 같다

"기존의 지상파 방송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대안 매체들이 호응을 받고 있다. <PD수첩>, <뉴스데스크>가 정부에 비판적인 의혹이 제기되면 가감없이 보도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다양한 미디어의 등장은 미디어의 역사적 맥락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겠지만 그 매체들이 힘을 얻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반성해야할 부분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다해내지 못했고 우리의 방송이 (시민들과) 괴리돼 있기 때문에 국민적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무한도전, 해품달 결방에는 시청자들이 아우성이지만 뉴스데스크 파행방송에 대한 항의는 상대적으로 약한 것 같다

"2008년 사회부에 있었을 당시 현장 리포트가 보도되면 즉각적인 반응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반응이 없다.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MBC뉴스가 이슈 메이킹이나 아젠다 세팅을 못한다는 것인데, 슬픈 일이다. 고정 시청층이 있더라도, 적극적인 시청자층은 떠나가고 있는 것 같다."

- 38일째 방송 파행이 이어지고 있으나, 사측은 꿈쩍도 하지 않고 조합원들을 상대로 징계와 고발 등으로 강경 대응하고 있다.

"이제 쓸 수 있는 카드가 '징계' '고발'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노동 조합을 파괴하는 기본적인 수순인데, 회사도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파업에 돌입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2010년 당시 39일간의 파업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채 끝나지 않았느냐. 그래서 다시 파업 시작한다고 했을때 '저번에도 졌는데 이번에는 과연 이길수 있을까', '총선 다가오면 총선 보도해야 한다고 올라갈 이탈자가 생기지 않을까', '파업이 길어지면 알아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많이 있었다. 좀 지쳐있는 상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피로감, 불안감 등이 있어 초반에는 마음이 잘 안잡히더라.

▲ 김재철 MBC 사장은 MBC노동조합의 총파업 돌입 26일만인 2월 24일 출근해 확대간부회의를 개최했다. ⓒMBC노조

그런데, 김재철 사장은 집회에 나오는 조합원들의 숫자가 줄어들때 즈음 회사 출근을 하기 시작했고, 오자마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해고, 손배소, 고소 등 강경책을 남발하면서 오히려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불러일으켜 주었다. 20년차 이상 선배들이 기명 성명을 발표하는 등 엄청 분위기가 고양됐다.

회사는 확실히 갈라섰다. 현재 MBC는 김재철 사장을 중심으로 한 남아 있는 세력과 그것에 반대하고 좋은 방송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로 구분된다. 회사의 막무가내식 대응들이 오히려 우리가 가야할 길을 더욱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 비정규직 앵커, 기자 모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기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애초에 계약직을 걸고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기사를 쓰게 만든다는 것은 불안한 지위를 이용해서 회사가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파업이 끝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 회사측에는 정확한 복안도 없다. 총파업 중인 우리들을 향해 '더 이상 너희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그런식으로 불안한 사람들을 뽑아서 15분 짜리 말도 안되는 뉴스를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빨리 이 사태를 정상화하려는 게 아니라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함께 할 수 없다."

- 사장 법인카드 남용 의혹 지적에 회사 측은 직원 법인카드 사용내역 감사로 맞서고 있는 상황인데.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말씀드린다. 우리를 감사할 게 있다면 자기 것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회사가 제대로 해명한다면, 우리도 잘못 보도했다고 사과할 것이다.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할 테니까 해명하라."

- 총선이라는 대형 이슈를 앞두고 공영 언론사들이 일대 봉기에 나선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이 정권이 지난 4년간 얼마나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임단협 파기로 인한 게 아니면 '법적으로' 모두 불법파업임을 다 알고 있지만, 방송 3사가 동시에 파업을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상황이 열악하다. 방송의 책무를 다해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죄송할 뿐이다. '이대로는 총선·대선 보도 못한다'는 언론인들의 절박함은 곧 국민의 절박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 연대파업에 나선 동료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파업은 힘든 일이다. 하루하루 옆에 있는 동료들이 해고 당하는 것을 봐야하고 방송이 더 망가지는 것을 봐야한다. 더 큰 도약을 위한 것이겠지만 어제 있던 자리에서 일을 못하고 남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만든 방송이 나가는 것을 보면 뼈아프고 피눈물 난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수 없으니까, 말로만 이기는 것 말고 진짜 이길 때까지 같이 갔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MBC 최종 임원 면접때 한 말이 ‘돈으로 살수 없는 것 하나쯤은 있어야 사람사는 세상이라 할 만하다. 그중에 한 가지는 언론이라 생각한다. 권력과 자본에 굴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입장 , 약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공정방송을 지키는 길에 MBC가 있었고 내 삶도 그와 맞닿아 있었다. MBC를 지키는 등대가 되겠다’였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그 다짐을 지키지 못했던 것 같다. 자기검열에 빠져서, 더욱더 전달해야 될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해 죄송했다. 지금은 파업이 끝나고 돌아가서 어떤 기자가 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되는지가 더 고민된다.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약한 이들을 위한 방송’이라고 써놨다. 그동안 ‘악한 이들’을 위한 방송을 해왔는데, 약한 이들을 위한 방송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파업기간을) 고민하는 단련기간으로 삼아서 ‘빨리’ 돌아가서 열심히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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