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상파를 회원사로 둔 한국방송협회(회장 박성제 MBC 사장)가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방송혁신기구 설립과 미디어 규제 혁신 등을 골자로 한 '10대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공가치뿐만 아니라 과소평가되고 있는 산업적 가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지상파를 둘러싼 불합리한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방송협회는 20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송정책 제안서 발표 및 연구보고서 설명회'를 개최하고 차기 정부 미디어 산업 혁신을 위한 10대 긴급 정책개선 과제를 발표했다. 방송협회가 선정한 10대 정책과제는 ▲방송혁신기구 설립·운용 ▲기금제도 합리적 정비 ▲방송광고 제도 개선 ▲협찬고지 규제 완화 ▲정부광고 합리적 개선 ▲지상파 다채널 활성화 ▲소유겸영 제도 개선 ▲KBS 자산활용 방안 개선 ▲지역방송 정책 합리화 ▲라디오 정책 합리화 등이다.

한국방송협회는 20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송정책 제안서 발표 및 연구보고서 설명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 이만재 원광대 교수 (사진=한국방송협회)

조성동 방송협회 정책기획부장은 우선 방송혁신기구 설립·운용 필요성에 대해 "과거 방송부문 기구 통폐합 과정에서 연구·진흥·정책개선 등이 진지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며 "미디어혁신 기구가 지금 논의되는 거시적 그림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방송 등 각 부문의 구체적 방향이 필요하다. 산하에 전문적인 연구 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분산된 미디어 부문 정부부처 통합논의뿐만 아니라 방송·미디어 산업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산하기구 운영 로드맵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협회는 ▲방송 콘텐츠·플랫폼 연구개발 및 진흥·지원 활성화를 위한 혁신기구(KCPI) 설립 ▲방송영상 부문 전문연구·교육 등을 총망라하는 혁신 지원 추진 ▲한류콘텐츠 전세계 이용자 조사 패널 구축 ▲ICT플랫폼을 통한 쇼케이스 창구 마련 ▲차세대 지상파 방송 발전방안 수립 및 정부지원 체계 수립 등을 제안했다.

"콘텐츠, 방송 등 각 부문의 구체적 방향성 필요"

방송협회는 기금 문제의 경우 징수 대상 범위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라 다매체 경쟁이 활성화되고 보편적서비스 영역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의 징수 대상을 CJ ENM 등 대기업 MPP, 포털, 글로벌 OTT 등으로 확대하고 거둬들인 기금을 공적영역에 제대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방발기금의 부적절한 용처 개선도 과제로 꼽았다. 법적 근거 없이 문체부 산하 아리랑TV·국악방송·언론중재위원회에 지원되는 방발기금을 지역·중소방송사에 지원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방송협회는 방발기금이 주무부처 결정을 반영해 쓰일 수 있도록 독립적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방송협회는 정부 예산 확정 과정에서 방발기금이 주무부처에 의해 제대로 편성되더라도 기획재정부가 거절하는 체계를 기금운용위원회 설립 이유로 들었다.

조성동 한국방송협회 정책기획부장이 차기 정부 미디어 산업 혁신을 위한 10대 정책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방송협회는 정부광고 제도와 관련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독점 대행' 문제를 거론했다. 방송협회는 언론재단이 '독점 해소'라는 정부광고법 제정 취지에 맞지 않게 대행업무를 독점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업무 역할이 없음에도 수수료 10%를 일괄 징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방송협회는 방송법상 개념이 구분되는 정부광고와 정부협찬을 모두 정부광고로 규정하고 언론재단이 대행 업무를 하는 것은 '독단적 강제 적용'이라고 비판했다.

SBS 등 지상파 민영방송이 안고 있는 대기업(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소유제한 문제와 관련해 방송협회는 대기업 지정 기준을 20조원으로 개정하거나 GDP와 연동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방송협회는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대기업이 30%까지 소유할 수 있는 데 반해 지상파는 10%로 제한돼 있어 '비대칭 규제'이며 한국의 경제규모를 고려했을 때 기존 지상파 방송사 소유 기업의 안정적인 방송사 운영을 위해서라도 대기업 지정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10조원' 규제를 풀자는 주요 논리 중 하나로 글로벌 OTT 기업의 국내 시장 진입이 설명됐다. 미디어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소유‧겸영규제로 인해 자본력 있는 기업들의 방송사 소유가 가로막혀 콘텐츠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언론시민사회 등에서는 대기업의 방송사 지분과 콘텐츠 투자가 과연 비례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SBS 모기업인 태영건설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재산총계 10조원에 이르는 동안 SBS 콘텐츠 투자는 약 15% 증가했다. 9개 지역민방의 경우에는 프로그램 제작비 변화가 거의 없다.

청와대 미디어 수석실·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신설

이어진 연구보고 발표에서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지상파로 대표되는 공공미디어 영역의 복원을 위해 불필요한 낡은 규제를 개선하고, 정부조직을 개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크게 수직적 규제체계를 수평적 규제체계로 전환하고, 방송의 공적-사적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현재 방송법 체계에서 공영방송 개념이 없는 만큼 제도적으로 공영방송 개념을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지상파 규제개편안으로 ▲편성규제 완화(보도·교양·오락 등 프로그램 분류체계 개선 등) ▲광고·협찬제도 개선(네거티브 광고규제 전환, 광고판매제도 개선 등) ▲정부광고 개선(언론재단 독점대행 구조 개선 등) ▲지상파 재허가 제도 개선(추상적 심사항목 및 비계량 평가 개선, 과도한 부관사항 완화 등)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 ▲지역방송·라디오 방송 지원(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 일반법 전환, 오디오 진흥기구 및 기금 설치) 등을 제시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이 '지상파방송의 공적기능 확립'을 주제로 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김 소장은 미디어 정부조직 개편안으로 청와대 미디어 수석실 신설, 정부부처·국회 상임위원회 통합 개편을 제안했다. 김 소장은 "청와대에는 현재 미디어 부분을 홍보수석이 담당하고 있는데 미디어 수석 등을 설치해 유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미디어·방송 부처는 산업발전에 포커스를 두고 방송·ICT 접목, 지상파 활성화 등 진흥·지원에 집중하는 가칭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김 소장은 지상파 인·허가 등 미디어 공적기능을 평가하는 기구는 '합의'가 필요하다며 가칭 '공영미디어위원회'의 출범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 상임위의 경우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합해 미디어 법·제도를 마련하는 데 효율을 높이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차기정부, 지상파 공공·산업 가치 복원해야"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지상파의 '산업적 가치'에 주목한 정책 개선을 제안했다. 이 전문위원은 지상파의 산업적 위상이 과소평가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상파는 자체 산업규모보다 타 산업 기여 파급효과가 훨씬 큰 특성을 가진다"며 "지상파 광고가 사라지면 일반광고주와 서비스업계 마케팅·판촉비용은 크게 늘어난다. 외주제작 시장, PP·VOD 시장, 문화산업 수출 등에서 지상파가 차지하는 비율은 50~60%"라고 설명했다. 이 전문위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지상파 투자에 따른 추가적인 생산유발액은 1조 460억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8267억원, 취업자는 3011명 수준이다.

이에 이 전문위원은 향후 지상파에 대한 정책적 지원 방안으로 ▲재정적 지원확대 ▲제작·투자 리스크 완화와 금융지원 ▲대규모 투자재원 펀드조성 ▲제작·유통확대를 위한 지원 ▲지적재산권 활용·보호 ▲방송제작 인력 양성사업 등을 제시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이 '산업으로서 지상파방송의 성장을 위한 방안 모색'을 주제로 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지역방송 활성화 과제'를 주제로 연구 발표를 진행한 이만재 원광대 교수는 지역방송 문제를 지역방송의 혁신에만 국한에 논의해서는 답이 없다며 전체 지상파 틀에서 지역방송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지역방송 활성화를 포함하는 방송의 공적 책무를 전체 지상파에 차등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KBS 50%, MBC 30%, SBS 20%, 지역민방 20% 등으로 공적책무를 부여하고 이에 대한 공적재원을 지원하자는 제안이다. 또 이 교수는 OTT 등을 포함하는 가칭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체계를 마련하더라도 지역방송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상파 사업자를 모두 '공공방송'으로 규정하는 '공공방송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성제 한국방송협회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OTT의 파상적인 공세 속에서도 예능, 드라마, 다큐, 뉴스, 스포츠 등 고품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공급하는 것은 지상파가 유일하다"면서 "대한민국의 문화주권을 지켜내온 지상파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의 깃발을 올리기 위해서는 구시대적 규제들이 혁파돼야 한다. 그래서 이로 인한 모든 혜택을 국민들이 고루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방송협회는 향후 정책수립 제안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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