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심석태 교수 칼럼] 곧 대선이다. 정치의 자장이 여지없이 언론을 뒤흔들고 있다. 언론이 대선을 보도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느낌이다. 부산대 조항제 교수는 지난 2020년에 출간한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에서 “한국 정치는 그 자체로 ‘정치 언론’이거나 ‘언론 정치’”라고 지적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언론 제도에 관한 체계적인 공약은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집권하면 ‘문제 언론’을 향해 강력한 징벌을 제도화하겠다거나, 공영방송은 뉴스의 30% 이상을 국제뉴스로 채우고 무조건 사극을 만들게 하겠다는 식의 주장이 튀어나온다. 모두 권력을 가지면 언론에 대해 뭐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비슷한 사고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누가 집권하든 언론에 대해 뭔가를 하려 들 것 같다. ‘언론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한국에서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권력을 잡으면 항상 언론 개혁을 부르짖는다. 물론 내용은 많이 다르다. 해법도, 방향성도 많이 다르지만 한 가지는 대체로 일치한다.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든, 아예 시장 구조를 바꾸려고 하든, 어떻든 자신에게 우호적인 언론 환경 조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1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KBS, 수신료의 가치를 국민께 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59초 쇼츠' 공약을 공개했다.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영상 갈무리)

기본적으로 언론은 한 사회에서 정보와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누군가 사회적인 정보가 소통되는 창구를 장악한다면 권력을 쉽게 장악할 수 있고, 국가 운영도 입맛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권력이든 언론이 우호적이길 바라고, 그렇지 않은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영향력 행사가 쉽지 않은 언론은 무슨 명분을 내세워서라도 무력화하려고 한다.

정치 권력은 물론 정치적으로 동기부여가 된 시민도 언론을 권력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언론은 정보 소통을 담당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일정한 영향력 행사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권력이나 지지자로서는 언론이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나 의견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정치적 공격을 가하는 것이 된다. 이런 언론은 비록 본래의 기능을 수행했을 뿐이라도 ‘옳지 않은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우리 언론 보도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언론에 불만을 가진 일반 시민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 언론에 대한 논의 전체가 정치적 쟁점이 되면서 무엇이 진짜 문제이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차분한 논의 자체가 어렵게 됐다.

언론은 본질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각종 비리나 부정은 대부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언론은 어떤 권력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을 기본적인 사명으로 삼는다. 문제는 그런 본래의 기능을 잘 수행할수록 권력과는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권력 감시를 잘 한다고 해서 일반 시민들로부터 항상 박수를 받을 수도 없다. 항상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을 비판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언론과 기본 사명을 저버린 잘못된 언론을 구분하지 않은 채 싸잡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촛불 정국에서 가는 곳마다 박수를 받았던 JTBC 취재진이 2019년 서초동에서 벌어진 집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생각해보라. 불과 3년 만에 바뀐 것이 JTBC일까?

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상태다. 정치인들에 대한 팬덤 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조직화된 팬덤이 얼마나 큰 현실적인 힘을 갖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회다. 모든 쟁점들이 정치적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하려 한다.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로 정치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 옳고 그름을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언론인도 적지 않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라고 해서 언론에 대해 본질적인 이해를 제대로 보여주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 사례를 우리는 이미 적지 않게 목격했다.

언론 문제 전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접근 고민해야

그렇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 개혁이 그렇게 강하게 추진됐고, 또 언론 관련 제도가 계속 바뀌어 왔는데도 언론 전반의 상황은 왜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방송심의규정은 계속 늘어나고, 인격권에 기초한 언론에 대한 제재도 계속 강화되는데, 왜 언론은 점점 더 나빠지고, 피해 구제는 여전히 부족하고, 언론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질까? 이 정도 되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은 도대체 어떠해야 하는지, 규제 문제까지 포함해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다.

언론중재법 (PG) [연합뉴스]

우리 사회에서 언론 개혁 논의는 그 자체로 가장 치열한 정쟁이 벌어지는 영역 중의 하나다. 언론 문제를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의 책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모두 정보 유통 문제를 정치적 영향력 확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유튜브 등 개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제는 ‘언론 개혁’이라는 구호가 겨냥한 대상이 어디까지인지도 불분명하다. 유튜브를 통한 개인들의 유사 언론 행위도 ‘언론’으로 보고 언론중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영역을 ‘언론’으로 규정하자는 말은 곧 ‘규제’를 강화하자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언론중재위의 권한을 강화하고 위원도 대폭 늘리자고 한다. 규제 대상을 늘리려면 당연한 결론이다. 모든 것을 규제로 풀 수 있다는 사람들에게 언론은 애초에 권력이고 공적 규제의 대상이지, 자유와 자율의 영역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일부 언론인과 언론학자들까지 포함한 언론개혁론자들이 언론 단체들의 언론 자율규제 강화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이런 맥락을 벗어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언론에 대한 규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 헌법 제21조의 언론자유 조항부터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만들어놓은 그대로다. 전두환 신군부가 도입해 언론 악법으로 규정됐던 것들도 상당수가 이런저런 형태로 살아남았다. 한때는 언론 악법이라던 것들이 지금은 인권 보호의 보루로 받들어진다. 분명히 순기능을 하는 부분도 있지만 거칠게 말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언론을 규제하는 장치들은 모두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고 또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성찰에서부터 시작해 우리 사회가 법으로 금지해야 할 수준을 정하고, 언론이 자율적으로 규제할 영역, 마지막으로 사회적으로 용인해야 할 영역으로 단계를 나누어 규제 체제를 정비하면 안 될까? 한쪽에서는 실명 보도를 한다고 비판하고 한쪽에서는 익명 보도를 한다고 비판하는 모순은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경찰관이 직무를 수행하는 장면도 사생활과 초상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로 가려야 하고, 고위 공직자들조차 직무와 관련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익명에 숨는 사회가 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법적 제재, 더 품질 좋은 언론을 격려하고 질 나쁜 언론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자율적 규제로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공적 정보가 제대로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도대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 것인지 등의 기준 설정 문제도 좀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언제까지나 언론을 둘러싼 복잡하기 그지없는 문제들을 ‘언론 개혁’이라는 구호 하나로 단순화하고, 새롭고 촘촘한 규제의 도입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언론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헝클어진 논의 구조를 바로잡기 어렵다. 언론이 권력 감시라는 역할을 상대 진영을 향해서만 열심히 수행하도록 만들거나, 혹은 아예 그런 기능 자체를 상실하고 스피커 역할만 하도록 만드는 것이 ‘개혁된 언론’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 꼭 필요한 정상적인 언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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