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MBC의 김건희 씨 관련 방송이 상당한 관심을 끌었으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하는 평가가 대부분인 것 같다. MBC의 방송 여부를 두고 정치권이 벌인 소동은 우스운 일이 됐다.

물론 김건희 씨가 했다는 발언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김건희 씨는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청문회를 치르던 시기 윤우진 전 세무서장 관련 의혹을 제기했던 뉴스타파를 서울의 소리가 ‘응징취재’한 것에 감사해 차명으로 후원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또 이러한 사실을 거론하며 서울의 소리 기자를 캠프로 영입하려고 했다. 실제 서울의 소리 기자는 코바나컨텐츠를 방문해 강의를 하기도 했다.

후보 배우자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기자의 캠프행을 제안하고 이게 실제로 강의를 하는 데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윤석열 후보 캠프에는 초기부터 언론인 출신들이 다수 결합했는데, 후보와 그 배우자가 어떤 인식을 갖고 언론인들을 접촉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건희 씨 측은 캠프 운영에 관여한 바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후보 차원의 해명이 필요하다. 김건희 씨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코바나컨텐츠에서 경선캠프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이뤄진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설명해야 한다.

MBC 방송의 나머지 대목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MBC가 공개한 김건희 씨의 나머지 발언은 그의 정치관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긴 한데, 국민들이 이런 얘기를 굳이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게 아니라 이게 어떤 문제를 가리키는 것인지, 어째서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MBC가 충분한 설명을 했어야 한다는 거다.

애초에 전체 방송의 내용이 취재 중심이라기보다는 발언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게 문제다. 가령 앞서 캠프 인사 영입 등의 문제라고 하면, 김건희 씨가 이런 방식으로 영입하려 한 인물이 서울의 소리 기자뿐인지, 다른 인사 개입 정황은 없는지를 취재한 후에 그 내용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김건희 씨의 음성이 활용됐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 게 아니라 ‘김건희 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정도의 내용으로는 본인이 직접 출마한 것도 아닌, 후보 배우자와 관련된 논란을 다루는 방식으로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어렵다. 추가 방송 예정이 있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황당한 것은 방송 전까지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법적 대응에 더해 MBC로 몰려가 편파방송이라며 항의를 한 국민의힘은 정작 방송이 나가고 나자 당 대표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등 시치미를 떼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과잉대응이 MBC 방송의 시청률만 올려준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특히 최근 들어 KBS나 YTN의 방송 내용 등을 문제로 삼으며 언론을 향한 직접적 문제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불공정 보도나 편파방송은 당연히 여러 수단을 통해 바로잡아야겠지만 원내대표가 자기가 출연한 라디오 방송의 패널을 바꿔달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에까지 이르면 과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사극을 만들라던가 국제뉴스를 더 다루라던가 하는 메시지도 편성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반적으로 과거 정권의 ‘방송장악’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득될 것이 없는 전략이다.

MBC 방송을 ‘본방사수’하자며 열을 올리던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소속 의원들의 태도도 황당하긴 매한가지다. 무엇을 기대한 것인가? 얼마나 득이 되리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방송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조건 시청을 독려했다는 점에서 ‘편파방송’이라는 공격의 빌미를 주진 않은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또 김건희 씨 관련 논란을 ‘즐기는’ 태도 만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 역시 깨달아야 한다. 그간 더불어민주당에 소속돼 있거나 가까운 인사들이 김건희 씨를 지나치게 악마화 해온 탓에 MBC 방송 정도로 국민이 받을 충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역풍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가장 난감한 대목은 김건희 씨 관련 논란이 이재명 후보 관련 보도를 언론에서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후보는 최근 산업구조 전환 등의 대형 공약이나 부동산 규제 완화 등 논란이 될 만한 공약을 연이어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의 2030을 겨냥한 행보나 김건희 씨 관련 논란 등 덕분에 화제성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명 후보가 최근 윤석열 후보를 직접 겨냥한 메시지를 내놓는 것은 이런 현실을 뒤집기 위한 전략으로 보이는데, 그런 방향이라면 상대의 이런 저런 발언이나 자질구레한 실수를 물고 늘어지며 후보 자질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철학과 가치의 대결구도라는 점에서 정면승부를 기획해야 한다.

윤석열 후보는 이준석 대표와의 정치적 봉합과 이후 청년보좌역들 중심의 메시지를 통해 그간 빠져나간 지지율을 다시 주워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로부터 실망했던 지지층은 ‘정권교체’ 울타리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안철수 후보라는 ‘방파제’에 부딪혔다가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호시절은 이제 지나갔다는 거다.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연장을 할 의지가 있다면 다시 자세를 낮추고 정공법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상대의 흠에 기대는 꼼수로는 더 이상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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