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자 한겨레2면 한겨레그림판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란 2008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인 신분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58)를 불법사찰한 사건이다. 김종익 씨가 영화 <식코>를 패러디한 일명 ‘쥐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이후, 공직윤리지원관실은 KB한마음이 민간회사인 걸 알면서도 김종익 씨를 영장없이 사찰했다. 결국 그는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회사지분도 처분했으나 지원관실은 그를 횡령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그의 법인카드 사용내역까지 뒤지면서 ‘촛불집회 자금을 댔는지’ ‘이광재 전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주었는지’를 캐물었으나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중에 명예훼손 혐의만 검찰에 송치되었고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그야말로 일개인이 정권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졌음을 사이버공간에 표시했단 이유로 국가권력이 개인을 상대로 ‘조직의 쓴맛’을 보여준 사건이다. 김종익 씨가 노사모 출신이고 이광재 전 의원과 동향이란 이유만으로 법인카드의 내역을 탈탈 털리며 수사받아야 했다. 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때는 이명박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개인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탄압하던 시기와 포개진다.

이 시기 정권의 수단을 보자면, 한국 사회에서 야당을 지지한단 의사를 표명할 자유가 있는 이는 얼마 없었다. 사업가라면 남들이 안 당하는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었고, 회사원이라면 불시에 사찰을 받을 수 있었다. ‘철밥통’으로 소문난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더라도, 전교조나 전공노에 가입하여 민주노동당에 당비를 내는 순간 철밥통을 걷어차이고 법정투쟁을 벌여야 했다. 물론 그 시기에도 교장 교감이나 고위 공무원이 되어 한나라당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는 것은 뒤탈이 없는 일이었다. 이 시기 함부로 정치적 관심을 표명하면 안 되는 직종에 교수, 연구원, 방송인, 개그맨이 추가되었다. 바야흐로 야당 국회의원, 당료, 보좌관, 몇몇 진보언론 기자를 제외하면 정권을 비판할 자유를 차압당하는 ‘한국적 민주주의’가 추구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니가 아무리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할지라도 램프 안에 속박되어야 하듯, 이명박 정부는 구성원들의 착각과는 상관없이 헌법에 구속된 존재였다. 정권은 영원할 수 없었고 자신이 동원한 불법적 수단은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2010년이 되자 김종익씨가 불법사찰이 있었음을 폭로했고 검찰수사가 시작되었다. 수사과정에서 청와대와 관련이 있다는 진술이 있었고 사찰에 동원된 ‘대포폰’ 사용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총리실 소속의 몇몇 사찰 실무자만 기소하는데 그쳤다. 그후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져갔다.

▲ 3일자 한겨레1면
그러나 최근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 인멸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진보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한겨레 3월 3일 토요일자 1면은 한겨레21 특종으로 지원관실에서 증거가 인멸되었다는 검찰 수사발표와는 달리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증거 인멸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검찰과 수사 방향을 조율했다는 정부 관계자 주장을 보도했다. 한겨레는 3월 5일자 사설과 만평에서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경향신문 역시 3월 5일자 1면에서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된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내용을 뒷받침했다. 해당 특종을 터트린 한겨레21 조혜정 기자는 “2010년 당시부터 취재해 왔던 사건으로,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이며 ‘윗선’이 있는 것이 분명한 사건인데도 ‘꼬리 자르기’로 종결되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그래서 검찰 수사가 종결된 후에도 법정기록들을 꾸준히 추적하며 검찰 수사발표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취재하다 결국 정부 관계자의 증언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언론에서도 보도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일 것이다.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 및 ‘대포폰’ 논란 당시엔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조차 청와대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엄정한 검찰수사를 촉구했다. ‘공천 잡음’으로 뒤숭숭하고 새누리당에게 지지율마저 따라잡힌 민주통합당 등 야권입장에서도 이런 호재가 없다. 당장 민주통합당 박영선 최고위원이 장진수 전 지원실 주무관의 녹취록을 공개하는 상황도 이런 정국을 반영한다.

그러나 정국분석을 떠나 이 사안이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 사건은 시위하는 국민들에게 걸핏하면 ‘법치주의’를 요구하는 국가권력이 아직까지도 ‘법’으로 제약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원래 법치주의는 권력자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막는 이념인데, 한국 사회엔 아직도 그것이 상식으로 확립되지 못한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의 힘을 자의적으로 동원해 반대편을 징벌한다는 식의 ‘개념’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꽃필 수는 없다.

▲ 5일자 경향신문 1면

도덕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권력을 위법하게 남용한 이들의 ‘죄’는 독재정권 시절 국가폭력 부역자들에 비해 가벼울 수 있다. 그러나 법리적·정치적 차원에서 그들의 ‘죄’는 수십 년전의 ‘범죄자’들에 비해 훨씬 처벌받기 수월할 것이다. 청와대가 증거인멸에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를 떠나, 민간인 불법사찰 자체가 앞으로는 누가 정권을 잡든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임을 확실히 인지해야 하고 철저한 재수사 및 처벌이 필요하다. 만약 이번 정권에서 안 된다면 다음 정권에서라도 반드시 실행하자고 요구해야 한다. 2010년 처음 사건이 폭로되었을 당시 엄정수사를 촉구했던 보수언론들까지 이 요구에 동참시킬 때, 한국 사회 법치주의의 수준은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야 우리는 이명박 정부 내내 공영방송과 비판적 지식인,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까지 괴롭히던 ‘국가권력의 사유화’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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