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올해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미산분리’(미디어 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에 대한 안을 제시했다. 통신, 포털, 건설, 대기업 등 산업자본에서 미디어 부문을 따로 떼어내는 안이다.

13일 언론노조는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 진단 : 거대 자본의 성장과 노동의 파편화>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 대해 “위축되는 공공성의 영역에는 규제를, 성장하는 미디어 자본의 영역에는 지원과 방임을 처방했다”고 평가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13일 주최한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 진단 : 거대 자본의 성장과 노동의 파편화> 토론회 (사진제공=언론노조)

정부가 글로벌·통신 복합체와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에 힘을 썼다고 주장했다. 김동원 정책실장은 “미디어 시장은 대규모 기업집단 30개 중 5개만 진출했던 2000년과 달리 2020년에 이르러 자산 5조 원 이상 71개 기업집단 중 25개가 진출할 만큼 성장하는 시장이 되었다”며 “중요한 변화는 유무선 통신 재벌·대기업 자본과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자본의 팽창, 이를 뒷받침하는 글로벌 미디어 자본의 진출”이라고 말했다.

이동통신을 중심으로 한 유료방송시장 M&A를 넘어 KT, LG유플러스 등이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해외 OTT와 손을 잡으며 글로벌 미디어 자본과의 제휴는 가속화됐다. 글로벌·통신 복합체와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재벌·글로벌·통신 복합체의 미디어 독과점은 강화됐고, 기존 미디어 공공영역은 축소 또는 해체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건설자본의 미디어 시장 진출이 본격화됐다. 김 실장은 “자산총액 10조 원을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호반건설의 미디어 시장 진출은 지역 지상파 민영방송뿐 아니라 중앙일간·전문지, 인터넷 신문과 PP까지도 71개 기업집단 일부와 건설·제조·금융 기업들의 인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안은 독립된 미디어 자본 구성

언론노조는 문재인 정부 5년의 미디어 정책을 진단하고 2022년 최우선 과제로 미디어 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내세웠다. 신문,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에 대한 최대주주의 자산총액 제한 완화는 통신 대기업·재벌의 지배력만 유지하는 미봉책이라는 판단에서다.

대신 자본총액 중심의 규제 완화가 아닌, 자본 성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디어 자본이 지금처럼 기업집단에 종속된 사업 부문이 아니라, 계열 분리를 통해 독립된 자본으로 구성돼야 투자 집중과 장기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미디어 자본은 시청각 미디어 콘텐츠와 플랫폼 시장으로 한정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뉴스 콘텐츠로 한정지어 규제체제에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우선 유무선 통신자본과 플랫폼, 콘텐츠 부문의 미디어 자본을 분리하자고 했다. KT, SK, LG 등 기업집단 소속 회사 중 유무선 통신, 초고속 인터넷 등 네트워크 망사업과 미디어 자본을 분리해 구성하는 방안이다. 가령 SK에서 PP, SO, IPTV, TV·인터넷 쇼핑, 네이트 등을 독립시켜 자본을 구성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다음은 뉴스 콘텐츠 분리다.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통해 제휴 맺고 있는 뉴스 콘텐츠를 배열하거나 언론사 편집판을 제공하며 광고 수익을 나눠 갖는 사업을 분리하는 방안이다. 뉴스 콘텐츠를 통해 유입된 이용자를 오픈마켓이나 다른 데이터 자원으로 사용하는 문제를 방지할 수 있으며, 신문법에서 규정하는 인터넷뉴스 서비스사업자라는 모호한 지위에 언론사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제조, 금융, 건설 등을 핵심 사업으로 영위하는 기업집단의 신문·유료방송·OTT 사업 부문을 분리하는 안이다. 호반건설처럼 대주주가 미디어 사업을 영위할 경우 건설, 개발, 레저 등에 포위된 미디어 부문을 따로 분리하는 것이다.

김동원 실장은 “이런 개혁이 가능하냐고 물을 수 있고 대기업이 과연 미산분리를 허용할까 질문할 수 있다”며 “통신사업자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방송을 어떻게 할 것인지와 사주의 사회적 자본과 지위를 위해 사용되는 레거시 미디어 종속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주면서 미디어 자본의 독립된 구성을 얘기해보자”라고 말했다.

디지털 미디어 사업자에 대한 정의 (출처 : 심영섭, 통합적 미디어 정책체계 도입을 위한 제언, 한국언론학회 미디어공공성 포럼 발제문, 2021.12.23)

방법론 정교해질 필요 있어

토론자들은 미산분리 취지에 대해 상당 부분 동의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미디어가 통신사 결합상품의 미끼로 이용되고 사주에 종속된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미디어 고용 종사자들도 안정적 월급만 나오면 된다는 식으로 가고 있다”며 “독립적으로 계열을 분리해 미디어 자본을 따로 분류하고 사주 지위를 부각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우 우송대 글로벌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이 이명박·박근혜 체제 고착화에 기여했다. 포털은 메가플랫폼이 되고 미디어는 왜소해진 ‘해로운 진화의 결과’가 지금”이라며 “미산분리가 논의돼야 하는 적절한 시기”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디어 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핵심은 미디어의 다양성과 다원성으로, 미산분리를 통해 시민들의 미디어 관련 인식 제고, 오너 영향력에 대한 사전 제어, 정치경제적 아젠다 범위 독점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박 교수는 미산분리 방법론에 있어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독립된 미디어 자본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 미디어 산업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지 등은 제도화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대기업 및 거대 자본의 미산분리 참여 의지가 낮을 것이라며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찬행 청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교수는 “기업들이 계열을 분리하고 미디어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면 좋겠지만 자본 분리만으로 적극적인 투자로 돌아설 것 같지 않으니 인센티브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했다.

박재범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교육연대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5년 동안 미디어 자본을 방임해왔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미산분리는 이를 바로잡는 유의미한 출발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산업 자본과 미디어 자본을 강제적으로 분리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미산분리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디어 산업 내에서 공익적 성격과 가치를 정하는 정부의 인허가권을 더 강화하고 규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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