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멸공" 등을 내세워 '분열의 정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조선일보가 이를 조장하는 모양새다.

10일 조선일보는 사설 <정권 위해 여성 배신한 여성가족부가 자초한 폐지론>에서 "여가부 폐지론이 대선 쟁점으로 힘을 받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권 5년간 여성보다 정권 보호에 앞장섰던 여가부 행태에 대한 환멸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여성운동을 여당 국회의원이나 여가부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디딤돌로 이용해 온 일부 인사의 여성 배신 행위가 여가부 폐지 논란을 자초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윤 후보가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조선일보는 댓글 반응을 훑었다. 조선일보는 "7글자를 올리자 4시간 만에 찬성 댓글 5000여 개가 붙었다. 상당수가 2030세대 남성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성이지만 찬성한다'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글을 게재하고, 8일 이마트 이수점을 방문해 '멸치'와 '콩'을 사는 모습을 공지했다. (사진=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윤석열 후보 페이스북)

윤 후보는 '양성평등가족부'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공약 변경 이유와 성별 갈라치기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8일 윤 후보는 "현재 입장은 여가부 폐지 방침이다. 더는 좀 생각을 해보겠다"며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원일희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이 "현재 여가부 폐지까지만 정해졌다. 새로운 무언가를 신설하긴 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윤 후보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변인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여가부 폐지가 맞다"며 "그 어떤 발언일지라도 저 윤석열의 입에서 직접 나오지 않는 이상 공식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으로부터 촉발된 이른바 '멸공 챌린지'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 비판에 열을 올렸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은 '만물상' 코너를 통해 "윤 후보는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골라 장을 봤는데, 누가 봐도 '멸공'을 뜻했다. 여당 쪽에선 '중국을 자극 말라'며 발끈했지만, 정 부회장은 '오로지 위(북한)에 있는 애들을 향한 멸공'이라고 했다"며 "야권 관계자들이 릴레이하듯 멸치·콩 사진을 올리며 윤 후보와 정 부회장을 응원하고 있다. 정권이 5년 내내 북한 김정은에게 저자세로 끌려 다닌 데 대한 국민적 반감이 만만치 않다는 뜻일 것"이라고 썼다.

정 부회장은 지난 6일 인스타그램에 조선일보 기사 <"소국이 감히 대국에…" 안하무인 中에 항의 한번 못해>를 공유하며 '멸공' '반공방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해당 기사에 중국 시진핑 주석 사진이 사용됐다. 중국을 자극한다는 비판이 일고, 정 부회장의 동생 정유경 총괄사장이 이끄는 신세계인터내셔널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정 부회장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대신 정 부회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이 실린 기사를 올리며 "나의 멸공은 중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8일 이마트 이수점을 방문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재하며 해시태그로 '달걀' '파' '멸치' '콩'이라고 적었다. AI윤석열은 '이마트에서 장을 잘 봤느냐'는 질문에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다. 달파멸콩"이라고 답했다. 이후 나경원, 김진태, 최재형 등 국민의힘 인사들의 '멸공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다.

1월 10일 조선일보 지면 갈무리

반면 이날 주요 전국종합일간지에선 윤 후보의 '갈라치기' 정치를 비난하는 기사와 사설이 이어졌다. 2030세대 지지율 회복과 보수 지지층 재결집을 위해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한겨레는 사설 <‘여가부 폐지’에 ‘멸공 챌린지’, 윤석열 퇴행 어디까지인가>에서 "아무리 급락한 20~30대 지지율을 회복하는 게 시급한 처지라고 하나, 상황 타개를 위한 시도가 무책임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던 경선 후보 시절의 공약을 아무런 설명 없이 여가부 폐지로 바꾼 것이다. 설명할 논리도 근거도 빈약함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며 "대체 여가부 폐지로 청년층의 처지를 얼마나, 어떻게 개선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청년층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은 출발선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사회정책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의식과 혐오감정에 편승하는 방식이어선 곤란하다"며 "사태의 본질과 무관한 분풀이성 공약은 사회에 파괴적 분열과 갈등만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멸공'에 대해 한겨레는 "북한과 주변국에 대한 증오를 불어넣고 집권세력에 색깔론을 덧씌우는 시대착오적 캠페인으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 남녀 갈라쳐 표 얻겠다는 건가>에서 "(윤 후보가)자신의 공약은 물론 페미니즘 활동가 신지예 씨를 캠프에 합류시켰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라며 "젠더를 불쏘시개 삼아 선거를 치르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정부 전체 예산의 0.2% 수준인 1조 2325억원의 예산이 여가부에 책정됐다. 이 중 7375억 원(59.8%)이 한부모가족 아동 지원 등 저소득층 가족 돌봄 사업에 쓰였다. 청소년 사회안전망 강화 등에 2422억 원(19.6%), 디지털성범죄 예방·피해자 지원 사업에 1234억 원(10%), 경력단절 여성 지원 등 여성관련 사업에 982억 원(7.9%) 등의 예산에 집행됐다.

경향신문 차준철 논설위원은 칼럼 <[여적]멸공 챌린지>에서 "철 지난 '멸공'을 띄우고 그것을 또 정치인들이 챌린지로 퍼뜨리다니, 재미는커녕 씁쓸하다"며 "색깔론을 부추겨 표를 얻으려는 심산이라면 시대착오적이다. 상상력의 빈곤이 더 슬프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 尹 "여가부 폐지"... 편 가르기로 갈등 부추겨서야>에서 "윤 후보는 여가부 폐지 이류를 묻는 질문에 얼버무리며 재대로 설명도 하지 못했다"며 "그간 젠더 갈등이 악화한 데는 이를 이용하거나 무시한 기성세대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중략)현 정권의 편 가르기 정치를 비판하던 윤 후보가 편 가르기를 선동하는 것은 정권 교체의 명분을 스스로 없애는 일이라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고 썼다.

1월 10일 한겨레, 경향신문, 중앙일보, 동아일보 지면 갈무리

중앙일보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는 <[시선 2035] 여성가족부 폐지?>에서 "전 세계 97개국엔 여성 또는 성 평등을 위한 장관급 부처가 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인원은 연평균 5만명이 넘는다"며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는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올해 여가부에 배정된 예산은 전체 정부 예산의 0.2%다. 이게 그렇게 중한가"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李·尹 2030 표 잡자고 젠더 갈등 조장 말라>에서 "신지예 부위원장을 자진 사퇴 형식으로 정리하더니 이번엔 다짜고짜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한다"며 "왜 그래야 하는지, 그동안 생각이 달라진 것인지 해명도 없다. 국민의힘 내부 갈등 과정에서 이탈한 2030 남성 표심을 되찾겠다는 계산밖에는 없는 건가"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해서도 "여성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이 없으니 여기 가선 이 말 했다가 저기 가선 저 말 하면서 갈등만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라고 썼다.

동아일보는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모색해야 할 대선 후보들이 남녀 간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며 분열의 골을 깊게 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한 나라의 리더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이라면 민감한 젠더 갈등에 편승해 이득을 보겠다는 얄팍한 생각은 접고 청년들의 문제에 진지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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