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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피의 의미와 경계 찾기, 통쾌한 성장서사의 완성[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2.01.08 21:47

[미디어스=이정희] 우리집 아이들은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을 즐겨한다. 자신들에게 유전자를 전해준 부모지만 그 부모의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을 자신들 삶의 경계로 삼겠다는 의지이다. 자식들은 성장의 어느 시점에서 이와 같은 딜레마에 봉착한다. 그리고 이 딜레마를 겪으며 '어른'으로서 삶의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1월 5일 개봉한 영화 <경관의 피>는 최민재라는 풋내기 경찰의 시선을 따라간다. 보는 이로 하여금 경계를 풀도록 만드는 선한 인상, 그리고 얼핏얼핏 드러나는 감정의 결은 그의 출렁이는 마음에 고스란히 공감하도록 만든다. 아마도 민재 역을 맡은 배우 최우식의 강점이 아닐까. 영화는 원칙적이다 못해 고지식해서 선배 형사의 강압적 수사를 시인하고, 그로 인해 조직 내 왕따가 되어버린 신입경찰 민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언더커버를 선택하다

영화 <경관의 피> 스틸 이미지

그런 상황에서 민재에게 감찰계장 황인호(박휘순 분)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박강윤(조진웅 분)에 대한 은밀한 수사를 위해 '언더커버'를 하라고 제안한 것이다. 박강윤은 압도적인 실적을 자랑하는 광수대의 에이스 경찰이다. 하지만 그의 수사에는 무리가 따른다. '범죄 추적은 어떠한 경우에도 무리가 되지 않는다'며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오가는 박강윤식 수사는 '경찰직'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감찰계장 황인호의 신경을 거스른다. 그가 사는 고급 빌라, 명품 못, 외제 차는 물론 그가 펑펑 써대는 수사비의 출처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최민재가 박강윤 수사를 위한 광수대 '언더커버'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구린' 박강윤 때문만은 아니다. 황인호가 넌지시 풍긴 아버지의 비밀 때문이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순직자도 되지 못한 아버지. 경찰만은 되지 말라며 따귀를 올려붙이던 아버지의 뜻과 달리 경찰의 길을 걷게 된 민재에게 아버지는 해묵은 숙제였다. 제목처럼, 아버지에 이어 경찰을 하게 된 민재네 집안의 '피'. 과연 그 피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 민재의 의심은 조금씩 커져 간다. 

최민재의 시선은 줄곧 박강윤을 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치되자마자 최민재를 자신의 파트너로 택한 박강윤 덕분에, 최민재는 바로 옆에서 강윤을 지켜보며 경찰의 존재론을 고민하게 된다. 

영화 <경관의 피> 스틸 이미지

'경관의 피'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는 일본의 소설가 사사키 조가 집필한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제 패망 직후 경찰이 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은 장대한 작품은 2009년 드라마로도 방영됐다. 원작 속 박강윤의 캐릭터 가가야 히토시와 주인공 안조 가즈야는 미묘한 갈등관계의 캐릭터이다. 이러한 원작 속 캐릭터를 영화는 아버지의 서사와 손자의 서사를 뒤섞으며 '버디 무비' 형식의 수사물로 재창조한다. 

부재한 아버지, 경찰이 된 최민재는 ‘피’를 물려준 그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숙제로 떠안는다. 처음엔 고지식한 신입경찰 최민재가 맞닥뜨린 신념에 대한 이야기인 듯했던 영화는 점차, 그가 마주한 박강윤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질문으로 구체화된다.

법학과를 나왔음에도 경찰직을 선택한 최민재에게 아버지는 황인호가 제시한 '이상적 모습'이었다. 그런데 최민재는 박강윤이란 인물을 수사할수록 황인호가 전한 부도덕한 존재가 아니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의 흐트러진 신념의 갈피에서 솟아오르는 건 아버지의 죽음 그 시점에 머무른 최민재의 '내면아이'이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그의 눈앞에서 범죄자를 잡다 죽어간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된다. 

성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넘어서는 과정이다. 그건 동시에 자신과 어른, 가장 직접적으로는 부모와의 경계를 분명하게 긋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는 태어나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부모를 내면화한다. 엄마의 존재가, 아빠의 존재가 곧 자신이다. 하지만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들은 안다. 자신은 부모와 ‘다른’ 또 하나의 존재라는 걸. 그런데 그 차이를 통해 나를 알아가야 하는데, 부모가 어떤 존재인 줄 모른다면? 

영화 <경관의 피> 스틸 이미지

박강윤과의 만남은 민재가 어린 시절에 묶어둔 아버지에 대한 의문을 끄집어낸다. 그건 마치 글로 사랑을 배우듯 그의 머릿속에서 그려낸 이상적인 아버지, 즉 판타지로만 존재했던 '어른'의 세계에 대한 질문이 된다. 아버지가 격렬히 반대했음에도 경찰이 된 최민재.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는 최민재로 하여금 더 고지식한 경찰이 되어 순직의 명예도 갖지 못한 아버지를 '보상'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언더커버로서 황인호가 그에게 주입했던 부도덕한 박강윤의 실체에 혼란스러워하던 절정의 순간, 돌아서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박강윤이 되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수사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박강윤. 실제로 민재가 그와 함께한 수사는 부도덕했을지도 모를 아버지라는 그의 묵은 '트라우마'를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마 아버지도 박강윤처럼 그랬으리라, 이런 안심이 들며 오래도록 그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아픔도 치유되어 가는 듯하다. 처음 박강윤이 집어주는 명품에 주눅 들던 최민재가 중반을 넘어서며 박강윤 미니미가 되어가듯이 말이다. 

하지만 박강윤의 무모한 수사는 결국 그를 옥죄는 포승줄이 된다. 범인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드릴을 들이대는 걸 마다하지 않는 '수사 제일주의'는 그가 속한 경찰 내 비밀조직에 위협이 된다. 그리고 위험한 그를 쳐내기 위한 경찰 내 비밀조직의 이해와 감찰계장 황인호의 의지가 일치하며 박강윤은 그가 저지르지 않은 혐의로 구속되는 신세에 이른다. 

최민재의 선택

영화 <경관의 피> 포스터

또 다시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어야 할까? 하지만 이제 최민재는 더는 아이가 아니다. 처음 언더커버를 선택하던 때처럼 황인호와 박강윤 양자택일 앞에 고민하는, 융통성 없는 소년이 아니다. 경찰의 정의를 부르짖으며 박강윤이 저지르지도 않는 혐의를 덮어씌운 황인호의 또 다른 부도덕을 알아챌 만큼 최민재는 성장했다. 또한 수사를 위해 물불 안 가리다 마약상의 돈을 빌려 수사할 처지에 몰리기도 하는, 무모한 박강윤의 한계 또한 깨달을 나이가 되었다. 

영화는 최우식의 어수룩한 아이 캐릭터에 조진웅이란 배우가 가진 남성성을 대치시키며 최민재란 인물의 성장서사를 이끌어간다. 또한 체격과 인상, 연기 모든 면에서 대비되는 이들이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춰 활약하며 전형적인 남성 버디무비의 형식을 완성해간다. 

하지만 고뇌하는 햄릿과 같던 최민재의 갈등이 전형적인 헐리우드 오락수사물처럼 간단 명쾌하게 마무리되며, 영화를 끌고 왔던 묵직한 긴장감이 너무 쉽게 풀려버린 듯한 느낌이다. 마치 ‘어른으로 사는 건 다 그런 거야’하고 어깨 툭툭 치며 유흥가로 이끄는 듯한 통쾌한 엔딩 이후, 극장 문을 나서며 다시 묻게 된다. '정의'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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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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