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컨택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외계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비행체 12개가 지구 각지에 등장한다. ‘쉘’로 불리는 이 비행체로 인해 세계는 혼란에 빠지고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물리학자 이안(제러미 레너)와 팀을 이뤄 18시간마다 문이 열리는 쉘 내부로 진입해 외계인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두 사람의 목표는 외계인들의 왜 지구에 왔는지 알아내는 것. 하지만 완전히 다른 언어 체계 때문에 의사소통은 난관에 부딪힌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는 외계인과 ‘최초의 접촉(First contact)’을 다룬 영화다. 이 소재를 다루는 일반적인 영화가 따르는 제 1법칙은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이다. 선한 사람은 오지 않고, 오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는 이 법칙은 자연스레 외계인과의 대결로 나아간다. 제 1법칙을 벗어나 처럼 외계인과 친교를 나누는 작품도 있지만, 의사소통의 불가능은 적당히 넘어간다. <컨택트>는 최초의 접촉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가 생략하는 ‘소통’에 집중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영화 <컨택트> 스틸 이미지

그들은 왜 지구에 왔는가

‘소통’이라는 소재 아래 두 개의 질문이 <컨택트>의 뼈대를 받친다. 첫 번째 질문은 ‘그들은 왜 지구에 왔는가’이다. 이 질문은 미국 정부를 대변하는 웨버 대령(포레스트 휘태커)가 루이스에게 전달하는 미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을 내기란 어렵다. 영화 중간 이안의 내레이션처럼 그들은 모험가일 수도 과학자일 수도 있지만, 과학자치고는 너무 호기심이 없다. 그나마 내부에 진입한 인간들과 소통을 한다는 게 다행일 정도로 쉘과 외계인들은 그저 상공에 떠 있을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행동으로 목적을 유추할 수 없는데 직접 소통은 더욱더 쉽지 않다. 당연하지만 언어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사용하는 문자는 마치 QR코드나 그래픽 같은 형태이며 연구를 통해 본다면 시제도 없다. 이때 언어가 사고체계를 형성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은 인류와 외계인의 사고체계를 구분하는 중요한 단서로 쓰인다. 인류의 언어는 시제도 있고 순차적으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 자연스레 전후라는 인과관계가 생기고 이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외계인의 언어는 시제 없이 동시에 정보를 표현하기 때문에 인과에서 벗어난다.

인과에서는 시제도 평등하지 않다. 현재는 과거에, 미래는 현재에 종속된다. 하지만 인과를 벗어난다면 과거-현재-미래가 평등하다. 외계인이 호기심이 없는 이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호기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과관계를 규명하여 해답을 찾는 것이다. 모든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건 호기심과 해답이 동시에 보인다는 말과 같다. 굳이 문제 인식-자료조사-분석-결론 도출이라는 번거로운 문제 풀이의 과정을 거칠 이유가 없다.

어쨌든 루이스는 언어학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 외계인들은 무기를 주러 왔다(Offer weapon). 그리고 무기는 쉘의 갯수만큼인 12개로 나뉘어있어 모든 정보를 합쳐야만 얻을 수 있다. 허나 풀지 못한 질문도 있다. 12개의 쉘이 지구 곳곳에 나타났지만 왜 그 장소인지는 끝내 알아내진 못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중요한 지점과 별 볼 일 없는 장소, 강대국과 약소국이란 구분도 지리적 환경이나 역사적 배경 등의 인류가 만들어낸 인과로 형성된 정보에 불과한 탓이다.

문제는 보안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입수한 정보를 타국과 공유를 꺼린다는 입장이 팽배하고, 중국과 러시아처럼 외계인에 무력으로 대응하자는 국가들이 있다는 점이다. 또 하필이면 이들은 소위 강대국으로 분류되어 막강한 목소리를 낸다. 무려 외계인이 나타난 와중에도 자국 우선주의로 치닫는 복잡한 외교적 상황은 인과관계로 세상을 인식하는 인류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겪어온 비극들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 <컨택트> 스틸 이미지

루이스에게 무엇이 도착했는가

이제 더 중요한 두 번째 질문이 시작된다. ‘무엇이 도착했는가’이다. 영화의 원제는 <Arrival>이다. 도착 혹은 도달했다는 뜻이다. 외계인에게 ‘왜 왔느냐’라고 던진 질문과 방향도 대상도 다르다. 메인 플롯을 따르면 표면적으로는 외계인의 도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지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상상력, 언어와 과학을 통해 소통의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지적쾌감, 방해를 뚫고 임무를 해결하는 통쾌함이 <컨택트>가 선사하는 장르적 재미다.

서브플롯을 따라가면 Arrival은 딸과 만남으로도 풀어볼 수 있다. <컨택트>의 오프닝은 “모든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는 루이스의 내레이션과 함께 딸이 12살의 나이에 불치병을 얻어 사망하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며 이 장면들은 과거가 아니라 루이스가 이안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겪게 될 미래의 일이라는 게 밝혀진다. 루이스가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하며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관찰하는 능력을 깨우친 덕이다.

숨겨진 플롯도 있다. 바로 ‘나의 발견’이다. <컨택트>는 서서히 소통의 범위를 좁혀간다. 외계인에서 인류로, 인류에서 가족으로. 중간중간 소통이 단절되는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결국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간다. 마지막 남은 소통의 대상은 ‘나’다.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 이미 결정된 운명 속에서 만나게 될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조건적인 긍정과 낙관으로 수용할까. 아니면 체념과 비관으로 무기력하게 순응해야 할까.

루이스는 닥쳐올 비극을 알고도 운명을 받아들였다. “모든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는 내레이션은 엔딩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똑같은 문장이지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는 루이스와 관객들에게는 오프닝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비록 정해진 운명이지만 주도적인 순응의 과정은 무조건적인 긍정과 낙관, 무기력과 체념과 비관과는 전혀 다르다. 비극 앞에서도 인간적으로 숭고한 선택을 해낸 감정적 울림이 그저 지적이지만 메마르고 차가운 SF에 그칠 수도 있던 <컨택트>에 습기와 온기를 부여한다.

영화 <컨택트> 스틸 이미지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해

캐나다 출신인 드니 빌뇌브 감독은 레바논 내전을 다룬 <그을린 사랑>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할리우드로 진출해 <프리즈너스>, <에너미>, <시카리오>, <블레이드 러너 2049>를 거쳐 최신작인 <듄>까지 꾸준히 평단의 호응을 받은 수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경계’이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원래 있던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접하며 겪는 주인공들의 혼란과 방황을 꾸준히 그려내는 것이다.

2016년 개봉한 <컨택트>는 일단 필모그래피의 중간에 위치한다. <컨택트> 역시 다른 작품들처럼 주인공인 루이스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외계인과의 조우 이후의 세계로 이동하며 겪는 혼란을 그린다. 이전의 작품들과의 일관성은 물론이고, 마치 미래의 기억을 갖게 된 루이스처럼 이후에 연출한 작품까지 아우를 수 있는 주제 의식을 정립했다는 점도 장점이지만 이성적으론 비관적이지만, 의지로 낙관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고 있다.

<컨택트>는 왜 태어났고(무슨 이유로 지구에 왔고) 죽을 걸 아는데(무엇이 오는가) 왜 사는가. 결국 이 질문을 2시간 동안 풀어낸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루이스의 내레이션이 대답이 되지 않을까.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해”. 2022년을 맞이한 우리의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12월 31일이 올 줄 알면서 왜 오늘을 사는가. 2022년은 지나도 2022년을 보낸 우리의 이야기가 남기 때문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