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12월 8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는 '실화가...될지도 모를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6500만 년 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 근처에 소행성이 떨어졌다. 이 사건은 지구의 우세종이었던 공룡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물을 멸종시켰다. 그저 옛날이야기일까? 실제 1990년대 이후 지구 주위에서 수많은 소행성이 발견되면서 근지구 천체에 대한 관측은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3월 기준 크기가 140미터보다 큰 ‘지구 위협 소행성’은 2,173개에 달한다.

고대 이집트 태양신 라(Ra)를 삼킨 뱀의 이름을 따 지은 소행성 아포피스는 2029년 4월 13일, 지구 상공 3만2천㎞까지 접근한다. 광대한 우주 조금만 방향이 바뀌어도 초속 수십㎞로 이동하는 소행성에는 엄청난 궤도 변화가 생긴다. 가속 중인 자동차에서 핸들을 조금만 돌려도 사고가 나듯,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궤도가 바뀐다면 지구와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지구의 운명은 언제든 경각에 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마겟돈>을 비롯한 다수 SF영화들은 소행성 충돌을 소재로 삼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구의 운명을 ‘인간의 의지’로 구하는 해피엔딩으로 희망을 선사한다. 그런데 <돈 룩 업>의 메시지는 낭만적인 희망이 아니다. 코믹 풍자극으로 시작된 영화의 끝에서 마주하는 건 '정말 실화'가 될 것 같은 지구의 미래이다.

실화가 될 수도 있는

영화 <돈 룩 업> 스틸 이미지

그 미래가 실화일 것 같은 이유는 행성 충돌 가능성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환경 파괴와 불평등 심화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인류의 자본주의적 삶, 그것을 부추기는 정치적 행위들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우리가 우리의 멸종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게 실감 난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천문학과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는 디비아스키가 발견한 태양 궤도의 혜성이 조만간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데이터를 산출한다. 그들이 산출해 낸 조만간은 '6개월'이다. 몇 번을 거듭 계산해봐도 달라지지 않는 에베레스트 크기 혜성과 지구의 충돌. 그건 곧 6500만년 전 공룡 멸종처럼 지구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최선을 다해 지구에 닥친 위기를 알리고자 한다. 지구방위사령부 테디 박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들은 백악관으로 호출된다. 여기까지는 위기 대응 매뉴얼다웠다. 하지만 지구 멸망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데, 백악관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영화 <돈 룩 업> 스틸 이미지

여기서부터 <돈 룩 업>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명감과 조국애를 앞장세운 애국자 대통령이 아니라, 연신 머리의 컬을 매만지며 혜성 충돌보다 대법관 임명을 더 신경 쓰는 이상한 대통령 올리언을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다. 어디 대통령뿐인가. 마마보이 같은 그녀의 아들이 대통령의 비서실장이고, 다른 인물들도 오십보백보이다. 심각한 랜들과 케이트를 방치하거나, 그 와중에 별을 단 장성이 그들의 호주머니 돈을 삥 뜯는다.

한마디로 정신 나간 이들에 의해 좌우되는 미국의 정치, 랜들과 케이트는 다음의 대안으로 '언론'을 택한다. 랜들과 케이트를 초대한 브리(케이트 블란쳇 분)와 잭(타일러 페리 분)의 TV 토크쇼. 그런데 진행자들은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혜성 충돌을 '희화화'하기에 여념 없다.

이렇게 <돈 룩 업>은 현재 미국의 정치와 언론의 속성을 사실적으로 풍자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공인으로서의 사명이 아니라, 중간선거라든가 시청률과 같은 눈앞의 이익에 집중된 욕망과 욕구뿐이다. 특히 메릴 스트립과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가 연기하는 대통령과 앵커의 모습은 이 시대 정치와 매스 미디어에 대한 혹독한 조롱이자 비평이다.

영화 <돈 룩 업> 스틸 이미지

공적 자리에 있는 인물이 '사익'을 앞세울 때의 결과물은 대통령 올리언과 BASH사의 CEO 피터(마크 라이런스 분)의 협잡으로 절정에 치닫는다. 정치와 언론에 더는 기댈 것이 없다고 판단한 랜들과 케이트가 SNS에 기반한 대중운동을 통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 혜성을 향한 미사일 발사가 시도된다. 그런데 미사일을 탑재한 우주선이 돌아온다.

정치가 위에 자리한 사업가는 혜성폭발 계획 실패에 망연자실해 있는 사람들 앞에서 ‘우주의 보물창고'로서 혜성의 가치를 설파한다. 미국의 경쟁자 중국이 선점한 희귀 금속 운운하며, 자신의 기업체가 개발한 드론 등이 혜성을 잘게 쪼개 거기서 대량의 부를 채취하겠다고 장담한다.

멸망이냐 개발이냐, 이 웃픈 선택지에 놓인 사람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딸 케이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혜성 자원채취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케이트의 부모처럼, 사람들은 과학적 검증과 관계없이 기업의 홍보에 혹한다. 마치 신흥종교와 같은 분위기로 등장하여 멸망이 도래하는 시기 위로하는 앱을 만들어 내는 자본주의의 기막힌 상술은 지구의 위기조차 '사업'으로 돌변시킨다. 그러나, 그 사업은 우려했던 바대로 해프닝이 된다. 이제 사람들의 눈앞에 '디비아스키 혜성'이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다.

21세기 묵시록이 던진 질문

영화 <돈 룩 업> 스틸 이미지

최근 등장한 거부들의 우주여행, 그리고 화성 탐사는 판타지 속에 숨겨진 욕망의 확장일 뿐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화 속 지구를 탈출하는 우주선처럼, 과연 미래가 없는 지구에서 화성이 대안이 됐을 때 그곳으로 갈 선택권이 있는 사람은 누구겠느냐는 비판이다. 차라리 거기에 쓸 돈이라면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로 그 수명을 다해가는 지구를 구하는 데 써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영화 <돈 룩 업>은 최신 우주와 관련 학문적 성과를 기반으로 하여 생각해 볼 만한 디스토피아 한 편을 완성한다. 썩소를 짓게 만드는 정치풍자극인가 했던 영화는, 제목처럼 ’LOOK UP‘과 ’DON'T LOOK UP‘으로 대비되는 정치적 대중 운동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그리고 한편의 쇼처럼 변질된 정치와 그 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세계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지구 최후의 순간, 많은 이들의 선택을 보여준다. 삶의 허상을 거둬버린 그 순간에 정말 의미 있는 걸 묻는 영화. 아마도 행성 충돌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무게감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충돌의 그 순간에조차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은 인간의 무지몽매한 선택의 결과가 무엇인지 묻는다. 마지막 순간 할 수 있는 건 신을 향한 기도밖에 없는 인간들, 과연 그건 그저 영화의 이야기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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