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몇몇 인사들이 '김진표 X맨설'을 제기하며 김진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몇 명의 정치인들을 민주통합당이 공천 과정 등에서 배제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민주통합당이 더욱 개혁적인 정치적 전망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당 내에 그것을 가로막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재벌, 지역토호와 결탁하고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바로 그것이며 그 대표격이 김진표 원내대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김진표 OUT’이라는 구호를 만들고 이들에게 공천을 주지 말라는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트위터 등의 SNS 공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심상찮게 활성화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이상하게 생각된다. 민주통합당에 더 명확한 개혁성을 요구하는 것은 긍정적인 것이다. 어떤 정치세력이 더 개혁적이 되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가 이상하게 느끼는 것은 그러한 주장이 왜 민주통합당에 ‘김진표 OUT’을 요구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김진표 원내대표가 잘한 것은 없다. 그는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관료집단 출신이며 원내대표로서 투쟁력을 발휘해야 할 순간에 여당과 타협을 모색하여 전선을 교란시켰다. 특히 한미FTA 반대 국면에서 그는 소위 온건파의 맨 앞줄에 섰다. 이러한 전력만으로도 그를 정치적으로 반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어디 김진표 뿐인가? 한명숙 대표를 비롯한 당 내 친노세력은 과거 한미FTA를 추진해야 한다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당사자 들이다. 민주통합당이 진정으로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면 이들이 먼저 물러나야 한다. 이들과 조금 노선을 달리 하는 소위 486들 역시 참여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키 어렵다. 참여정부 시절 여당 수뇌와 장관을 역임했던 정동영은 말할 것도 없고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 정치인들도 이들이 주장하는 ‘지역토호’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커 전부 공천에서 배제시켜야 한다. 그러면 남는 것은 최근 새로운 세력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른 바 ‘시민사회’그룹 뿐이다.

그렇다면 민주통합당 전체가 시민사회그룹으로 물갈이 되면 이들이 주장하는 개혁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 다르다는 것이 정책적 마인드도 다를 것이라는 점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소위 시민사회그룹 중에는 그간의 과정을 통해 민주통합당의 핵심들과 정책적 지향이 비슷한 것으로 드러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때문에 이들 중에서도 솎아내야 할 사람들을 골라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과연 누가 남을지 궁금해진다.

재차 강조하지만 사람들이 정당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맥락을 따져서 앞뒤가 맞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더 살펴보기 위해 김진표 OUT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답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문제 삼고 있는 사람들의 답은 이렇다.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뜯어 고치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대한 원인과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재벌은 국가 권력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비호받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교란하며 자신의 이득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때문에 재벌을 비호하는 정치권을 정화하고 재벌이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아마 여기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결국 이 얘기는 재벌을 권력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시장의 질서에 복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국가가 경제 체제에서의 공정함을 보증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이 그것을 보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과 재벌은 시장원리 이외의 요소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일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시장주의적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경제관료들끼리의 오랜 대립을 연상케 한다. 경제관료들 중에도 상대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장원리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관철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대립했고 정권의 흥망에 따라 경제정책의 키를 잡기도 했고 실각하기도 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굳이 따지자면 국가보다는 시장원리를 강화하는 쪽을 선호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강만수 전 장관을 비롯한 모피아로 불리는 인적 네트워크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소위 민주정부 10년을 통해 성장하게 된 사람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며 경제의 투명성을 제고해 시장원리를 실현하려는 정책인 금융실명제가 시행될 때 이를 주도하였던 사람 중 하나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즉, 김진표 원내대표는 민주통합당의 이념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의 영역에서 민주통합당의 이념을 대표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 것이다. 강만수 전 장관이 일으킨 소위 메가뱅크 논란에서 김진표 원내대표가 이에 대해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제기하며 시장에 국가가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하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새누리당에는 과거 재무부와 가까운, 시장보다 국가를 믿는 경제관료들이 다수 진출해있고 민주통합당에는 경제기획원, KDI, 한국은행 등과 가까운, 국가보다 시장을 믿는 경제관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우스운 모양으로 변질될 수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하자면 김진표가 보수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이 보수적인 것이다. 김진표가 민주통합당의 X맨인 것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이 진보의 X맨인 것이다. 고로 여러분이 외쳐야 할 구호는 ‘김진표 OUT’이 아니라 ‘민주통합당 OUT'이다. 민주통합당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치인들을 공천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통합당 내의 진보주의자들의 철수를 요구해야 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결국 이것은 공천을 둘러싼 추문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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