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춥고도 평온한 주말이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가운데 아이러닉하게도 성탄 시즌임을 자각하게 한 두 가지 정치적 사건에 대해 논해보자.

문재인 대통령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놓고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지만, 이는 예정된 바였다. 정확히 말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에 전직 대통령들을 사면하는 것은 대부분의 여의도 호사가들이 예상한 바였다.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시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찌됐든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은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집권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과 연결돼 있다. 때문에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문재인 정권 시기를 규정한 정치 구도의 본질에 해당하는 문제다. ‘이명박근혜 반대’는 여당과 그 주변부의 자기조직논리의 중심이고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본 인식, 즉 정체성이다.

그러나 이런 구도를 차기 정권에까지 넘겨줄 필요가 있는가? 세상만사의 고독한 결정권자인 대통령은 그게 실효적이든 아니든 그런 유의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다음 정권은 전직 대통령 사면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정파적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전직 대통령을 이번 정권에서 사면하는 것으로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산뜻하게 출발하도록 해보자는 생각은 정해진 수순이다.

다만 결행의 시점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첫 번째로 사면권의 제한적 행사라는 당위를 거스르는 부담까지 안고 결행하기에는 명분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적 여론 등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선거를 앞둔 시기 사면 카드를 쓸 경우는 선거 개입이라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 당선인이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요청하고 현직 대통령이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호사가들은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 예상했다.

변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 문제였다. 사면심사위에서 다뤄졌다는 내용에 대한 보도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신건강에는 실제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선 어차피 할 사면이라면 건강 문제 등을 고려하는 형태로 좀 더 일찍 결단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따라서 전직 대통령들 중 박근혜 전 대통령만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는 형태로, ‘제한적’인 사면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도 전망해볼 수 있다. 일부의 평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 수감 기간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전직 대통령’으로 묶어서 사면하는 카드는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은 앞으로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다는 사실과 함께 앞서 현직 대통령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치 환경을 고려한다면, 대통령 당선인이 요구하는 형태로의 사면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볼 수 있다. 어찌됐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선거로 뽑힌 대통령인데 감옥에서 옥사하게 두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전망과 함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과연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건 양쪽 후보 모두에게 일정 정도 부담이 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당 후보에게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태도라는 딜레마를, 야당 후보에게는 ‘탄핵의 강’을 다시 건너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재명 후보는 상대적으로 몸이 가볍다. 결국 사면을 결정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기 때문에 고뇌를 존중한다고 접근하면서도 사면은 시기상조였다는 간접적 입장 표명으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 다만 앞서도 논했듯 ‘이명박근혜 반대’라는 정파적 중심이 해체된다는 점은 위기요인이면서도 어떤 기회이다. 지지층은 동요할 수 있으나 그걸 계기로 새로운 정파적 중심을 형성하는 데 성공하면 여당의 파벌적 성격을 ‘이재명파’로 바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수완이 이재명 후보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있느냐, 있더라도 그걸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느냐는 향후에 더 따져볼 문제이다.

윤석열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부담이 더 크다. 그러나 부담이 클수록 원칙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첫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안쓰럽더라도 국정농단 수사는 할 수밖에 없는 수사였고 전적으로 정당한 거였다. 둘째, 검사로서 정당한 수사를 했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형식적으로는 같지만 정서적으로는 또 다른 이 두 정치 논리를 중도층과 핵심 지지층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묘수라도 수순이 잘못되면 악수가 된다. 결과적으로 수사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데까지 간다면 최악의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한 시민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허위이력 의혹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후보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과제는 오늘 다룰 두 번째 주제인 김건희 씨의 사과와 관련된 문제다. 김건희 씨의 사과는 크게 세 가지 대목으로 이뤄져있다. 첫째는 허위이력 기재 등의 의혹을 실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둘째, 후보 배우자로서, 또 예비 영부인으로서 행보는 최소화하겠다는 선언이다. 셋째, 여성과 고령층 표심을 겨냥한 정서적 호소이다.

여기서 정서적 호소 부분은 김건희 씨 사과의 진정성에 결정적 의문이 드는 근거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 앞서 대목의 해명과 설명도 그간의 의혹 제기에 비하자면 불충분하다. 영부인으로서의 역할 제한을 예고하는 대목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허위 이력을 근거로 쌓아올린 본인의 경력으로 취득한 이익의 사회 환원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면 조금은 나았을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 허술한 진정성을 그나마 보완할 수 있는 건 윤석열 후보의 앞으로의 태도라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가 기자들에게 시간강사를 어떻게 뽑는지 알아보라며 호통을 치는 태도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배우자의 흠에 대해 사과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또 자신이 대통령이 됐을 때 처가 주변에서 잡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특별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면 ‘진정성’은 적어도 후보 차원에선 입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과 했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식의 ‘제 식구 감싸기’와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면 김건희 씨의 사과는 미미한 효과를 거두는 것에 그칠 것이다. 오히려 사과를 둘러싼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 왜 윤석열 후보는 유독 가까운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온정적인가? ‘온정’이 인간관계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면, 김건희 씨는 ‘언터처블’이기에 상황이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언터처블’ 배우자와 처가 식구들은 집권 후 어떻게 되는가? 처음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선거에 이기고 싶다면 후보 본인을 즐겁게 하는 말들만 듣지 말고 불편하게 만드는 고언을 가슴에 새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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