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약속이 있어 종로에 갔다가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 가면 의식처럼 문구 코너에서 볼펜을 사고 소설 코너에 가서 요즘 나온 소설을 둘러본다. 전후가 바뀌어도 서점에 가면 항상 하는 의식이다. 글을 쓰겠다는 다짐, 좋은 글을 재밌게 쓰겠다는 다짐을 부적처럼 가슴에 안고 오는 것이다.

그날도 볼펜을 사고 소설을 둘러보았다.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베스트셀러 작품은 언제나 그렇듯 바뀌지 않고 그대로였고, 십 년도 넘은 책이 가판대에서 양장본으로 거듭 표지를 바꾸어 베스트셀러로 놓여 있었다. 항상 같네,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훑어보다 색다른 코너 하나를 발견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청소년 문학 코너였다. 작게 있던 코너였는데 규모가 커졌다. 코너가 커진 것뿐 아니라 달라졌다. 처음 보는 작가 작품이 많았다. 출판사마다 청소년 문학상이 많이 만들어지고 작가가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장편소설상은 줄어드는 반면에 청소년문학상은 늘어나는 추세이다. 책 표지도 요즘 청소년 취향에 맞게 만화 같은 그림이 많았다. 제목도 딱 청소년의 정서에 맞는 재밌고, 톡톡 튀는 것이 많았다. 서점 코너에서 청소년 문학 코너가 커졌다는 것은 문학에서 청소년 문학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이다.

소재와 장르도 다양하다. 퀴어, 페미니즘, 환경, 장르문학, 판타지 등으로 다양하며 친구 간의 관계, 성 정체성, 성폭력, 학교폭력, 환경오염 등 주제도 다채롭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껄끄러워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에 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소설이 다양해지고 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 다양하고 젊어진 이유는 소설을 읽는 대상, 독자가 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소설 구매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청소년들.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지 않는 세대, 휴대전화기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대라고 낙인찍힌 세대가 문학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모순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마도 청소년에겐 요즘 이야기가 필요했고, 문학은 늦게나마 흐름에 발맞추게 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내가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책은 출판사에서 묶음으로 발행하는 고전 시리즈이거나 지금은 문학 활동이 뜸한 원로의 작품이다. 그때 나는 그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다. 읽을 책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전 시리즈와 암울한 시기를 건너오던 때를 대변하던 소설이 전부였으니까. 현재를 사는 청소년들에겐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는, 내가 살던 그 시절 이야기를 재밌게 읽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교과서에서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입시를 위해 읽는 문학 작품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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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를 MZ세대라고 한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 ~ 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세대와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디지털 문화를 즐기고, 최신 트렌드를 추구하며 이색적인 경험을 원하는 세대이다. MZ세대는 영화, 문학, 미술 등 예술과 문화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세대로 트렌드를 이끌며 소비의 주축이 되고 있다. 이들은 트렌드를 이끌고 소비를 할 뿐 아니라 창조자의 역할도 하고 있다.

주류의 예술가도 MZ세대이고, MZ세대 예술가의 작품을 사는 사람들도 MZ세대이다. 이들은 SNS 통해 작품을 선택하고 구매하고 다시 재판매한다. 소비에는 신념이 있다. 가치를 중시하며 특별한 메시지를 담긴 물건을 구매한다. 소비 성향을 감추지 않는다. 취향에 맞는 소비를 하며,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다.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기 때문에 작은 것에 만족하는 반면 자신의 성공과 부를 과시하는 플렉스 문화에도 익숙하다.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소비하며 또 빠르게 중고시장을 이용해 물건을 되파는 것에 익숙하며, 렌털 문화에도 익숙하다.

문학이 소비 주체이며 예술을 주도하는 세대로 떠오른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80년대, 90년대 책은 그들에게 흥미롭지도, 가치 있지도 않다. 90년대, 2000년대 소설과 작법은 매력적이지 않다. 지금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담을 수 있는 이야기와 다양한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문학이 MZ세대에겐 필요하며 이것이 청소년문학이 자라는 원동력이 된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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