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와 알렉산더 페인이 만나니 이런 멋진 작품이 나오나 봅니다. 사고로 죽어가는 아내와 그런 아내의 마지막을 지키는 가족의 이야기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그렇다고 극적인 방법을 동원하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이 영화는 위대한지 모르겠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조지 클루니라는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영화

액션이나 강렬한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너무 건조하거나 잔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전작인 <사이드웨이>를 좋아하셨던 분들에게는 전작의 감성을 넘어서 더욱 잔잔하게 삶을 관조하는 그의 시선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을 듯합니다.

하와이는 많은 이들에게 최적의 관광지이자 파라다이스 정도로 여겨지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하와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한 이 자연 환경도 그곳이 잠시 휴식을 취하러 오는 곳이라면 행복할지 모르지만 삶의 일부라면 특별해질 수는 없을 듯합니다.

대대로 하와이에서 살아왔던 주인공 맷(조지 클루니)은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워커홀릭인 그는 오직 일에 집중하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보트를 타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3살 이후로는 제대로 안아 주지도 못했던 어린 딸이 벌써 10살이 되었고, 17살이 된 큰 딸은 술에 취해 험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며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버지의 역할 중 가족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경제력에 좀 더 집중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맷은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가족보다 일이 먼저였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일로 얻은 성취와 반비례하는 거리감뿐이었습니다. 부인이 살아돌아오기만 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맷. 그는 성실하게 일하고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의 조상은 하와이 공주와 선교사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결혼해서 하와이에서 정착하게 되었고 거대한 땅을 물려받은 그들은 대대로 그 땅을 보존하며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가치관이 바뀌기 시작하며 친척들은 그 엄청난 땅을 팔자고 합니다. 사업이 망하고 돈이 필요했던 그들과 더 이상 보존만이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맷은 조만간 이 땅을 팔아 아내가 깨어나면 그녀가 원하는 보트를 사주고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등 여생을 행복하게 살 꿈도 꾸었습니다.

그런 그의 바람과는 달리 병원에서는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그녀를 위해 임종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맷에게는 자신과는 너무 멀어진 딸만 둘 있을 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좀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맷은 멀리 떨어져 있던 큰딸을 집으로 데려오지만 어머니의 위중함에도 불만을 토로하는 큰딸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유는 그녀가 지난 크리스마스에 어머니가 외도를 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지요.

큰딸의 고백으로 맷의 부인 임종에 대한 계획은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 사라지는 듯한 기분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족의 존재 가치를 찾아 나섭니다. 아내와 바람 났던 남자를 찾아 떠난 가족의 본의 아닌 여행. 그 여행 속에서 드러난 다양한 사건과 이를 통해 얻어지는 가치들은 곧 그들에게 새로운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죽음을 앞둔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이를 통해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매력적으로 담아낸 <디센던트>는 무척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하와이라는 낭만적인 공간에서 죽음이 화두가 되고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자연스럽게 역설적인 방식으로 사랑과 가족의 본질을 되찾게 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자신을 타박하던 장인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가족의 사랑을 엿볼 수 있게 되는 과정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자신을 두고 외도를 했던 아내에게 병실에서 홀로 분노를 표출하던 맷이 딸의 분노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존중을 강요하는 장면 등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게 합니다. 자신에겐 부인이지만 딸에게는 어머니인 대상에 대한 윤리적인 잣대는 어쩌면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역설의 묘미들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일 것입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전작인 <사이드웨이>를 재미있게 보셨던 분들이라면 만족할 수 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작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이 영화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차분한 전개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인간 본성들은 너무 익숙하기에 영화에 대한 친근감도 빠르게 전달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조지 클루니의 농익은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디센던트>는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세상은 영화로 표현되고 영화는 세상을 이야기 한다. 그 영화 속 세상 이야기. 세상은 곧 영화가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소통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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