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선거의 양상이라는 건 어느 정도 시대 흐름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양당 후보를 놓고 ‘비호감 대선’이라고 하지만 이게 꼭 후보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다른 누가 나왔더라도, 지금 수준은 아니었어도 비슷한 양상으로 선거전은 흘러갔을 것이다.

과거 참여정부 때도 그랬지만 이상이나 대의명분을 앞세운 정권이 스스로 장담한 바에 미달하는 성과를 냈을 경우 그 직후의 선거는 대개 ‘이익투표’가 중심이 된다. 더 이상 정치인들의 ‘그럴듯한 얘기’는 믿을 게 못 되니 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투표를 하는 게 최선이라는 거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600만표라는 압도적 차이로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개념이라도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부자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노골적으로 ‘이익투표’를 유도하면서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외피를 뒤집어 쓸 수 있었던 건 참여정부가 어떤 ‘모범답안’을 따르지 않은 게 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계는 아무런 질서가 없는 이종격투기식 관념이 지배한다. 모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걸 당연시한다. ‘해법은 없다’는 게 ‘모범답안’인 시대다. 이런 시대에 치러지는 대선이니 정책이나 노선, 철학, 가치가 아니라 후보자 개인에 얼마나 많은 흠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인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그 와중에 최선의 대응을 추구하는 것은 정치인의 의무이고 책임이다. 세상을 망치기 위해서라든가 오직 자기 배만 불리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정치인은 없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게 정치인이 할 일이라는 걸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양당의 후보는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의문이다.

윤석열 후보가 영혼없는 사과를 하고 캠프 차원의 해명 아닌 해명이 계속되면서 김건희 씨 허위이력 의혹은 진화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활활 타오르는 것도 아닌 ‘잔불’로 계속 남을 것 같다. “전시 이력을 과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전시는 했다”고 답하고, “교생실습을 근무라고 적은 건 허위 아니냐”는 문제제기에 “교생실습은 했다”고 답하는 대응을 보니 그렇다.

어찌됐건 후보 측이 제대로 된 답이든 아니든, 자기 주장에 뭔가 근거가 있다고 우기는 건 지지자들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익보다 손해가 클 것이다. 후보가 의혹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유사 사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예고편으로 비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에서 영부인이나 대통령의 처가에 대한 어떤 의혹이 제기됐다고 해보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처럼 감싸기로 일관하면 검경의 수사가 제대로 되겠는가? 윤석열 후보가 ‘문재인 정권의 문제’라고 주장한 바가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동아일보 인터넷 판에 <대통령의 애처증은 병이다>란 제목의 칼럼이 실렸는데, 그 표현 그대로다. 국민의힘 내에서 청와대 제2부속실을 없애거나 축소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물론 윤석열 후보는 이런 해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현명한 유권자들은 이런 대목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후보의 이런 태도에 비하면 아들의 불법도박 의혹에 대해 빠르게 사과한 이재명 후보의 태도는 긍정적으로 비춰진다. 신속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법적 책임을 질 일이 있다면 피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서는 도박 중독 치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약속까지 한 것은 ‘해법’까지 약속했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과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

다만 성매매 의혹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인 것은 감점 요인이다. 이재명 후보의 장남이 남겼다는 글을 보면 적어도 성매매 등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관련해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업소는 방문했지만 성매매 사실은 없었다’라는 건 수사나 재판의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말이지, 선거나 윤리의 차원에서 해명으로 할 얘기는 아니다.

이재명 후보가 부모로서 장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한 것은 윤석열 후보와 유사한 대응을 한 것이다. 대통령이 아들의 비행 의혹에 대해 “아들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남의 말을 믿는다고 할 게 아니라 부모로서 장남의 잘못된 가치관 형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밝혔어야 한다. 혹시 그러한 가치관 형성이 부모의 문제로부터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메시지까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다.

'해답이 없는 게 해답'이라는 시대의 대선이라는 건 이재명 후보의 공시가 제도에 대한 재검토 주장에서도 드러난다. 이재명 후보의 주장은 수도권 중도층, 그중에서도 고령층을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집값 상승으로 재산세나 건보료 인상분이 실제적 부담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을 걸로 보이는데, 이런 불안감을 해소해주겠다는 것이다.

선거 캠페인으로서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나 정책의 완결성 측면에선 의문이 남는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 때문에 일시적으로 재산세 등 부담을 경감시켜주자는 취지에서 여러 대책을 검토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공시가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면 공시가 자체가 아니라 자산에 대한 조세체계 전반의 변화를 함께 말해야 한다. 국토보유세를 말한 일도 있지만 국민의 동의 없이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재산세 부담 경감이나 양도세 중과 유예 등은 당장 하자는 취지다.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정책적 로드맵 없이 단지 세금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면 그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흙탕물 대선’이라지만, 흙탕물을 더 많이 뒤집어 쓴 사람이 이기는 선거는 아니다. 비록 흙탕물을 뒤집어 썼더라도, 최선의 싸움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양당 후보가 그런 차원에서 선거에 진지하게 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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