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난 내 스스로의 이념적 정체성을 ‘보수우익’이라고 판단한다. 난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원리에 반대하지 않으며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박정희, 전두환과 비슷한 독재자로 본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자유고 민주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적 가치가 언론의 자유니 내가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언론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를 뜻한다. 한 개인의 자유가 담보되지 않은 조직의 자유, 또는 조직 간부들만의 자유는 독재나 권위주의다. KBS의 사장이나 간부들이 일선 기자나 PD들에게 자신들의 편향적 정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은 그래서 반민주적 작태일 뿐이다. 결국 자본주의 원리를 지지하고 북한과 같은 체제를 혐오하며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난 정통 자유민주주의자다. 자유민주주의자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자고 해도 기껏해야 ‘보수우익’이다. 여기에 ‘좌’나 ‘빨’을 갖다 붙이기는 힘들다.

▲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MBC PD수첩 조능희 책임PD 등 제작진들이 2010년 1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5명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나는 ‘좌빨’로 취급된다. 한 달여전부터 시작한 트위터에서도 나를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KBS 새노조의 노동조합 집행부라서 그런가? 15년을 근무한 KBS의 상당수 동료들도 나를 ‘좌익’으로 본다. 우습지도 않다. 친일극우꼴통들이 정부와 시장의 권력을 독점하고 수 십여년이 흐르다보니 근대적 보수 우익 개념마저도 전복되어 버린건가? 내가 좌파면 파리가 새고 이명박은 세종대왕이다.

우리의 문제는 이렇듯 잘못된 ‘규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잘못된 ‘규정’은 왜곡된 역사로부터 연유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류의 사람들은 아마 자본주의가 ‘약육강식의 정글적 체제’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먹고 먹히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래서 힘세고 돈 많은 자가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 자본주의라 여기고, 여기에 조금이라도 규제를 가하거나 변화를 주려하면 ‘좌’나 ‘빨’이라고 몰아붙이니 하는 말이다. 이 지구상에 그런 약육강식의 정글적 자본주의, 순수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너희들 머릿속에만 있는 환상이다.

자본주의의 바탕에는 자유롭게 경쟁하는 개인에 대한 믿음이 있다. 모두 자유롭게 경쟁하다보면 시장에 가장 잘 적응하는 개인들이 살아남고 이들에 의해 생산성이 높아져서 사회가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이 자본주의의 전제(자유롭게 경쟁하는 개인)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3백여년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아니 수 만년의 인류사에서 단 한번이라도 ‘모두 자유롭게 경쟁했던’ 시대가 있었던가?

자유롭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경쟁의 조건’이 비슷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거대한 부와 권력을 물려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났다. 효도르와 내가 사각링 위에 올라 아무리 피 튀기게 싸운다 한들 나로선 죽지만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물질적으로 불평등한 권력의 현재는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현실화된다. 하나의 대기업이 수많은 중소기업을 갖고 놀 수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죽지 않으려면 꿇어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복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독과점을 규제하지 않는 나라를 찾기 힘들다. 금융과 산업 자본을 분리하려는 노력,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대기업의 담합을 처벌하는 정책들, 복지를 확대해 시민 각자가 최대한 비슷한 경쟁력을 갖춰주게 하려는 노력들이 모두 같은 이치에서 나온다. 자본주의 원리에 충실하기 위해 자유롭게 경쟁할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본주의만이 민주주의를 지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체제인지는 입증되지 않았으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여러모로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긴 힘들다. 특히 둘은 ‘인간’에 대한 전제가 닮았다. 민주주의도 자본주의와 비슷하게 ‘인간’을 상정한다.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 각자 한 표씩의 투표권을 가지고 대표를 선출한다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시 근본적 오류가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모든 인간이 항상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시장에 가서 정확히 내가 원하는 물건을 내가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는가? 결코 충동구매를 하거나 바가지를 쓰지 않을 만큼 충분한 정보와 정확한 판단력을 모든 사람이 갖추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국민 투표라는 그 알량한 민주주의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도 막대한 정보와 정확한 판단력이 필요함을 이미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가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4년전에 우리는 이명박을 뽑았다. 최선의 결정이었을까?

그래서 미국의 언론학자들은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를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Market place of ideas)라고 표현한다. 자유 시장 경제처럼 사상도 자유로운 시장을 형성할 수 있어야 언론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담보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언론이 한 나라 또는 한 지역의 대표를 선출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생각을 전달해줘야 시민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정보와 생각을 전달하지 않고 한 정파의 일방적인 생각만을 전달한다면 사회는 ‘사상의 독과점'에 빠지게 된다는 우려가 배어있다.

자, 이 모든 생각에 무슨 ‘좌’나 ‘빨’의 요소가 있단 말인가? 지극히 시장경제 중심적이며 철저히 자유적이고 순수히 민주적인 사고다. 그래서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이동관, 최시중, 이병순, 김인규, 그리고 한나라당류의 무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보수 우익인가?

당신들이 보수 우익이었다면 당신들은 정부가 불법적으로 정연주를 KBS 사장직에서 쫓아냈을 때 궐기했어야 했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를 국가 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몰 때 격분했어야 했다. 촛불집회에서 죄 없는 시민들이 얻어터질 때 함께 거리로 나섰어야 했다. 그게 보수다. 그게 우익이다. 그게 당신들이 지켜야 할 시장의 가치며 사상의 자유다. 보수우익이라면 궐기하라!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고발했던 <9시 거짓말>의 저자로서, 현재 KBS 새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보도부문 간사를 맡고 있다. 트위터 계정은 @kyun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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