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융합 환경과 글로벌 OTT의 성장은 방송의 시장경쟁을 가속화해 공영방송의 존재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보편성과 다양성, 지역성과 공익성 등 민주주의 가치를 내건 공영방송의 존재를 부정하는 의견은 많지 않다.

문제는 공영방송 제도를 유지·강화할 제도·사회적 논의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기술발전에 따른 미디어환경 변화를 제도적으로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논리에 떠밀려 미디어 제도를 방치하거나 사적영역 미디어 중심으로 땜질할 게 아니라 공영방송과 공공성을 중심에 두고 규범과 재원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공영방송 3사 사옥

미디어정책 우선순위, 공공성은 늘 뒷전에

14일 방송통신위원회 후원으로 열린 한국방송학회 '시청각미디어 경쟁시대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 재정립 방안' 세미나에서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과거 정부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미디어 정책 기조를 비판했다. 유료방송이나 통신 시장을 고려한 미디어 정책이 추진됐을 뿐 정작 미디어의 공적 영역에 대한 정책을 도외시해 왔다는 지적이다.

김 소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보면 IPTV 출범, 공영방송 민영화 논란, 종편 탄생, 유료방송정책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IPTV법-방송법 통합 논의 등 이용자 복지나 미디어의 공적기능을 우선시하는 공영방송보다 유료방송이나 통신에 집중한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현 정부 들어 방송의 공적영역에 대한 정책 기대가 컸다. 하지만 현 정부 미디어정책은 한 마디로 '무정책'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라며 "지난해 '디지털미디어생태계발전방안'이 발표됐지만 OTT에 포커스를 맞춰 역시나 공적영역에 대한 정책은 후순위였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미디어 공적영역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커뮤니케이션기본권 보장 수단 ▲여전히 큰 사화적 영향력 ▲이용자의 참여와 요구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방송 ▲정치·경제적 독립성 등을 나열하며 "공공서비스로서 공영방송의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공적 생태계 개편, 공·민영 분리부터

김동준 소장은 미디어의 공적 생태계 조성을 위해 공·민영 영역을 구분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방송법은 모든 방송사업자를 동일 선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개별 매체에 따라 다른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민영 구분이 모호한 상태로 사적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공적 영역 사업자를 분명히 규정하고 공적 기능 수행을 우선하게 해야한다는 제안이다. 반면 사적 영역의 방송사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산업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공익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 자율성을 보장한다.

현재 정부와 학계 등에서는 공영방송을 공공서비스미디어(PSM, public service media)로 전환하고 '공적 책무 협약'을 통해 공영미디어 스스로가 정한 공적책무를 사후 평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KBS 설치법' 등 공영방송에 대한 별도 입법 필요성도 제기된다. (관련기사▶통합미디어법에서 공영방송 별도 입법 솔솔)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미디어 생태계 공적 영역 담보를 위해 공적·사적영역부터 명확하게 구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미디어의 공적 영역을 구분했을 때 재원 논의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시장 경쟁 원리에서 벗어나 공적 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공영방송은 정치·경제적 독립이 가장 중요하다. 편성·제작의 독립과 광고주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공적재원 부담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미디어 공공성에 대한 정의를 이용자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공영방송이라고 하면 '공공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공공성이 뭔지 모르겠다"며 "지역성·보편성·다원성 등 공공성을 구성하는 하위개념들이 역으로 공공성을 정의하는 모습도 보인다. 추상적 개념보다는 이용자들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가치를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민영·유료방송과 구분할 수 있는 차별성 프로그램 포맷 부문을 포함한 다양성 공영방송이 제공하는 정보의 신뢰성 등을 미디어공공성 개념으로 두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영방송 콘텐츠, 공공성 어떻게 담아낼까

세미나에 참여한 패널들은 공영방송의 공적책무와 존재가치를 결국 콘텐츠를 통해 구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믿음 동덕여대 교수는 "공영방송 존립 당위성은 이제 공영방송이 공익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며 "이제는 공영방송이 실천해야 할 마땅한 것이 무엇인지, 실제 실천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정립해 전달할 때"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히 안정적 재원, TV수신료 인상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시민단체가 동의해도 국민동의가 없다면 어렵다고 본다"며 "젊은층은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것) 마인드가 강해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먼저 따져볼 것이다. 경쟁이 심화되는 미디어생태계에서 공영방송은 다른 방송과 달리 경쟁체제에 속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라는 점을 나서서 이야기하고 분명히 할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최믿음 동덕여대 교수, 허찬행 청운대 교수, 이지은 법무법인 세종 선임연구원 (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최 교수는 공영방송의 공적책무를 '연령', '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독일 등 유럽국가와 달리 한국은 인종·종교·언어의 차이보다 연령, 세대별 간극이 더 심각하기 때문에 그 간극을 줄이는 일이 공영방송의 공적책무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최 교수는 "영유아·아동·청소년·노년 등 연령층을 구분하고, 각 연령층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을 둔다면 그것이 바로 공익의 세부가치 중 다양성 실현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공영방송이 하고 있는 유아·아동·청소년 프로그램 중 대표프로그램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게 있는 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편성 충족을 위해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향유하고 싶은 프로그램 편성도 중요하다며 코미디, 동물, 다큐, 시민참여 프로그램 등 '가족형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허찬행 청운대 교수는 "안정적 공적재원을 위한 수신료 현실화 추진을 얘기하지만 사회적으로 보지도 않는 공영방송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며 "KBS는 자구책을 노력하지만 잘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빅쇼, 대하사극 등이 공영방송의 역할 중 하나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지역·연령대·사회집단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편성할 것인지 실천적 전략이 계획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지은 법무법인 세종 선임연구원은 "파편화된 미디어콘텐츠 소비가 일반화될 경우 부작용을 축소시키기 위해 전국적 이슈에 대한 보편적 정보제공이나 지역문화 정체성 보호, 시청자 참여, 연령대별 콘텐츠 등이 요구될 수 있다"며 "공영방송 시장 영향력 축소는 분명한 정체성 확립의 적기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시청률 경쟁이나 콘텐츠 인기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최소한 공영방송은 이것만큼은 잘했으면 좋겠다'는 국민적 기대범위를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며 "공영방송에 대한 평가가 글로벌 OTT 시장영향력 확대 상황에 휩쓸려 흔들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공영방송 존재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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