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주식투자의 세계를 생각해보자. 보통 누가 어느 종목에 투자해서 전재산을 날렸다고 하면 그 비슷한 방향으론 눈길을 돌리지 않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정치의 세계에선 이런 게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전두환 씨 관련 발언은 미스터리다. 대구경북 지역 민심을 고려한, 즉 표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과연 이게 득표에 도움이 될까? 이런 목적이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발언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전두환 씨의 공과를 새삼 평가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재명 후보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가 흑백논리, 진영논리”라며 “있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 사회가 불합리함에 빠져들게 된다”고 했고 “모든 게 100% 다 잘못됐다고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3저호황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름 능력 있는 관료를 선별해 맡긴 덕분에 어쨌든 경제 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런 반응은 두 가지 면에서 적절치 않다.

첫째는 사실관계의 영역이다. 3저호황이라는 게 무엇인가? 결국 대외여건이다. 당시 한국을 3저호황의 수혜자로 만든 사건은 오일쇼크와 플라자 합의다. 두 사건 모두에서 한국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 ‘나름 능력 있는 관료를 선별해 맡겼다’는 건 김재익 전 경제수석 등을 이르는 말일 텐데, 이른바 3저호황의 시기에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나름 능력있는 관료를 선별”했다는 게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한 평가인지 의문이다.

시기의 문제를 떠나 김재익 당시 수석과 같은 예로 발언을 이해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김재익 수석이 중화학공업화를 통한 발전국가라는 패러다임을 뒤집고 ‘안정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재권력의 전폭적 신임이 든든한 배경이 된 덕분이다. 오늘날에 와서 단순한 기준으로 평가할 부분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가 12일 오전 경북 예천군 예천읍 상설시장을 방문,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는 정치적 판단의 영역이다. ‘전두환 재평가’라는 수렁에는 이미 윤석열 후보가 먼저 빠졌다. 이재명 후보가 굳이 이 함정에 뒤늦게 뛰어드는 건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라는 피장파장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선거라는 건 상대 후보보다 내가 낫다는 걸 증명하는 게 핵심인데, ‘사실 나도 똑같다’란 걸 굳이 보여줘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여당 사람들은 윤석열 후보의 발언과는 다른 맥락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인데, 발언의 형식이나 힘을 준 대목, 공과의 분량 등을 기계적으로 비교하면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내용적인 논리구조를 보자면 사실상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재명 후보는 최근 말바꾸기, 무소신 논란에 시달려왔다. 표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소신을 바꿀 수 있는 후보라는 거다. 이런 공격 중에는 ‘마타도어’에 해당하는 것도 물론 있었다.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과 국토보유세 도입에 대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득을 우선시하겠다는 주장에 대한 보수야당의 반응이 대표적이다. 자기들끼리만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다수 의석으로 밀어 붙이고 거기에 ‘개혁’이란 이름표를 붙이는 일은 이제 지양하겠다는 취지의 행보를 단순히 ‘말바꾸기’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두환 발언’은 역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정치인이라는 시각을 강화하는 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이 이재명 후보에게 기대한 변화와 유연성은 문재인 정권보다 더 나은 정치를 하라는 거였다. 그런데 전두환 씨의 통치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선 후보가 ‘경제는 살렸다’는 식의 평가를 할 수 있게 된 걸 ‘더 나은 정치’라고 볼 수 있을까? 그건 역사적 퇴행이 아닌가?

가장 좋지 않은 효과는 ‘내로남불’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거다. 윤석열 후보가 유사한 발언을 했을 때 이재명 후보는 “살인강도도 살인 강도를 했다는 사실만 빼면 좋은 사람일 수 있다”며 비꼬았다. 그런데 이번에 바로 그러한 인식을 자신도 갖고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동안 보수정치는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내로남불’이란 기준으로 비난해왔다. 이 점에서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문재인 정권과의 차별점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어떤 공통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소비될 여지가 크다는 거다.

이미 ‘말바꾸기’ 프레임이 형성된 상황에서 후퇴가 망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수렁에 들어왔다면 적어도 그 대응에 있어서는 윤석열 후보보다 낫다는 걸 보여주는 게 최선이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잘못을 한 것에 대해서는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다. ‘개 사과’ 논란까지 더해 며칠동안 고집을 꺾지 않은 윤석열 후보와는 달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유한기 전 본부장의 사망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대장동 관련 의혹 특검 도입에 대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선거의 손익을 계산하며 생색만 내는 대응보다는 적극적인 당의 대처를 주문하는 것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는 특검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만 인식이 같고 거의 모든 쟁점에 대해 정반대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어찌됐건 유한기 전 본부장 사망으로 ‘윗선’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동력을 잃게 됐다는 걸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특검을 수용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남의 다리를 긁는 것이다. 여당 지도부에 적극적으로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것을 주문하는 게 필요하다. 이걸 근거로 할 때에야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을 향한 압박에 힘이 실린다.

특검 논의를 위한 구체적 재료는 이미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도 언제까지나 변죽만 울릴 수는 없다. 검찰 수사가 더 망가지기 전에 예측불가능성을 줄이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100조니 50조니 하는 소상공인 지원도 마찬가지다. 중도 공략은 전두환 재평가가 아니라 이런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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