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수애, 김미숙, 김강우에 최근 화제작 <오징어 게임>의 김주령, <마이 네임>의 이학주까지 출연진 면면이 화려하다. 제목도 <공작도시>라 '음모 스릴러'의 기운이 농후하다. 배경이 성진그룹과 아트스페이스 진답게 국립 진주 박물관 등 내로라하는 명소가 등장해 그 위용을 뽐낸다. 아니나 다를까. 성진그룹의 이른바 '측천무후'라는 서한숙(김미숙 분)과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탐하는 그녀의 둘째 며느리 윤재희(수애 분)의 기싸움이 장난 아니다.

사실 이제 <공작도시>와 같은 드라마는 새삼스럽지 않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평생 가야 만날 일 없는, 하지만 그들의 이합집산에 따라 우리 사회 ‘이너서클’이 형성되고 그들의 손아귀에 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것 같은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틈에 한 장르가 되어버렸다.

그런 장르에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 쟁투'의 이야기 또한 손꼽을 필요도 없이 흔한 드라마가 되었다. 그녀들이 재벌가 혹은 아이들의 교육, 그리고 그들만이 사는 고급 주택가를 배경으로 음모와 질투의 화신이 되어 전쟁을 벌이는 것이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JTBC 새 수목드라마 <공작도시>

결국 새로 등장한 드라마는 <공작도시> 1회 엔딩에서 보여지듯이 정준혁과 윤재희의 베드신과 같은 선정적인 장면과, 2회 서막을 시작한 검찰총장 후보자 조강현의 본처 권민선의 사망 사건과 같은 자극적인 설정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쓸모가 다하면 용도폐기해야지'라는 시어머니 서한숙에게 며느리 윤재희가 “어머니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싶어요”라고 거침없이 말하며 이 드라마의 '차별적 지점'을 선포한다. 거기에 윤재희와 내통했다는 이유만으로 서한숙의 올케는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검찰총장 후보자의 내연녀는 윤재희에 의해 화장실 세면대 물에 얼굴이 처박힌다. 그렇게 드라마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욕망을 설득하고자 한다.

그런데 재벌가와 정치적 사건을 그럴듯하게 엮어낸 '욕망의 에스컬레이션' 서사에 개연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이런 장르의 드라마에 대한 논점이 될 수 있을까 싶다.

서한숙과 윤재희, 왜 그러고 사나?

JTBC 새 수목드라마 <공작도시>

오히려 서한숙과 윤재희의 브레이크 없는 욕망을 보면서 왜 저러고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한숙은 말끝마다 윤재희를 무시한다.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 주제에 어디 감히 성진그룹을 넘보냐는 식이다. 그나마 윤재희와 결혼한 정준혁이 서한숙의 남편이 함바집에서 낳아온 혼외자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대놓고 말한다. 그러면서 절대로 니가 성진가의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찍어 누른다.

그런데 윤재희가 정말 보잘것없는 집안의 딸일까? 2회, 윤재희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면회한다. 여자 구두만 보면 집착하는 아버지. 그런데 윤재희가 자신의 구두를 보고 비싸서 안 된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여자 구두'에 맺힌 속내를 털어놓는다. 중학교 때 비싼 메이커 운동화 한 켤레 사달라는 걸 못 사줘서 마음에 걸렸다고. 그래서 대학 졸업 때 구두 한 켤레 사주고 싶었다고.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딸에게 구두 한 켤레도 못 사줄 사람일까? 아니다. 아버지는 강직한 판사였다. 평생 판사로서 '협잡'한 적이 없는 올곧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에게 윤재희는 마구 퍼붓는다. 당신이 그러고 사느라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콩나물값 깎으며 사셨다고.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 줄 아냐고.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윤재희의 결혼 선물로 서한숙의 큰아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다. 윤재희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라도 하는 것처럼 '욕망'을 쫓는다. 사귀던 박정호(이충주 분)대신 성진가 사람이란 이유로 사랑하지도 않는 정준혁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제 그를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온갖 궂은 뒷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을 무시했던 성진가 서한숙의 것을 욕망한다.

능력자 윤재희와 서한숙

JTBC 새 수목드라마 <공작도시>

그런데 윤재희는 능력자다. 심지어 그녀의 능력은 전천후다. 아트스페이스 진 실장인 그녀는 도록에 문제가 생기자 직접 인쇄소를 찾아가 도록을 손본다. 인쇄소 사장님과 호탕하게 막걸리 한 잔 하며 속내를 이야기할 정도로 수완이 좋다.

그녀와 손잡았던 권민선이 죽음으로써, 권민선의 남편 조강현을 검찰총장으로 밀고 그 대가로 자신의 남편을 민정수석에 앉히려던 '딜'이 무산된다. 그렇게 서한숙에 의해 '용도폐기'될 처지에 이르자 유포될 위기의 성 동영상을 역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자신을 내쫓으려는 서한숙을 찾아가 외려 겁박한다. 가진 것 없는 자신은 겁날 것이 없다고. 대신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세상에 알릴 것이라고.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죠, 가난이 사랑을 좀 먹는 겁니다.”라는 윤재희. 하지만 그녀는 사랑을 좀먹힐 만큼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를 사랑하던 이는 조강현의 오른팔 검사이다. 게다가 그녀 정도의 능력이라면 굳이 성진가라는 울타리가 없어도 충분히 우리 사회에서 성공할 만해 보인다.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며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수모를 참아내는 성진가의 삶. 그게 윤재희의 욕망이라기엔 ‘저 정도의 능력으로 왜 저러고 사나’ 싶다.

JTBC 새 수목드라마 <공작도시>

그건 서한숙도 다르지 않다. 미혼모를 만들 수 없어 재벌가의 운전기사와 결혼시켰다는 설정 자체가, 그토록 순혈성 운운하는 재벌가의 모습이라기엔 애초 웃픈 상황이다. 거기에 서한숙은 미혼모였던 자신의 자식에, 결혼한 남편이 데리고 온 자식, 그리고 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등 세 명의 자식을 거느린 처지이다. 그런 콩가루 같은 상황에서도 재벌가라는 자신의 배경에 기대어 서한숙은 모든 걸 그 잣대로 판단한다.

‘측천무후’라는 별명답게 그녀의 서재에 모여든 언론과 법조계의 중추들. 그들을 제치고 서한숙의 말 한마디로 공수처장과 검찰총장이 내정된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가장 아끼는 큰아들의 법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 윤재희 앞에서 전전긍긍한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서한숙과 그녀에 도전하는 윤재희라는 갈등 구도를 만들기 위한 캐릭터 설정이라지만 어쩐지 '코믹'스럽기까지 하다.

문제는 전면에 나서 '쟁투'를 벌이는 이 여성들의 욕망이 남성들로 귀결된단 점이다. 대한민국을 그녀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하는 서한숙이 집착하다시피 하는 그녀의 큰아들 정준일, 윤재희가 만들고 싶은 정준혁 대통령. 그녀들의 그런 이야기가 왕을 둘러싼 조선왕실 비사와 다른 점이 있을까? 충분히 자신으로 오롯이 살아갈 수 있는 여성들이 왜곡된 욕망 때문에 남성권력 계승의, 본의 아닌 '하수인'이 되는 이야기. 그녀들의 삶은 주체적일까? 그래서 서한숙과 윤재희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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