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의 내수진작 발언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

8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내수가 너무 위축되는 것 같다”며 “내수가 위축되면 서민이 더 어려워지는 만큼 관련 부서는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내수 진작’을 위한 ‘경기부양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물가를 잡겠다며 ‘생활필수품 50개 품목’의 가격 관리를 지시하는가 하면, 지난 3월 23일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물가 안정이 7%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보다 더 시급해진 상황”이라며 “고유가와 금융시장 불안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서민생활이 더 힘들어질까 염려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물가 안정’을 강조한 뒤 불과 십여일만에 ‘내수 진작’을 꺼낸데 대해 이 대통령 스스로도 ‘부담’이 됐는지 “지난 국무회의에서는 물가 안정을 얘기했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이 대통령의 ‘내수 진작’ 발언이 나오자마자 채권 금리가 급락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10일 개최된 금융통화위원회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전에 청와대와 정부가 치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한 뒤 대통령에게 발언하시라고 건의한 것”이라는 말도 했다.

10일 금통위는 ‘금리 동결’을 결정했지만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몇 달 전에 예상한 것보다 상당 폭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해 향후 ‘금리 인하’의 여지를 남겼다. 그 동안 ‘물가안정’을 기조로 삼아왔던 한국은행 총재가 대통령의 ‘공개적 압박’에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물가는 폭등하는데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대통령까지 ‘경기부양’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닌가 국민들은 불안하다. 대통령의 발언이나 정부의 개입으로 경기가 반짝 좋아질지는 모르나 우리 경제가 안정성을 잃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위험한 경제행보’를 꼼꼼히 따지고 지적하는 언론은 찾기 어렵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이를 비판한 신문은 경향신문 정도다. 경향신문은 10일 사설 <우려되는 대통령의 ‘경기 부양’ 지시>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상 경기부양을 내각에 지시한 셈”이라며 “불과 2주 전 대통령이 물가 안정을 강조한 것은 총선 표심을 의식한 립서비스였느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경기부양을 사실상 지시함에 따라 우리 경제의 리스크는 한층 커졌다”며 “세계적인 경기둔화 흐름에 거슬러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커진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했다. “잠시 성장률이 높아지고 일자리가 늘어 경제가 호전된듯 보일 수는 있겠지만 경제의 안정기반은 허물어지고 성장잠재력에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경향신문은 앞서 9일 기사 <한은 ‘금리 인하’ 깊은 고민>을 통해 “기준금리 인하를 놓고 한은과 기획재정부의 ‘보이지 않는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경기부양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매파’로 불리는 이 총재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이 대통령 발언의 파장을 분석하기도 했다.

경향신문 외에는 대부분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거나 무비판적으로 다뤘다. 조선일보는 9일 <“내수 너무 위축” 이 대통령 경기부양책 지시>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본격적인 경기부양책을 지시한 것으로 풀이된다”면서도 보름 만에 입장이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물가가 뛰는데도 경기부양책을 썼을 경우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기획재정부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며 정부방침을 충실히 전달하는데 그쳤다.

중앙일보는 10일 <깊어진 한은총재 고민>에서 “통화정책 방향을 정하는 이 총재가 대통령의 경기 걱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며 곤란한 처지에 놓인 이성태 한은 총재의 입장을 다뤘다. 하지만 중앙은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시중에 돈이 넉넉하게 돌아다닌다는 것은 이론상으론 금리를 올리라는 신호”지만 “그러나 금리는 이것만으로 정하는 게 아니다”라며 물가 상승 상황에서도 ‘금리 인하’가 가능함을 우회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한은 총재의 고민’을 다루면서도 독립된 중앙은행장을 고민하게 만든 정부의 ‘압박’에 대해서는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데 치중했다. 동아일보는 9일 <투자-소비 둔화 “성장엔진 꺼질라” 우려>에서 이 대통령의 ‘내수 너무 위축’ 발언이 “대통령 경기 활성화 의지 표현”이라며 “재정부도 ‘규제완화 속도 낼 것’”, “높아지는 금리 인하 기대감” 등을 중간제목으로 뽑아 대통령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포장했다.

동아일보는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이틀 앞두고 나온 발언”이라면서도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기대감’에 방점을 찍었다.

또 대통령의 발언이 물가안정을 얘기했던 것과 “다소 배치되는 것”이라면서도 “소비심리마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자 대통령이 직접 경기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청와대 고위 당국자의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정부의 행태를 지적하지도 않았다.

한편 한겨레는 그 동안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성장론’, ‘환율개입’에 목을 매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판해왔으나, 이 대통령의 ‘내수 진작’ 발언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았다.

총선 이후 정부가 경기부양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금리 인하가 물가 폭등에 기름을 붓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완화까지 추진돼 부동산 가격까지 치솟게 만든다면 국가경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서민경제가 받을 치명상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그럼에도 언론들이 경고등을 켜주지 않는 것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지난 IMF 사태에 대해 언론 또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 대부분의 언론들이 위기를 감지하고 경고하기는커녕 우리 경제가 별 문제없는 것처럼 보도했기 때문이다. 언론들이 IMF 사태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지금 우리의 경제 현실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감시해야 할 것이다.

2008년 4월 1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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