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정의철 칼럼] 선거를 앞두고 거대 정당 후보들을 둘러싼 스캔들과 가십 등 논란이 연일 언론 지면과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공적 이슈와 사회변화와는 무관한 가족사와 개인사의 무차별적 폭로와 권력을 둘러싼 이전투구 등 뉴스 같지도 않은 구태들을 언론에서 접할 때마다 이것이 시민의 ‘알 권리’와 ‘공론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감염병과 관련해서도 확진자 숫자 등 통계 중심 발표와 선정성과 정파성에 입각한 보도로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기보다 오히려 불안과 불신을 조장하는 모습 앞에서는 분노까지 느낀다.

언론이 갈등과 분열, 고통을 확대 재생산하며, 기존에 존재해 온 진영‧젠더‧계급‧지역 간 대립의 골을 더욱더 깊게 만들고 있다. ‘권력감시’와 ‘문제 제기’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있는 클릭 수·시청률 경쟁과 ‘각사도생(各社圖生)’에 집착하는 취재와 보도 관행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며, 저널리즘이 지향해야 할 공론장과 민주주의 기여, 사회적 책임과 윤리, 전문성에 대한 기대의 실종을 재촉하고 있다. 언론은 지역대학의 위기에 대해 애정 없는 비관적 뉴스를 쏟아내고 있지만,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도 심상치 않고, 그 추락에 날개가 없는 형국임을 먼저 걱정해야 한다.

오직 언론만이 다가오는 위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에 안주해 제삼자적 관조 속에 경쟁과 갈등 놀이에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움이 앞선다. 저널리즘의 영향력에 견주어 언론의 책임과 윤리, 사회정의를 위한 역할에 대한 자체 교육은 미비한 데다 자신들이 언론 현장을 가장 잘 안다고 여기며, 교육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문제, 객관성 신화의 영향으로 중대한 사회문제를 남의 일로 간주하면서 진단·비판·감시에 치중하고, 공중의 삶의 개선에는 무관심했던 관행에 대한 성찰도 시급하다.

경쟁 만능의 언론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무례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언론’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개혁을 위한 시민의 요구와 그 파고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감염병 위기는 소수의 전문가나 엘리트를 넘어, 시민과 공동체의 참여와 목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시대에 구태의연한 계몽주의 행태나 언론이 링 위에 직접 올라 참전하거나 심판관 역할을 하는 관행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언론을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언론개혁’을 위해 ‘해결지향 저널리즘’으로 불리는 대안을 제안한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해결지향’ 저널리즘의 방향을 모색하는 워크숍과 세미나에 참석하고, 관련해 언론인과 언론학자들과도 대화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상당히 신선한 관점을 배우는 경험을 했다. 근본적 질문은 의사가 진단만 하고 가버리는 상황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환자나 그 가족에게 처방과 치료가 없는 진단이 어떤 의미를 줄까? 우리 언론은 ‘객관성’과 ‘중립성’이라는 신화 속에 비판하고 문제 제기하는 보도 패턴에 익숙해 있다. 아동학대 사건 보도를 보면,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는 천인공노할 범죄 수법과 피의자의 비정상적 사생활을 집중 조명하며, 언론이 심판관이 된 듯 단죄하다가 송치 후 보도는 급격히 감소한다. 아동학대 문제의 공론화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속보·특종 경쟁과 선정적 보도는 범죄예방은 물론, 수사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대 레거시 미디어부터 중소규모 언론사까지 거악 감시를 기자의 본분이자 책임으로 여기곤 한다. ‘거악 감시와 비판’은 소중한 저널리즘의 사명이지만, 그 사명의 전부는 아니다. 취재처 중심으로 권력기관이나 엘리트 중심으로 취재하는 관행에서 탈피해 주민의 삶의 개선에 초점을 두는 ‘생활 지향’, ‘민중 지향’ 저널리즘으로의 변화가 시급하다.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겪는 문제들을 파헤치고, 대안들을 제시하는 실천이 ‘해결지향’ 또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감염병 보도에서도 언론이 신뢰를 부여하는 당국의 확진자 발표에만 집중해 유사한 보도를 양산하는 ‘발표 저널리즘’에서 탈피해, 피해 당사자들인 자가격리자나 확진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밀집·밀폐·밀접 노동과 일상에 내몰린 취약 계층의 노동·주거환경은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에 대해 현장 밀착형 취재를 통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자가격리자, 확진자는 물론, 거리 두기가 어려운 노동·주거·생계 조건에 있는 물류센터나 콜센터, 대형마트 노동자들과 소상공인, 장애인과 이주민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방역정책에서 개선이 필요한 점들을 그들의 목소리로 공론화해야 한다. 백신 접종 초기 한국의 낮은 백신 확보율·접종률을 맹비난하며 이대로 가면 몇 년 뒤에나 ‘선진국’ 접종 수준을 따라간다고 비관적 전망을 남발하던 언론들은 지금 반성하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생명과 건강 앞에 누가 속보·특종 경쟁에 연연해 설익은 제삼자적 “맹비난 저널리즘”, “비관 저널리즘”을 실천하라고 했던가? 도대체 어떤 시민이 그런 가볍기 그지없는 보도를 원했길래 ‘알 권리’를 내세우며 변화하지 않는가? “'벚꽃엔딩' 현실화?”, "몇년 뒤 몇곳 중 몇곳 폐교” 등 자극적 제목으로 도배된 지역대학의 위기진단 보도에서는 함께 문제를 풀어 가며, 해결책을 찾겠다는 ‘동반자’적 자세는 찾기 힘들다. 얼마나 취재하고 경험했는지 모르겠지만, 선정적이고 비관적 제목의 범람 속에 확실한 것은 지역대학이 당장 문을 닫을 것 같은 위기감의 확대 재생산이다. 또한, 지역대학의 평판을 훼손하고, (예비) 수험생들과 그 가족들이 지역대학을 더욱 외면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심판관이 된 듯 맹렬히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선수’이면서 ‘동반자’ 시각으로 문제를 분석해 해결 가능한 대안을 도출하는 데는 ‘초보’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신들이 취재하고 있는 심각한 공적 주제에 대한 애정과 함께 치열한 분석과 대안 제시보다는 단순한 의제설정과 비판, 위기 부각이 중심이라는 점은 아쉬움을 넘어 절망감을 키우고 있다.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가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전문성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성찰해야 한다.

모든 언론이 ‘거악 감시’와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 발상으로부터의 전환도 필요하다. 언론과 검경의 역할, 취재·보도와 수사·재판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변화된 시대에 언론은 주민들이 원하는 의제를 신청받아 취재하고, 주민과 공동체에 뉴스를 통해 보고하는 ‘의제추적 저널리즘’, 이 과정에서 문제 제기를 넘어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해결지향’ 또는 ‘솔루션’ 저널리즘으로의 변화 방안을 숙고해야 한다. 언론학자도 논문심사 하듯 팔짱 끼고 언론을 비판만 해서는 안 되고, 애정과 동지애를 바탕으로 언론을 동반자로 간주하면서, 언론개혁을 위한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역시 언론도 취재 대상인 건강과 생명, 교육과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들을 수사기관처럼 파헤쳐 문제를 드러내고 책임을 추궁하는 심판관 역할이 아니라, 공동체의 공론장으로서 문제해결을 최우선에 두면서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권력기관이나 엘리트 중심의 익숙한 취재 관행에서 탈피해 민중들의 삶으로 뛰어들어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의제를 발굴하고, 문제점을 파악하며, 이들의 삶의 개선을 위한 대안들을 제시하기 바란다.

최근 연구 과정에서 만난 모 신문 기자가 제시한 ‘의제 신청 저널리즘’의 역할은 신선하고, 소중하다. ‘의제설정’의 전통적 역할에 머물러서는 도도한 언론개혁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주민으로부터 의제를 신청받고, 추적 취재해 주민에게 보고하는 등 권력과 엘리트가 아닌 민중의 삶에 밀착된 취재, 문제 제기와 비판을 넘어 해결책 제시를 통한 민중의 삶의 개선이라는 목적 실천을 위해 부단히 변화하는 언론이 필요하다.

대선 후보나 유력 정치인을 따라다니며 합종연횡과 이전투구를 연일 중계하는 그 열정과 비용이면 해결지향 저널리즘을 못 할 이유가 없다. 다른 위기도 걱정해야겠지만, 언론은 먼저 스스로가 직면한 신뢰의 추락이라는 위기에 응답해야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결지향’, ‘민중지향’ 저널리즘으로의 일대 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을 것을 언론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시민으로서 절실히 당부하고 싶다.

* 정의철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33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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