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쇼트트랙 판도는 예전에 비해 제법 평준화가 이뤄졌습니다. 지난 주말 끝난 2011-12 쇼트트랙 월드컵 한 시즌만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한국, 중국, 캐나다의 강세는 이어졌지만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등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나라들이 비교적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이탈리아 여자 쇼트트랙 간판, 아리아나 폰타나라는 중국 선수들을 따돌리고 올 시즌 500m 랭킹 1위에 올라 두각을 나타냈고, 일본의 사카이 유이 역시 여자 1000m 랭킹 1위에 올라 주목받았습니다. 이렇게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성장 덕에 강호와 다크호스의 격차가 많이 좁혀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꾸준한 강세는 눈에 띄었습니다. 이번 시즌에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30개 금메달 가운데 13개를 따내며 캐나다(12개)를 따돌리고 1위 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이정수, 곽윤기, 이호석 등 이른바 '밴쿠버 3인방 형'들보다 앞선 실력을 자랑하며 2년 연속 세계 쇼트트랙 강자로 떠오른 신예 노진규(한국체대)가 있었습니다.

▲ 노진규 선수ⓒ연합뉴스

화려했던 2년, 거침없는 질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쇼트트랙을 안 본 사람이라면 이 선수가 누구인지 의아할지 모릅니다. 실제로 노진규는 2010-11 시즌부터 성인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2년차 쇼트트랙 대표 선수'입니다. 하지만 2년 동안 노진규가 쌓은 경력은 화려합니다. 2010년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노진규는 지난해 열린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1,500m와 5,000m 계주에서 정상에 올라 2관왕에 등극하며 성인 무대에서도 '통하는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3개 부문 우승을 차지하며 종합 우승에 성공, 성인 대표 첫해 최고의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이후에도 노진규의 질주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2011-12 월드컵에서 노진규는 6개 월드컵 대회 모두 1,500m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6개 대회 모두 우승 경력을 쌓은 남자 쇼트트랙 선수는 노진규 밖에 없었습니다. 한 종목에서 워낙 독보적인 실력을 보여주니 다른 선수들은 밑에서 순위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중장거리에서의 강렬한 실력 덕에 노진규는 대표 2년차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성적을 냈고, 또 한 번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형들 사이에서 유독 돋보였던 '차세대 에이스'

특히 만만치 않은 실력을 자랑하는 이정수, 곽윤기, 이호석 등 선배 선수들 사이에서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이제 막 대학 2학년생에 불과한 어린 선수지만 폭발적인 스피드와 나이답지 않은 과감한 경기 운영은 노진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경험을 쌓을수록 이런 장점들이 더욱 돋보여지다보니 성적도 좋고, 선배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노진규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차세대 에이스'로 부르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런 수식어에 대해 노진규는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쌓아야 할 것도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500m 단거리가 약한 것은 노진규에게 흠입니다. 그래서 전천후 모든 종목을 잘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하고, 그 때문에 '쇼트트랙의 전설' 안현수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력이 평준화되고 있는 시점에 중심축이 돼야 할 에이스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 노진규의 등장, 활약은 분명히 의미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대로 된 실력으로 성적을 내는 선수가 있다면 다른 선수들도 더욱 힘을 내고 더 좋은 성적을 내는데 함께 동력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진규의 성장,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보자

'짬짜미 파문' 등 각종 구설수로 바람 잘 날 없었던 한국 쇼트트랙. 가야 할 길은 물론 멉니다. 그러나 기존 선수가 아닌 신예 선수가 눈에 띄는 실력으로 경험 많은 세계적인 선수를 따돌리고 1인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한국 쇼트트랙에 분명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달 열리는 세계선수권을 비롯해 2년 뒤 소치 동계올림픽을 향해 나아갈 노진규의 질주, 성장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더욱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