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언론이 조현병 등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보도·콘텐츠로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조현병회복협회(심지회)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용역을 받아 실시한 언론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기간 KBS·MBC·JTBC가 각각 9건의 차별·혐오 콘텐츠를 방송한 것으로 집계됐다. SBS·YTN·중앙일보·연합뉴스·뉴시스가 각각 3건, 동아닷컴·조선일보·채널A·헬스조선·MBN은 각각 2건이었다. 이번 모니터링에 정신질환자 12명과 가족 1명이 참여했다. 모니터링 기간은 6월부터 10월까지다.

심지회가 공개한 부적절한 이미지 사용 사례 (사진=심지회)

박정근 심지회 부회장은 2일 열린 모니터링 결과발표 토론회에서 “수많은 언론사가 정신장애인들에 대해 얼마나 심하게 편파적이며 혐오를 조장하는 보도를 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며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게 편집, 재구성해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언론사일수록 보도 횟수가 높았다”면서 “이는 방송법의 목적에도 심각히 위배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모니터단이 꼽은 혐오 표현 제목은 ▲조현병 환자 ‘사이코패스’ 성향 막으려면(헬스조선)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조현병 환자(MBN) ▲조현병 범죄 일상화…경찰은 ‘병원 찾아 삼만리’(KBS) ▲강제입원 주저하다 결국 ‘조현병 범죄…’ 경찰은 왜 꺼리나(JTBC) ▲조현병 환자 흉기난동…3명 부상(YTN) 등이다. 이밖에 SBS 그것이 알고싶다, 중앙일보, 헬스조선, 이투데이 등은 기사·방송에서 정신질환 관련 내용을 다루면서 편견을 조장하는 이미지를 사용했다.

박정근 부회장은 “당연한 듯 섬뜩한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며 “조현병 환자는 살인자라는 낙인을 암묵적으로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부회장은 “언론사가 한 번이라도 조현병 당사자나 가족의 입장에서 사진과 영상을 내보냈는지 묻고 싶다”며 “특히 정신장애인을 비하하는 정치인을 보면 개탄스럽기 그지 없다”고 말했다.

언론 모니터링에 참여한 최 모 씨는 “조현병 환자는 무서운 범죄자라는 선입견을 주는 보도가 많았다”며 “또한 조현병 환자나 정신질환자의 개인정보는 누설 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서를 통해 기자에게 넘겨지고, 보도를 통해 퍼뜨려지고 있다. 이로 인한 당사자의 정신적 피해와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또다른 참여자 정 모 씨는 “언론은 조현병을 잠재적 범죄자로 우선 낙인찍는다”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언론이 증폭시켜 혐오와 차별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 가족인 이 모 씨는 “언제부터 언론의 역할이 범죄자의 정신질환 병력을 앞다퉈 보도하는 것이 됐냐”면서 “정신질환 병력을 밝히는 것 자체는 분명 ‘사실’을 적시하는 일이다. 그러나 언론은 사실 너머의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언론은 범죄 사건과 정신질환 병력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었는지, 있다면 연결고리가 두꺼워지는 동안 지역사회와 정신건강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라는 진실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16개 단체는 지난 10월 KBS 앞에서 'F20'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모니터단은 KBS가 제작·투자한 영화 ‘F20’에 대해 “조현병 환우를 사회 위험 구성원이자 살인자로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영화 'F20'은 조현병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로 F20은 조현병 질병분류코드다. 조현병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KBS는 10월 방영을 전면 보류했다.

박정근 부회장은 “KBS가 제작한 영화 F20은 조현병 당사자뿐 아니라 자식을 질병으로부터 회복시키고자 처절하리 만큼 노력하며 살고 있는 부모들 또한 잠재적 조현병 환자로, 잠재적 살인자로 혐오의 올가미를 씌웠다”며 “조현병에 대해, 그 가족에 대해 잘 모르면서 오만함의 극치를 부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밝혔다.

정제형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F20은 정신질환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이 바탕이 되어, 정신장애인에 대한 일상화된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라면서 “한국법상 형사처벌은 어렵지만, 외국의 경우 불특정 개인에 대한 중대한 혐오 표현을 중대한 범죄로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인격을 형해화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제재는 공론장을 위해 도입될 필요가 있다”며 “기사 및 방송에서 정신질환을 다룰 때 지켜야 할 원칙을 윤리적·도덕적 차원에서 의무화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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