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2년 전 학원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전 여자친구의 가족을 죽이고 여자친구를 감금 폭행을 하다 잡힌 스토킹 범죄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스토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선 가족에게 알려야 하고, 혼자 다니지 말아야 하고, 호신용품은 꼭 가지고 다녀야 하고, 무엇보다 경찰에 알려야 해, 라는 의견이 오고 갔다.

A가 말없이 조용히 듣고 있더니 툭, 한 마디 던졌다. 다 소용없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A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전혀 모르는 남자한테, 짐작도 되지 않는 남자한테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다고 했다. A는 그때 일이 되살아났는지, 인상을 쓰고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모르는 남자였어. 처음엔 전화로 시작하더라고. 여름이었어. 혼자 살 때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고.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싸웠어. 결국 그놈이 도망갔거든. 온몸에 멍이 다 들고 까지고 그랬지. 경찰에게 전화했더니 그놈을 잡았냐고 묻는 거야. 도망갔다고 말했더니 어쩔 수 없대. 현장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잡아야지만 된다는 거야.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문단속을 잘하래. 그럼 경찰은 무엇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원한다면 집 주위를 살펴봐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

A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A는 그 후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고 했다. A가 얼마나 끔찍한 시간을 보냈을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CG) [연합뉴스TV 제공]

2021년 10월 21일,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다. 1999년 처음 스토킹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매번 국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동안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되어 10만 원 이하의 벌금과 구류, 과료에 그치는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다. 스토킹을 단순히 지속적인 괴롭힘 정도로 인식, 사적인 일로 생각하여 공권력 개입을 꺼리고 되도록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기를 바라는 경향이 컸다. 연애 문제를 경찰서까지 가지고 오냐, 만나서 헤어질 수도 있고, 좀 따라다닐 수도 있지, 경찰서에 신고까지 하고 처벌하냐는 인식이 스토킹처벌법 시행까지 20년 넘는 세월이 걸리게 하였다. 스토킹은 상대의 의사와 관련 없이 따라다니며 지속해서 괴롭히고 위협을 가하는 행위로 남녀 간 사랑의 형태와 확연히 다르다.

법이 보호해주지 않는 동안 많은 스토킹 범죄가 뉴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스토킹하던 전 여자친구를 죽이고 아파트 창문 밖으로 던지는 끔찍한 범죄가 발생하고, 스토킹하던 전 여자친구의 아들을 공모자와 함께 잔인하게 죽이는 일 등이 발생했다. 스토킹은 단순한 괴롭힘에서 끝나지 않고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범죄로 발전하여 연일 시사토론의 쟁점이 되었다. 스토킹 피해자가 죽어야만 끝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수없이 반복되는 동안 단순한 남녀 사이의 사랑싸움으로 치부되어 보호받지 못했다.

스토킹의 문제는 괴롭힘에서 끝나지 않고 범죄로 발전한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초기에 막는 것이 중요하다. 스토킹을 초기에 막지 못하면 폭행, 납치, 살인 등 강력범죄로 발전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경찰청 [연합뉴스TV 제공]

이번 시행되는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스토킹범죄자는 3년 이하의 징역형과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흉기 등의 위험한 도구를 사용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최대 5년 이하 징역형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경찰은 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현장에 출동에 스토킹행위를 제지하고 향후 스토킹 방지를 위해 스토킹 행위 중단을 통보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 경고를 하게 된다.

법안은 마련되었는데 경찰의 현장 대응 능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경찰이 심각성을 인식하고 초기에 정확하고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피해를 막지 못하고 가해자가 가중된 법의 처벌만 받게 된다. 더는 스토킹범죄가 벌어지고 나서야 수습하는 순서가 되어서도 안 되고, 죽어야 끝나는 문제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스토킹에 대한 전문적 교육과 스토킹범죄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대응할 시스템이 필요한 때이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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