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젠더 이슈는 사라지고 젠더 갈등과 논란만 남은 한 해였다”

한겨레 젠더데스크 이정연 기자는 16일 서울YWCA 주최로 열린 '젠더균형 보도를 위한 온라인 집담회'에서 올 한 해를 이같이 정의했다. 올해 언론은 GS25 집게 손가락 홍보물, 안산 선수 사이버불링,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 등 젠더 이슈를 ‘갈등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서울YWCA가 1월 1일부터 7월 20일까지 젠더 이슈 보도 기사 1000개를 분석한 결과, 성차별적 기사는 88건인 데 반해 성평등적 기사는 29건에 그쳤다. 성차별적 기사 유형은 ▲자극적인 표현으로 대립구조 강조하며 적대감 유발(30건) ▲특정 성별의 입장 대변(21건)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주장을 취재 없이 작성(18건) ▲‘젠더갈등’을 부각하는 기사(14건) 등이다.

16일 서울YWCA 주최로 열린 <젠더 균형 보도를 위한 온라인 집담회, ‘젠더 갈등’으로 위장된 젠더 이슈 보도, 이대로 괜찮은가?>. 왼쪽부터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전현숙 서울YWCA 부위원장,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사진=서울YWCA 유튜브)

집담회 참가자들은 젠더 이슈를 ‘논란’으로 다루는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이정연 한겨레 기자는 “논란은 대등한 상대가 적절한 논리를 가지고 주장을 펼치는 행위인데 올해 발생한 사례들은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들이 부각되면서 프레임이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수 의견이 기사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주장 일부가 백래시, 성평등에 대한 저지와 결부된다고 본다“며 ”명확한 대안이 떠오르진 않지만 억지 주장이란 말이나 일부 주장으로 쓰거나, ‘화제’나 ‘논란’이 아니라 ‘온라인 학대’라는 단어를 써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갈등이 아닌데 갈등으로 명명하는 언론 보도가 많다”며 “지난 5월 GS25 포스터 집게손가락은 언론이 주도한 ‘페미니즘 백래시’ 중 하나였다. 언론이 사회에 나타나는 일부 현상을 부각해 갈등이나 대결처럼 몰아가는 것은 사실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도움이 되지 않는 보도”라고 말했다.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는 “올해 젠더 갈등이라 불린 것들은 대부분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는 젠더 갈등이 아닌 백래시에 가까우며, 제목에 ‘논란’으로 명명하는 건 따옴표 저널리즘처럼 언론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제목짓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안산 선수 관련 사이버 공격은 개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담은 ‘사이버 학대’로 이를 '페미니즘 논란'으로 적으면 여성과 남성이 균형있게 싸우는 것처럼 독자들이 잘못 이해할 수 있기에 정확하게 한쪽이 공격한다고 규정할 수 있는 말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YWCA가 1월 1일부터 7월 20일까지 네이버 포털 뉴스에 20개 키워드 검색으로 랜덤샘플링을 돌려 추출한 '젠더 이슈 보도 기사 1000개' 중 갈등에 초점을 맞춘 보도들 (자료제공=서울YWCA)

참가자들은 언론이 '젠더 갈등 프레임'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고 입을 모았다. 박정훈 기자는 “합리적인 의견 전달이 아닌 특정 커뮤니티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의견을 언론이 담아내니 서로의 화를 돋우는 형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산 선수에 대한 사이버불링은 그가 과거 인스타그램에 “00 안 본 지 오조오억년” 같은 말을 썼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일부 남초 사이트에서 남성 비하·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언론은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시사IN이 한국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조사 결과, 20대 남자의 70% 가량은 ‘오조오억’이 특정 성별에 대한 혐오 표현이 ‘아니’라거나 ‘모르겠다’고 답했다.

박 기자는 “왜 여성들이 온라인상에서 분노를 드러내게 됐는지 2015년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부터 조명하며 번역하고 통역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냥 특정 사이트에서 나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 적고 있다”며 “언론이 지난 몇 년간 갈등을 조장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는 언론 외에도 정부나 관계부처들이 침묵하고 일부 주장을 수용한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처장은 이에 공감하며 "GS25가 사과문을 올린 5월 3일과 담당자가 징계받은 31일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일부 주장에 회사가 사과하니 공식화돼버린 측면이 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주장이 모두 합리적이진 않고, 이를 그대로 옮겨주는 게 언론의 역할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독자들의 긍정적 피드백이 성평등 기사 수 증가시킨다

모든 언론이 기사 주목도를 쫓아 갈등을 조장하는 기사를 쓰는 건 아니다. 일부 언론사들은 독자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정연 기자는 “독자들이 기사를 읽고 문제적인 표현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준다. 한겨레가 젠더데스크를 만든 이유”라며 “결코 언론사 스스로 정신차린 게 아닌 독자들의 다양한 피드백의 영향으로 긴장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개별 기자들이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결국에는 어떤 기사가 많이 읽힐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저널리즘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정제된 선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성범죄 기사 등으로 빚어지는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성범죄 사건 등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예상되는 기사 ▲기사에 피해자가 부득이 등장해 해당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기사에 한해 개별 기사 댓글 창 닫기 기능을 활용하기로 했다.

박정훈 기자는 “오마이뉴스는 좋은 기사에 원고료 주기 버튼이 있다. 성평등 기사에 원고료가 늘어나면 사내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젠더 기사가 받을 때면 힘이 된다. 특히 좋은 피드백 댓글이 달리면 힘이 된다. 젠더 보도준칙을 잘 지킨 기사들을 보고 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