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첫방송을 내보낸 SBS 드라마 <사랑해>의 한 장면이다. 지하철 성추행범이라는 오해를 풀고 관계가 급진전된 철수(안재욱)와 영희(서지혜)는 1회에서 키스까지 한다. (이 드라마, 전개가 엄청 빠르다.)

그런데 문제는 키스에 이르는 '과정'이다.

어쩌다 영희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나온 철수는 "피부가 민감하다"며 옷을 입지 않는다. 그리고는 멀찌감치 어색하게 앉아있는 영희를 향해 "이리와서 앉아봐"라고 명령한다. (철수는 영희를 처음 만난 때부터 반말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말이다.) 영희가 "왜요?"라고 물으면 "따지지 말고 좀 와라"라고 다시 명령한다.

이때부터 철수의 성폭력은 시작된다. 겁에 질린 영희에게 급 밀착해 일방적으로 키스를 감행하는 것이다.

'성폭력'은 좀 심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희 입장에 서보면 이 표현이 과하지도 않다. 호감을 느낀 남자 앞에서 여자는, '남자가 민망해 할까봐'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도 표현하지 못하고 어색함을 떨치려 발랄한 척을 하다 당.한.다.

듣는 이의 귀를 불편하게 하는 대사 또 한가지. 영희가 철수에게 "좀 떨어져 앉으라"고 하자 철수는 "나도 그러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는 신체적 특성상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며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오래된 레퍼토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8일 방송된 2회분을 보면 이들은 키스에 이어 섹스도 했다. 이날 철수의 대사 중에 "무슨 생각이 있었겠어요? 남자는 그 때 아무 생각도 없어요"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남자의 몸은 '원래' 다 그런가.

온몸으로 마초를 표현하는 철수 뿐인가. 21살이라는 알 것 다 알 나이에 "아저씨, 아저씨"를 귀엽게 외치고 바쁜 출근 시간에 애인의 아침밥상을 차려주려 우왕좌왕하는 청순발랄 영희 캐릭터 역시 무개념이기는 마찬가지다. 성매매를 일삼는 형부 도민호(공형진)는 또 어떤가.(아무리 솔직함이 무기라지만 지상파 드라마에 성매매 장면이 버젓이 나오는 건 너무하지 않나.)

이런 진상 캐릭터들을 누가 만들었나 궁금해 찾아봤더니 이 드라마의 원작은 만화이며 이 만화의 작가는 허영만이라고 한다. 그의 성별이 단순히 남자라는 이유로 비난할 의도는 없으나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실망이 크다.

이런 드라마에 일부 연예매체 기자들은 '꽃비장면'이 화제라며 기사를 내고 있으니 어떤 관점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는지, 시청자의 수준을 어떻게 보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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