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 확실하게 당신들이 이겼다. <뉴스타파>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이렇듯 멋진 프로그램 만들어내기 위해 생고생한 당신들이 승리했다. 권력에 의해 직장에서 쫓겨난 저널리스트들의 감동적인 되치기 한판이며, 목 잘린 언론인이 가슴으로 던지는 통쾌한 펀치다. 이 정권 들어 방송 저널리즘의 치명적 몰락을 목도해 온, 그래서 그 부활을 분노로 열망해온 우리 모두에게 준 당신들의 아주 근사한 선물이었다. 감사하다. 고맙다. 이제 겨우 두 걸음을 시작했지만, 다음 주 다시 뵙겠다는 노종면 앵커의 차분하면서도 힘찬 인사말에서 오랫동안 계속될 참 언론의 먼 길을 희망하게 된다.

맞다. 당신들이 TV 저널리즘 부활의 희망이다. 해고라는 절망적 상황을 꿋꿋하게 버티어, 이제 다시 희망의 메신저로 다가온 저널리스트들. 노종면, 이근행 당신들의 얼굴에서 나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당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당신들이 풀어내는 진담에 감동으로 다가간다. 대체 얼마 만에 잡아보는 방송 마이크이고, 과연 얼마 만에 서보는 카메라 앞이었던가? 싸움이 벌어지고 아픔이 있는 현장에는 또 얼마나 오래간만에 다시 찾은 것인가? 감춰진 진실을 들춰내고, 잘못된 비리를 고발하며, 부패한 권력에 비수를 들이대는 당신들의 솜씨에 가슴이 벅차다.

그렇다. 당신들은 기존 저널리즘 패러다임에 대한 멋진 도발이다. 방송국에 기자로 들어가고 피디가 되어야만 뉴스를 만들 수 있다는 기성의 낡은 틀에 또 다시 반역한 최근 사례다. 당신들이 확인시켜 준 것은 역시 당신들이 대단하다는 것, 실력 있는 피디와 능력 갖춘 기자만이 집요한 취재와 치밀한 기사 구성의 솜씨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진실에의 갈망을 품고 권력 비판의 용기를 버리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디지털 시대에 훌륭한 저널리즘을 실천할 수 있다는, 바로 그런 가능성의 현실을 입증시켜 주었다. 새로운 저널리즘, 포스트저널리즘의 게임이 시작되었음을 재차 확인시켜 준 것이다.

옳다. 당신들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 반응을 용서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게 합당하다. <뉴스타파>에 쏟아지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는, 방송 기자들이 대체 지금까지 뭘 잘못했는지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자 앞으로 피디들이 어찌 해야 할지에 대한 직설적 표출이다. 말로만 잘못했다는 반성에, 앞으로 잘하겠으니 한번만 더 봐달라는 호소에 냉정했던 시민들이지 않던가? 공영방송에 또 뭘 기대할 것인가 냉소를 보인 시청자들이었다. 그런 대중의 닫힌 마음을 <뉴스타파>가 진심으로 파고든다. 회의의 벽을 뚫고 신뢰의 흐름을 이끌어냈다. 불신타파. 바로 여기에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당신들이 파타하기 시작한 것은 현 정권 들어 두텁게 구축된 저널리즘에 대한 불신의 벽이다. 당신들은 그 벽에 구멍을 내는 망치 역. 그래서 <뉴스 타파>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이 배출하는 거짓된 뉴스의 타파이자, 미디어 권력이 생산하는 왜곡된 뉴스의 타파 작업이요, 비겁한 거짓 기자·피디가 재생산하는 무의미한 뉴스의 타파 행위였다. 사람들은 <뉴스타파>를 만드는 소수자들의 말이 아닌 행동에, 제대로 된 저널리즘의 약속이 아닌 제대로 하는 저널리스트서의 실행에 열광했다. 목 잘린 저널리스트들의, 방송저널리즘 굴종의 현실을 타개하려는, 성실한 보상 노력에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 뉴스타파 제작진 ⓒ 블로거 persona
그래서 <뉴스타파>의 예리하게 벼린 망치질은 외부의 권력과 그 내부 파견자만을 향하지 않는다. 온갖 이유로 굴절되고 우스꽝스럽게 무뎌진, 저널리즘의 윤리와 가치를 스스로 멸살시켜 간 방송사 내 비양심적인 세력들에게 함께 날리는 고발장이다. MBC의 조인트 까인 사장이나 KBS와 YTN의 낙하산 부대만이 아닌, SBS 미디어홀딩스의 탐욕적인 지주만이 아닌, 기자나 피디 타이틀 단 제도 언론사의 안이한 삶에 길든 동료들에게 들이대는 섬뜩한 자기 타파의 선언문이다. 스스로의 나태를 타파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비겁을 계속할 것인가? 양단간 결단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뉴스타파> 때문에 마음 상할 자들은 결코 이미 붕괴된 권력이고 그 비루한 시중들만이 아닐 것이다. 현 정권 들어 권력에 위축되고 통제에 굴복한 방송 기자와 피디들이 크게 불편을 느껴야 한다. 선전에 굴종하고 권력의 시중을 들며, 그래서 침묵의 안일에 빠지고 거짓의 유혹에 방탕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텔레비전 뉴스 기자, 시사교양 피디 모두가 ‘타파’ 공감의 울림에 뼈아파 해야 한다. 그래서 <뉴스타파>에서 다시 배워, 지금까지의 무능과 무력증을 참된 저널리즘의 실천으로 타파해 나가야 한다. 그게 <뉴스타파>의 버려진 동료들과 함께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 것이다. 무소불위의 영원불변할 것 같던 정권은 이미 비극적으로 몰락하였다. 저널리스트라 자칭하지 않는, 평범한 보통시민들의 치열한 언론·표현 활동을 통해서다. 거짓의 공작과 은폐의 노력에 반하는, 방송의 침묵과 방송사 기자·피디들의 외설을 거스르는, 자율적으로 진실을 쫓고 자발적으로 교통에 나선 민주·정치 대중들이 현실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방송 기자나 피디들은, KBS와 MBC, YTN, SBS 할 것 없이, 우선 이들 앞에 오랫동안 무릎 꿇어야 한다. 지금 이 정도로 정치적 민주가 살아나고 진실의 언론이 가능한 것에 대해 고개박고 감사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는가? 권력과 치열하게 교전해 온 이 참된 저널리스트, 이 진정한 언론인들에게 방송사 내부의 당신들은 정말로 크게 빚지고 있는 게 아닌가? 저 별 것 없는 약하고 약한 대중이 비겁한 당신들을 대신해서 선한 언론인으로 나서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당신들이 용서해 달라고 어쩌고 하는 것은 참으로 면목 없는 짓. 반성한다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죄에 대해, 행동으로 되갚아야 한다. 반성의 노력이자 감사의 표시로써 사람들과 진정이 통한 <뉴스타파>로부터 진정을 대해 배우라. <뉴스타파>의 동무들과 함께 행동으로써 지난 죄과를 갚는, 이기적 보신주의와 안일한 조직주의 타파의 과제가 남았다.

<뉴스타파>가 바깥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서 신선한 감동으로 움직였다. 방송사 내부의 부활 운동이 서둘러 시작되어야 한다. 일방적 뉴스 타파, 저능한 시사교양 타파의 노력이 프로그램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전천후요격기’가 비참하게 꼴 박힌 상황에서, 조인트 까인 사내와 낙하산 사장의 똑같은 추락이 예견되는 상태에서, 불신의 뉴스 네트워크를 진실의 저널리즘 프로그램으로 타파하는 과제가 급하다. 그렇게 당장 자기를 타파하고 나서지 않는 한, 거짓(된 제도) 타파의 피할 수 없는 도끼질이 최후의 명줄을 겨냥할 것이니, 반성과 사죄의 여유 부릴 때가 절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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