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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이’- 모처럼 장인정신 향내, 이영애보다 반가운 ‘B급 스릴러’의 귀환[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11.01 21:23

[미디어스=이정희] 한때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여배우들. 시간은 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사랑을 나누던 여주인공은 이모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그 시간을 늦추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닐까. '치정 멜로' 장르에서 그녀들은 여전히 사랑과 복수의 단골 주인공이다. 

김희애는 <부부의 세계> 등에 전문직 여성으로 출연해 사랑을 주무른다. 90년대를 주름잡던 고현정은 도무지 나이를 알 수 없는 앳된 모습으로 또 다른 치정 멜로 <너를 닮은 사람>에 출연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과 함께 '산소 같은 여자'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 이영애가 오랜만에 JTBC 주말극 <구경이>로 돌아왔다.

떡진 머리의 게임 덕후

JTBC 새 주말드라마 <구경이>

그런데 언제나 정갈한 자태로 아름다움을 뽐내던 모습이 아니다. 도무지 언제 감았는지 모를 떡진 머리를 산발하고, 머리에 게임용 헤드폰을 쓰고, 걷기 힘들 정도로 앉아서 게임을 하는 '폐인'의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살 이유가 없다'며 쓰레기차로 몸을 던지고, 언제 폐인이었나 싶게 앉아서 천 리를 보듯 미해결 사건의 열쇠를 척척 풀어낸다. 알록달록 아줌마 바지, 늘어진 흰 티, 거기에 대충 걸친 바바리코트 차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풀어내는 추리의 대사는 아직 어색하지만, 치정멜로 장르가 아닌 장르에서 만나는, 예쁘거나 젊은 것이 관건이 아닌 캐릭터로 돌아온 여배우의 모습이 반갑다. 

하지만 반가운 건 오랜만에 신선한 모습으로 돌아온 이영애 배우만이 아니다. 덕후의 냄새를 풀풀 풍기며 게임에 몰두하는 주인공 구경이와 또 다른 인물 케이(김혜준 분)가 천진난만 미소를 띠며 실험에 몰두하는 모습을 대비하는 첫 장면부터 <구경이>는 B급 장르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일찍이 <얼럴뚱땅 흥신소>부터 <너를 기억해> <추리의 여왕> 등으로 이어지는, B급 스릴러가 가지는 엉뚱하고 기발한 캐릭터와 설정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JTBC 새 주말드라마 <구경이>

아니나 다를까. 근무하던 학교에서 한 학생이 자살을 하고, 그 학생과의 관계를 의심받던 남편이 죽는 바람에 경찰직을 내던진 구경이는 이제는 간간이 의뢰받는 보험조사일이나 하며 살아가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심각함 대신, 배갈에 티백을 담가낸 블랜디 맛을 즐기고 의심병을 치료한다며 게임에 몰두하는 엉뚱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후배인 보험조사 팀장 나제희(곽선영 분)의 의뢰를 받아 내려간 통영에서 보험사기 사건을 조사하던 구경이는 자신이 맡은 사건의 당사자가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구경이 말 그대로 '사이즈'가 큰 사건의 시작이었다. 어수룩해 보이지만 예리한 탐정 구경이의 촉 그대로, 그건 통영의 한 배 회식에서 벌어진 사건 당사자들의 집단 사망 사건이었고, 그 배후에는 죽어도 싼 사람들을 그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죽이는 '누군가'가 있었다.

탐정과 사이코패스, 심상찮은 주변 인물

JTBC 새 주말드라마 <구경이>

그 '누군가'로 등장한 케이. <킹덤>에서 자신의 보위를 위해 그 누구의 희생이라도 거침없는 역할을 거뜬히 해냈던 김혜준은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누군가가 죽이고 싶은' 그 누군가를 대신 죽여주는 기쁨을 즐겨온 '사이코패스 살인마'이다.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들여 완전 범죄를 기획해 온 그녀는 이번에도 통영까지 내려가 억울하게 죽은 한 젊은이 대신, 그들의 죽음을 방조한 이들을 싸그리 죽여버리고 '신이 나서' 돌아온다. 

2회 마지막 장면, 드디어 조우한 구경이와 케이. 드라마는 탁월한 감과 수사 능력을 가졌지만 사회부적응자 같은 구경이와, '아~  심심해, 사람 죽이고 싶다'를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사이코패스 케이와의 대결을 축으로 삼는다. 

탐정과 사이코패스의 대결, 거기에 <구경이>는 흥미롭지만 모호한 캐릭터들을 포진시켜 드라마적 재미를 더한다. 산속에서 홀로 막걸리잔을 기울이더니, 구경이를 납치해 허름한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수사를 의뢰하는 용숙, 김해숙 배우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심상찮은 포스가 넘친다. 살인범 잡고 싶다는데 어쩐지 영화 <도둑들>의 ‘씹던껌’ 분위기를 내는 용국장, 과연 그녀의 진심은 무얼까. 

JTBC 새 주말드라마 <구경이>

그런가 하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엉뚱한 매력을 뽐내던 익순 역할의 곽선영 배우가 맡은 나제희 역시 그저 '조력자‘라기엔 존재감이 만만찮다. 거기에 <D.P.>를 통해 대중에게 한 발 더 다가선 조현철 배우가 맡은 '알기 쉬운 자' 경수의 고지식한 어수룩함, <경이로운 소문>의 수혜자 이홍내 배우가 뿜어내는 심상찮음 등 출연진 면면만으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영애와 김혜준, 김해숙, 곽선영, 조현철, 이홍내 등 이 신선한 조합을 만든 이가 <조작>, <아무도 모른다>의 이정흠 피디이다.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김서형 배우의 또 다른 매력을 한껏 발산시켰던 이정흠 피디는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종교와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전작과는 180도 다른, 요즘 TV에서는 보기 드문 연극무대 같은 실험적인 연출 장면까지 등장시키며 <구경이>로 돌아왔다. 

물론 <구경이>가 시청률이 담보된 대중적인 스릴러일 거라 확신은 못하겠다. 하지만 모처럼 제작진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B급 스릴러의 귀환’이란 사실만으로도 반갑다. 부디 순항하여, 떡진머리 탐정 이영애의 다음 시즌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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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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